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게 준 선물 (9) - “선생님의 수많은 제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 저의 큰 행운입니다.”

나의 교단일기 /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이미선 승인 2021.06.18 10:29 | 최종 수정 2021.06.21 20:26 의견 0
미국에서 경제학교수가 된 규연이
미국에서 경제학 교수가 된 규연이

이사할 때마다 남편은 투덜거린다. 저 편지 박스들은 언제까지 옮겨 다닐거냐, 읽었으며 되었지 두었다 어디다 쓸거냐. 그게 뭐 보석상자라도 되냐, 나이들수록 무엇이든 비우고 없애며 살아야지....등등. 맞는 말이지만 제자들이 정성을 다해 쓴 편지들을 나는 아직 버리지 못한다. 이유는 있다. 삶이 나른하거나 헛헛할 때 하나씩 꺼내 읽으면 그 아이의 얼굴, 생활, 정성까지 떠올라 따뜻해질 것이고, 지금은 무얼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상상도 해보는 즐거운 시간을 그 편지들은 분명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그 보석상자를 열어 하나를 꺼내 본다. 규연이가 대학 재학 시절 영문학 수업 시간에 발표한 글이다.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사람’에 대해 적고 발표하는 수업 시간에 작성한 과제라 원문으로 올리고, 영어 전공 후배 도움을 받은 번역본도 같이 올린다.

내 보석상자를 열어 하나를 꺼내 보는 즐거움

Ms. Lee Mi-sun was my Ethics teacher back in middle school. I still remember how she genuinely cared about her students and whole heartedly made considerable efforts to provide them with a better quality of education. To this day, she is one of the most memorable teachers I have ever met and one of the few people who significantly influenced my life in various ways. In the following, I describe the details of how I remember her pedagogical methods and how her presence as a teacher greatly influenced me.

Her course was one of the popular classes among students. The class structure encouraged student engagement in various ways using activities related to the central concept of the class. These included listening to a song related to the main text, discussing newspaper articles, watching a short clip from a movie, etc.

She also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learning from our peers. For example, she would ask students to work in small groups and prepare short presentations on parts of the class materials. At first, I was unsure about the idea of learning the course materials from classmates.

However, it didn't take me so long to realize how effective peer learning can be. I was fascinated by how creative my friends were in delivering the class materials, and I found myself understanding the concepts better. Students were naturally exposed to various learning experiences, which I found pretty effective.

In addition to her excellence in teaching, she had a stellar reputation for her sincere and genuine attitude towards students. She never had difficulty remembering students' names and enjoyed having discussions with students on various subjects. She was a great listener and gave thoughtful advice to students who reached out to talk about their personal issues.

I remember that she also kept a personal website and let students post their messages and read her essays and articles written for the local press. I enjoyed leaving her messages and reading her replies. Her support and guidance were always encouraging.

Ms. Lee was a teacher who always strove to develop creative and effective educational methods and was eager to communicate with students about her class. She was also a very cheerful counselor who showed genuine interest in her students and gave thoughtful guidance.

I am fortunate to be one of the so many souls she touched for decades as a teacher.

2004년 교사시절 '교사들이 추천하는 수업 잘하는 교사'로 선정되어 부산교육지에 실린 사진
2004년 교사시절 '교사들이 추천하는 수업 잘하는 교사'로 선정되어 부산교육지에 실린 인터뷰.

<번역>

“ 이미선 선생님은 중학교 시절 저의 윤리 선생님이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선생님께서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챙기시면서 진심으로 더 나은 교육을 실천하고자 노력하셨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만난 은사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임과 동시에 제 인생에 정말 큰 영향을 끼치신 분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교육 방법과 존재감이 제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좀 더 자세하게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선생님의 수업은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업 중 하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주제와 관련된 노래 듣기, 신문 기사를 읽고 토론하기, 영화의 장면을 통해 주제 생각하기 등과 같은 다양한 활동과 방법으로 학생들의 수업 참여를 이끌어 내셨습니다.

또한 선생님께서는 또래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소규모 모둠 학습을 통해 각자 일정 부분 수업의 내용을 발표하도록 하셨습니다. 친구들로부터 수업을 배운다는 것이 처음에는 좀 의아하게 생각되었지만, 이런 수업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이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정말 창의적으로 수업을 준비하고 가르치는 모습에 감명받았으며, 더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방법을 통해 학생들은 다양한 수업 방법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수업 방법 면에서도 뛰어나셨지만, 학생들을 대하시는 따뜻한 마음과 진심 어린 태도로도 매우 유명하셨습니다. 학생들의 이름을 정말 잘 기억하셨고 다양한 주제로 학생들과 토론하는 것을 즐기셨습니다. 언제나 학생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셨고, 개인적인 문제도 얘기할 수 있도록 먼저 다가와 주시고 조언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던 웹사이트에 글을 남기기도 하고 지역 언론사에 게재하신 선생님의 글을 읽을 수도 있었는데, 저는 선생님의 사이트에 글을 남기고 선생님의 답글을 읽는 것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늘 격려해주시고 이끌어주셨던 선생님께서는 정말 동기부여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선생님은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 언제나 효과적이면서 교육적인 방법으로 발전하고자 노력하셨던 분입니다. 또한 학생들과 진심 어린 애정으로 소통하고 깊이 있는 조언을 해주시던 유쾌한 상담가이셨습니다. 선생님이 교사로서 수십 년간 가르치셨던 제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제게는 큰 행운입니다.”

규연이는 총명한 데다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야무졌던 아이였다. 워낙 반듯하고 책임감 강한 아이였고 감정도 쉽게 드러내지 않던 아이여서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다. 제자의 묵은 편지나 글이 나에게는 힘이고 사는 맛이다.

거봐요, 내 말이 맞잖아요. 이 편지 박스들이 바로 내 보석상자라니까요. ^^

이미선 소장
이미선 소장

◇ 이미선 소장은 

▷중등교사 22년 
▷부산시교육청 장학관 
▷중학교 교장 
▷교육학 박사 
▷현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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