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게 준 선물 (12) - 평범하게 사는 게 이리 어려울 줄은..... 지니

나의 교단일기 /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이미선 승인 2021.07.10 08:58 | 최종 수정 2021.07.12 12:53 의견 0

참으로 다른 여학교와 남학교

사춘기의 절정, 인생의 어느 때보다 반항적이고 충동적인 중학교 남학생들과 초임 교사 시절을 지내고, 운 좋게 가깝고 근무환경도 좋다는 여중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여학교에 근무하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차이들. 처음 눈에 띄는 것은 당연히 학교 환경. 미끄러질 것 같아 걷기도 조심스러운 맨들맨들한 복도를 지나 교실에 들어선 순간, 눈을 의심했다. 작년 게시물이 손상이 전혀 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붙어 있지 않은가! 남학교 근무할 때 보면 새 게시물도 이내 너덜너덜해지거나 여기저기 칼로 오려져 있거나 이미 떨어지고 찾을 수 없는 일이 많았기에 나에게는 놀랍고 신기한 일이었다.

감탄은 계속 이어졌다. 너무나 몰입도 높은 수업 시간! 중학교 남학생들과 수업하면서 나는 자주 말했다. 누가 여자보고 말이 많다고 했냐고. 중학교 남학생들도 2학년 후반부터 3학년 정도 되면 급속도로 말이 줄어드는데, 중학교 1, 2학년 초에는 정말 말이 많다. 10분 쉬는 시간에도 운동장에 나가 공 차고 놀거나 게임 하느라 쉬는 시간에 하지 못한 이야기를 수업 시간에 한다. 판서를 하다 돌아보면 짝지를 찔러 키득거리거나, 친구가 실수라도 할라치면 그걸 잡고 늘어지고, 누가 웃기는 이야기를 하면 책상을 두드리면서 웃느라 몇 번이나 수업에 제동이 걸린다. 진지하게 사회 문제, 아픈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선생님, 00이가 방귀 뀌었는데요. 냄새나서 수업 못하겠는데요.” 하면서 자리에 일어서고 소란을 떠는 바람에 맥은 빠지고 아까운 시간이 허비될 때가 더러 있었다.

사직여중 교사 시절 체육대회 때
사직여중 교사 시절 체육대회 때

그런 아이들과 전쟁같이 생활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목소리도 커지고 야성이 강해졌는지 여학교에서의 첫 수업 시간,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몰입했다. 조용히 해라, 바로 앉으라 말할 필요도 없었다. 바른 자세로 눈을 반짝이며 내 목소리만 울리는 거 같아 “너희들은 숨도 안쉬냐?”고 말하니 그제서야 까르르 웃는다. 여학생들은 내가 목이 좀 쉰다 싶으면 얼른 물을 챙겨와 “선생님, 물 좀 드시면서 하세요.” 라거나 컨디션이 좀 안 좋아 보이면 “선생님 앉아서 하세요. 몸조심하세요.” 이런다. 아이쿠야, 이런 세상도 있나 싶었다.

다른 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당시 중학생들의 수학여행지는 거의 속리산이었다. 주로 4월에 수학여행을 갔는데 경주를 거쳐 가다 보면 벚꽃이 눈부시다. 흩날리는 벚꽃잎이 너무 아름다워 아이들을 보며 “아 진짜 이쁘지 않냐. 바깥도 좀 보면서 가자.” 이러면 남학생들은 눈이 벌개지도록 게임을 하다가 힐껏 한 번 쳐다보고는 ‘뭐, 해마다 피는 꽃이구만’ 하는 표정을 짓고는 이내 짤짤이, 게임을 하거나 시종일관 잠을 잔다. 그러다보니 여학생들과 수학여행을 가면서도 나만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는데, 여기저기서 감탄사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어 댄다. 어떤 아이는 녹음테이프를 가져와 기사분에게 주면서 “아저씨 이 노래로 좀 바꿔 주세요.” 하면서 분위기 있는 노래들을 들려주고 따라 부른다. 아, 이렇게나 차이가 나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남학생들과의 생활은 힘들었지만 재미있고 생동감이 넘쳐 웃을 일도 많았다. 간혹은 고놈들 생각에 혼자 키득거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졸업 후 오래오래 기억하고 찾아오는 제자들이 남학생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들의 으리? ^^

‘인기짱’인 지니를 만나다

교사의 눈에 바로 들어오는 아이들이 있다. 공부를 잘하기보다 개성이 강한 아이다. 여학교로 옮긴 첫해, 3학년 수업을 담당했었는데 2반 수업을 들어가 유난히 눈에 띄는 아이를 만났다. 첫눈에도 예사롭지 않았다. 아주 짧은 커트머리에 목소리도 걸걸한 데다 왠지 남학교에서 만났을 느낌을 주는 지니. 목소리도 크고 당당하면서 유머 감각도 뛰어나 반 전체 분위기를 활발하고 즐겁게 만들었다. 지니랑 이야기하다보면 언제나 유쾌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참 부러운 재능이었다.

체육대회 하는 날 지니는 거의 연예인급이었다. 전교생이 다 아는 듯, 후배들은 여기저기서 ‘언니, 언니’하면서 사진을 찍고 친구들에게도 지지가 높았다. 그런 지니가 나를 무척 따라 괜히 으쓱해지기도 했다. 지니는 스승의 날 편지를 보내 “선생님 제 꿈은 개그우먼이 되는 것입니다. 개그우먼이 되어서 세계 일주 시켜드릴게요.”라고 했다. 그 말만으로도 세계여행을 다녀온 듯 뿌듯하고 행복했다.

동그라미 안의 학생이 중학교 때 지니
동그라미 안의 학생이 중학교 때 지니

지니는 꿈꾸던 개그우먼이 되기 위해 여러 번 오디션을 보았으나 방송 3사 모두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해 그 꿈은 좌절되었지만, 그 끼를 살려 이벤트 업체에서 대학축제 등을 진행하다가 이제는 대표가 되어 멋지게 살고 있다.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행사가 거의 잡히지 않아 무척 어려운 고개를 넘고 있다고 해 안타깝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당당하다. 지혜롭게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지니가 어느 날 말했다. “선생님, 평범하게 사는 게 왜 이리 어렵습니까? 저는 자신의 삶은 온데간데 없고 결혼해서 아이 낳고 기르는데 시간 다 보내는 엄마의 평범한 인생이 싫었거던요. 그래서 꼭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지 마음 먹고 살았거던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평범하게 살기도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들 취업할 때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기 낳고, 집 사고...... 당연할 거 같았던 일이 제게는 왜 이리 어렵습니까? 난 아직 결혼도 못하고, 그러다보니 아이도 못 낳고 ㅠㅠ 평범하게 사는 것도 참 쉽지 않네요.”

“그러게 지니야, 인생 참 마음대로 안 되지? 나도 그렇다.”

우리는 다들 모양과 색깔, 시기가 다를 뿐 저마다의 짐을 지고 인생의 고개를 넘어가는 거 같다. 태어난 이상 아프고 늙고 죽어야 하니, 큰 틀에서 보면 너, 나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고 오십보백보인 듯.

이미선 소장
이미선 소장

◇ 이미선 소장은 

▷중등교사 22년 
▷부산시교육청 장학관 
▷중학교 교장 
▷교육학 박사 
▷현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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