유럽 10개국 자전거 여행
모처럼 찾아온 성원이는 눈빛도 가슴도 살아 있었다. 5월에 군대를 제대하고 9월 복학 전까지 넉 달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가 전부터 꿈꾸던 일을 실행에 옮기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까지 봐온 모습 중 가장 들뜨고 힘 있는 모습이었다. 성원이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왜 그리 신이 났는지 알 것 같았다. 가슴 뛰는 삶! 듣고 있는 나에게도 그 기운이 전해져 덩달아 행복했던 기억.
성원이는 군대를 제대하면 유럽 10개국을 자전거로 혼자 여행하는 꿈을 꾸어, 군대에서 모아둔 돈으로 아주 괜찮은 자전거 한 대를 사고 최소한의 여행 경비로 혼자 무작정 떠났단다. 유럽 10개국을 돌면서 크게 얻은 것은 바로 살아가는 힘.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귀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여행을 하기 전까지의 자신을 돌아보면 늘 내일을 준비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안한 모습이었는데, 계획하지 않은 혼자만의 여행을 다녀보니, 낯선 이방인에게도 묻지 않고 베풀고 재워주고 먹여주는 선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참으로 많다는 것,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는 것,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별문제가 없다는 것, 돈이 별로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궁지에 몰리면 통한다는 것.....등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며 여러 가지 예를 들어가며 신나게 들려주었다. 학교는 왜 이런 생생하고 즐거운 배움을 주지 못할까? 미안해졌다. 앎이 삶으로 연결되지 않고 시험을 치기 위해 암기하고 끝나면 쉽게 잊어버리는 지식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앎이 삶으로 연결되다.
복학 후 대학 생활을 하다가 다시 찾아온 성원이는 또 다른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이전보다 좀 더 차분해졌지만, 여전히 눈빛이 살아 있었다. 성원이가 군 복무 중 911테러가 일어났는데, 천주교 신자인 자신의 관점으로는 이슬람 문화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복학 후 ‘이슬람 문화’ 교양과목을 신청해 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공부할수록 자신이 이슬람 문화에 너무 무지했고 오해도 많았다는 생각이 들어 한 학기 수강 후 이슬람 동아리를 만들어 운영하다가,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 아랍어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아랍어를 익히고 나니 아랍권 나라에 가서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고 싶어 이집트 여행을 간 2011년, 카이로에 짐을 풀고 잠시 다른 지역을 다녀왔는데, 하필 그때 이집트 혁명이 일어나 한국인 유학생, 여행객들은 다들 본국으로 돌아가고 혼자 고립되다시피 했다고 한다. 치솟는 물가와 높은 실업률, 빈부 격차, 집권층의 부패, 30년 장기 철권통치에 대한 염증과 분노의 대폭발로 일어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매우 인상적이었단다. 취재를 위해 남은 우리나라 기자들과 매일 저녁 만나 이집트 혁명과 중동지역 문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살아있는 공부를 하며 다양한 언론사 기자들과도 친분을 쌓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고 들려주었다.
이슬람 문화 수업, 아랍어 공부 동아리 활동, 직접 체험하고 싶어 여행을 갔다가 경험한 이야기. 교과서에서 지식으로 배운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하며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경험. 이것이야말로 앎이 삶으로 연결되는 진정한 공부가 아닐까. 잡스가 말하는 소위 ‘connecting the dots.’ 자신이 한 경험들이 어느 순간 다 연결되어 능력이 되고 삶이 되는 것이다. 소중하지 않은 경험은 없다.
요즘 교육계에서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교-수-평-기 일체화. 교육과정을 제대로 읽어 수업을 설계하고, 수업을 통해 배운 내용을 평가하고, 평가한 내용은 기록으로 이어지는 체계적 접근. 이런 좋은 사례가 바로 성원이 같은 인생 성장의 모습이다. 성원이의 지적 호기심과 용기 있는 도전, 소중한 경험들이 모여 그의 멋진 삶이 되는 거 같다. 중동 지역의 전문성을 살려 현재 외교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걸 보면.
인도 철학자인 형부가 쓴 ‘이거룡의 인도사원 순례’ 서문은 참 인상적이다. 오래전 읽은 책이라 기억을 더듬어 적어보자면 대충 이런 내용이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는 것은 하늘을 날기 위함이다. 우리의 일상도 일탈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일상은 편안하지만 가슴 떨림이 없다. 반면 일탈은 가슴 떨리긴 하지만 뭔가 불안하고 위험하다. 분명한 건 일상과 일탈, 어느 한쪽에만 머물러 있으면 가슴 떨리는 삶은 없다. 삶이 느슨하고 나른해지면 혼자 무작정 떠나야 한다.”
이번 휴가에는 홀로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일상을 벗어나 일탈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슴 떨리는 삶을 위해 혼자 무작정 떠나보자.
◇ 이미선 소장은
▷중등교사 22년
▷부산시교육청 장학관
▷중학교 교장
▷교육학 박사
▷현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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