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난 집에서 분단,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아버지는 통일을 늘 노래하셨고, 큰오빠는 민족화합을 위한 NGO 활동 등을 미국 유학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시인인 작은 오빠는 통일을 위한 ‘터’ 모임을 오래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산악회 대장이기도 한데 지리산은 백번도 넘게 산행하고 백두대간 종주, 낙동정맥 종주뿐 아니라 킬리만자로, 아콩카구아, 엘부르브 등 각 대륙의 지붕 산 원정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런 오빠가 아직 남겨 놓은 산이 백두산이다. 오빠는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중국 땅으로 갈 수 없다. 통일되면 자유의 다리를 지나 우리 땅을 밟아 갈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집안의 문화 속에서 성장해 왔기에 통일을 염원하는 것은 나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결혼하고 나서야 난 우리 친정이 참 특별한 문화를 가진 집안임을 알았다. 결혼 후 첫 명절에 시댁 가족들이 모여 나누는 대화 내용이 주로 “이번 이사는 어디로 했냐, 승진은 언제 하냐, 지난번에 산 땅은 좀 올랐냐, 아이들은 공부는 잘하냐, 대학은 어디로 갈거냐, 취업한 곳은 전망이 있느냐, 월급은 얼마냐, 묘지 이전하는 데 비용은 얼마나 드냐.” 등등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나는 ‘왜 이리 우리 시댁 사람들은 속물적이야. 참 가볍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들수록 드는 생각, 우리 시댁이 대부분 우리나라 평범한 가정의 모습이고 우리집이 좀 이상한(?) 집안이라는 것.^^
* 6월의 노래, 통일 가요제
도덕·윤리 교과서에는 대영역으로 민족의 분단과 통일에 대한 단원이 있다. 수업을 하기 전에 난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다. “통일이 되면 좋겠는지?” 그런데 아이들 절반 이상이 통일을 원치 않았다. 이유는 “통일되어도 좋을 게 없을 거 같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 가난한 북한과 통일하면 우리가 손해다, 모르겠다. 관심 없다, 생각 안 해봤다, 굳이 힘들게 왜 통일하냐, 통일하면 우리도 북한처럼 이상한 사회가 된다, 귀찮다...” 등이었다. 이런 아이들을 대하면서 고민이 깊어졌다. 그래서 수업 방법을 묻고 답하기, 토론식, 특강, 모둠발표식 등 다양하게 시도했었다. 그중에 가장 인상적인 수업이 바로 ‘통일가요제’였다.
통일 단원을 시작할 때 아이들의 의견을 먼저 충분히 듣는 시간을 가졌다. 통일과 관련된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게 했더니 ‘아무말 대잔치’처럼 되었지만 관심은 높아졌다. 누가 한마디 하면 저기서 반박도 하고 긍정도 하면서 열기가 더해졌다. 나는 거의 관여하지 않고 아이들이 마음껏 자기 생각을 말하게 두었더니 아이들 스스로 정리가 되어갔다.
그리고는 내가 제안을 했다. “모둠별로 통일 관련 노래를 찾아 개사해도 되고, 안무를 만들어 창작 무용으로 해도 좋고, 기존의 노래가 좋으면 그대로 해도 된다. 단 가사를 다 외워서 한다. 그리고 노래보다 시(詩)가 좋으면 자작시면 더 좋고 그것이 부담되면 통일 관련 시(詩)를 찾아 외워서 낭송해도 좋다. 이름하여 ‘통일가요제’이다. 이것을 수행평가로 한다.” 한 달 정도 전에 예고하고 연습 시간을 준 뒤 본 수업 시간에 모둠별로 발표 시간을 가졌다. 내가 예상한 것보다 아이들은 훨씬 창의적이고 깊고 빛났다.
어떤 모둠은 커튼을 내리더니 촛불을 들고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아....” ‘직녀에게’ 노래를 불러 분단의 비극이 가슴에 스며들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눈가가 촉촉해진 아이들도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강산에의 ‘라구요’ 윤도현 외 여러 가수가 같이 부른 ‘철망 앞에서’ 등의 노랫말 속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다 담겨있었다. 시(詩) 한 편, 노래 한 곡이 열 번 교과서를 읽는 것보다 더 아이들에게 와 닿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수업이 끝나고 나면 통일에 대해 무관심했거나 부정적인 아이들도 달라졌다. “통일가요제를 준비하면서 민족의 분단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고, 통일을 노래한 시(詩)나 노래가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그동안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자신이 한심하다.” “통일되어 금강산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 오면 좋겠다.” “분단된 나라에 살면서 너무 무관심했던 내가 부끄럽다.” “통일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기로 했다.” 등의 이야기를 쏟아내어 나를 감동하게 했다.
보석보다 빛났던 우리 아이들 시(詩)와 노래, 이야기로 6월을 살고 싶다.
◇ 이미선 소장은
▷중등교사 22년
▷부산시교육청 장학관
▷중학교 교장
▷교육학 박사
▷현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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