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게 준 선물 (10) - “내가 어리석게 사는 것은 선생님 때문입니다.”
나의 교단일기 /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 자신이 어리석게 사는 것은 선생님 때문이라는 성완 이야기
이미선
승인
2021.06.26 11:11 | 최종 수정 2021.06.27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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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자다가 깜짝 놀라 전화를 받았더니 첫 학교에서 가르쳤던 제자 성완이었다.
“ 선생님, 저 성완입니다. 술 한잔했습니다. 늦은 시간인데 전화해도 되지요?”
“ 아, 그래. 성완아. 놀래라, 잘 지내지?”
“ 아니요. 잘 못 지냅니다.....제가 오늘 사실 직장에서 중요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부탁할 일이 있었는데, 하필 그분이 대학 선배라 괜히 동문이라 봐주었다는 오해를 받을 거 같아서 결국 찾아가지 못하고 술이나 진~뜩 마시고 들어가는 길입니다. 이런 나를 보면 내 아내는 당신은 왜 그리 바보같이 고지식하게 사냐고 구박도 합니다.”
“ 그러게 왜 그리 어리석게 사냐? ”
“ 왜긴요. 바로 선생님 때문이지요.”
“ 나 때문에? 왜?”
“ 내가 선생님에게 배우지 않았다면 여기 서울 놈들처럼 약삭빠르게 살 수 있었거던요. 근데 샘이 늘 ‘술수 쓰지 말고 살아라.’ ‘정의롭게 살아라’ 하셔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자꾸 샘이 생각나서 제가 이리 미련하게 산다 아입니까?”
“ ...... 야, 내가 언제 바보같이 살라 그랬냐. 지혜롭게 살아라했지.....”
“ 지혜요? 하하 네 지혜라....아닙니다. 선생님, 사실 저는 선생님 제자라서 참 행복합니다. 좀 바보같이 살지요. 뭐. 집사람한테는 못나게 산다고 구박을 받아도 저는 마~ 이래 살랍니다. 사실 오늘 전화한 건 두 가지 말씀드릴 일이 있어섭니다. 첫 번째 이유는 제가 일주일 후면 셋째 아이 아빠가 됩니다. 생각만해도 부자가 된 거 같고 저는 참 좋습니다.”
“우와 축하한다. 정말 좋은 일이네. 성완이 닮아 멋지고 총명한 아이 나오겠다. 잘했다. 정말.”
“하하 감사합니다. 두 번째는 선생님 사랑한다는 말씀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 중학교 시절 샘은 잘 모르셨겠지만 내 첫사랑이 샘입니다. 사춘기 소년 시절 어찌나 샘이 좋던지 하하. 이후로도 그렇고 이런 늦은 밤에도 전화할 수 있는 샘이 있어서 참 행복한 놈입니다.”
“ 아이쿠 고마워라.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내가 이런 말을 듣겠노. 나야말로 행복하네.”
전화를 끊고 밤새 잠이 오질 않았다. 내가 이런 큰 사랑을 받아도 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중학교 시절 성완이를 떠 올렸다. 성완이는 중학교 2학년 시절 내가 가르쳤던 제자다. 그 반 반장이기도 했고 공부도 뛰어나게 잘하는 명석한 아이이기도 했지만, 워낙 자세가 반듯하고 수업 집중도가 높아서 눈에 띄는 아이였다. 질문하는 것도 대답하는 것도 깊이가 남달랐다. 학급을 위해 기꺼이 제 시간을 내어 봉사하고 실천하는 아이여서 친구들에게 신뢰도 두터웠다. 중고등학교 6년 내내 반장을 했던 게 바로 그 증거다. 사실 내가 더 마음을 준 이유는 넉넉지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 스스로 공부하고 겸손한 자세로 절대적인 시간을 투자하여 끈질기게 책상에 앉아 노력하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성완이는 신경이 예민해서인지 평소 성적보다 큰 시험이 가까워지면 계속 설사를 하고 배가 아파 제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했다. 재수하면서 다시 도전했지만 꿈꾸던 대학은 못가고 차선을 택했는데 그 대학 역시 최고 수준의 대학이다. 성완이의 최대 장점은 공짜를 바라지 않는 성실함이다. 늘 부족하다며 자신을 낮추고 땀 흘려 꾸준히 공부하고 준비하는 노력이 헛되지 않아 졸업하고 다른 사람이 꿈의 직장이라는 곳에 들어가 보람있게 잘 생활하고 있다. 무엇보다 세 아이의 아빠로, 든든한 남편으로, 효성 지극한 아들로 사는 모습이 참 좋다.
에머슨은 이 지구라는 공간에 와서 나로 인해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해졌다면 성공한 인생이라 했는데, 나로 인해 행복하다는 제자가 있으니 난 성공한 사람이다.
◇ 이미선 소장 : ▷중등교사 22년 ▷부산시교육청 장학관 ▷중학교 교장 ▷교육학 박사 ▷현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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