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게 준 선물 (1) - 가보로 물려주고 싶은 영광의 선물

나의 교단일기 /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이미선 승인 2021.04.23 16:04 | 최종 수정 2021.05.27 23:11 의견 0
수업하는 필자 

프롤로그

Everything you need is already inside.

내게 필요한 것들은 이미 내 속에 있다. 내 안에는 수많은 보석들이 빛나고 있다. 인생 대부분을 교단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웃고 감동하고 가르치면서 살아온 나에게 인생이 내게 준 선물은 나를 웃게 하고 감동을 주고 때로는 울게 하고 고민하게 한 많은 제자들이다.

아이 한 명 한 명이 우주이고 우리의 미래라는 것. 어느 누구도 존엄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는 것. 그 어떤 아이도 인류의 향연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러기에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최소한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더 안전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이어야 한다는 것이 한결같은 나의 교육 철학이다. 이러한 소신으로 살아와서인지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것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많은 감동적인 선물을 받았다.

그 중에 가보로 물려주고 싶은 가장 자랑스런 선물이 있다. 바로 1992년 사직여중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의 ‘백목련’이라는 학교 신문이다. 그 신문에는 그 해 신문 편집부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실렸었다. 설문문항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한 명 쓰고 그 이유를 쓰세요.' 였다. 학년별로 1위에서 5위까지 제시해두었는데 2, 3학년 1위에는 다행스럽게 부모님이 올랐고 2위부터 5위까지는 대부분 역사 속 위인들이었다.

그런데 1학년 1위에 놀랍게 내 이름이 올랐고 2위가 부모님 3위 헬렌켈러, 4위 신사임당, 5위 베토벤이 올랐었다. 이 결과가 신문에 실리자 교무실 선생님들은 “이거 어떻게 된 일이냐, 샘은 아이들에게 무슨 일을 한 거냐, 햄버거를 전체로 돌렸냐.” 등 등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졌다. 신문에서 아이들이 밝힌 이유에는 '밝고 따뜻한 심성으로 학생을 먼저 이해하려는 사랑 때문'이라고 밝혀져 있다. 1학년 수업을 맡고 있던 나는 자랑스럽기보다 민망스럽고 주변의 시선 때문에 신경쓰이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존경하는 인물' 설문 결과가 보도된 사직여자중학교 신문 《백목련》(1992)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 아이들이 준 사랑이 고맙고 벅찬 감동이기도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닌데, 난 별 한 것도 없는데 ....’ 싶어서 부끄럽기도 했다. 그 이유를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진심이 통한 거 외는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사실 난 1990년말 둘째 아이를 낳고 1년간 육아휴직을 한 후 1992년 3월 복직했다. 1991년 한 해 아이를 키우면서 이웃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게 되었고 이런저런 학부모들의 우려와 바람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요즘 그런 교사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드는 사례들을 엄마들을 통해 듣게 되었고, 엄마들은 여전히 학교 가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고 있으며 교사를 만나는 것도 힘들어함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아침부터 우유 배달을 하면서 두 딸을 키우며 어려운 살림살이를 하고 있는 옆집 아주머니와 친하게 지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 한 명 한 명이 그저 한 명이 아니고 엄마에게는 귀하디귀한 자식이라는 것,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엄마에게는 최고의 가치라는 것, 가정이 어려운 아이에게 더 손 내밀고 따뜻하게 격려해줘야 한다는 것 등. 

초임교사 시절 내가 아이들을 위해 밤 늦도록 남아서 노트 검사를 하고 하나하나 댓글을 달아주면서 열심히 수업하고 학급경영을 하니까 옆 동료들이 “결혼하기 전이라 그렇다." "초임이라 그렇다." "가정을 가지면 그렇게 하기 힘들다.” 등의 말씀들을 하셨다. 그러나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이웃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난 더 성장한 것 같다. 모든 아이가 내 아이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이론이 아닌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런 마음으로 복직을 하고 아이들과 진심을 다해 함께 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 일은 내가 그냥 교사로서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수업을 고민하고 혁신하고 학급경영를 더 알차게 운영하고 아이 한 명 한 명을 살뜰하게 챙기는 교사로 바로 서게 한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의 초롱한 눈 속이지 않는 교사로 살아야겠다.'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주고 손잡아주며 힘을 내어 살 수 있도록 해 주어야겠다.' '아이들이 스스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지지해주며 기다려주어야겠다.' '타고난 끼를 찾고 꿈을 꿀 수 있도록 삶의 멘토가 되어주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오래오래 하면서 아이들 앞에 설 수 있었다.

돌아보면 이 땅의 교사로서 내 생애 가장 큰 영광이기에 우리 아들, 딸에게 가보로 물려주어도 충분히 좋은 재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미선 소장
이미선 소장

◇ 이미선 소장은

▷중등교사 22년 
▷부산시교육청 장학관 
▷중학교 교장 
▷교육학 박사
▷현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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