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산티아고 순례' (43) 포기할 줄 아는 용기
순례길 26일 차(2020. 03. 01)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 - 라 라구나(La Laguna) 25km 구간
김도훈 기자
승인
2021.10.12 14:52 | 최종 수정 2021.10.1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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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오늘은 일본의 식민 통치에 맞서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지 101주 년이 되는 날이다. 3.1일 절을 맞아 이역만리 스페인에서 유관순 누나를 비롯한 무수히 많은 독립운동가 선생님들을 기리다 보니 더욱 애국심이 솟아났는데 독립운동의 정신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다만 너무 즐겁고 좋았던 지난밤 축제의 후유증, 늦게까지 논 피로의 여파로 인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숙취에 머리가 어질어질하여 8시까지 누워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3월의 첫 여정을 출발하였는데 오늘은 산을 타는 조금 험난하지만 예쁜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구간과 아주 완만한 평지 구간 두 가지 길(경로)이 있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것처럼 집념의 사나이 필자 마음 같아선 무조건 조금 힘들더라도 보람이 있는 산을 타는 것이었는데 무작정 강행하기엔 아침 몸 상태도 안 좋고 비도 살짝 내리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매우 고심이 되었는데 옆에서 철현 행님이 “원래 포기하는 게 더 힘들긴 한데 무리하지마 동생.” 진심 어린 충고를 해줘서 끝내 철현 형님과 도로 따라 평지를 걸어가기로 했다.
상당히 힘든 결정을 내리고 본격적으로 걸어가는 길. 이미 지난 일이고 스스로 결정한 것이기에 미련을 갖지 말자고 했건만 두고두고 머릿속에서 산길을 갈 껄 그랬나 하는 생각과 아쉬움이 떠올랐다. 포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미련이 계속 남아 털어내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를 통해 포기할 줄 아는 것도 큰 용기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내가 내린 결정에 책임을 지는 연습을 할 수 있었는데 늘 그렇듯 며칠 지나면 아무렇지도 않고 괜찮아지겠지. 정 아쉬우면 다음번에 왔을 때 저 길로 가자! 처음엔 걷는 속도가 확연히 느렸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상태가 좋아지고 기분도 괜찮아지면서 빠르게 걸어갈 수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가 해발 1300m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이후 서서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가 생각날 정도로 경사진 산길을 직면하고 말았다. 단단히 각오하고 출발했음에도 불구 바람도 많이 불어 조금 힘든 순간이었다. 그래도 그간 걸은 짬을 발휘하여 무사히 오를 수 있었는데, 오늘은 원래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 마을에 가기로 했던 것과 달리 3km 전 마을인 라 라구나(La Laguna)에서 하루를 지내기로 했다.
왜냐하면 오늘은 한국인들끼리 조용히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삼총사를 비롯한 서양인들의 밝은 텐션이 부럽고 좋았기에 저녁 시간 알베르게에서 다 같이 술 마시고 파티하는 것이 즐거웠는데, 막바지에 다다르면 다다를수록 이들이 조금 시끄럽고 감당하기 버거워졌다. 참 간사한 게 사람의 마음이라고 언제는 같이 있는 게 좋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삼총사가 계속 필자에게 알베르게 어디 가는지를 물어보고 같이 있으려고 하는 게 느껴지면서 약간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따라서 며칠간은 이들과 떨어져 조용히 쉬고 싶어졌기에 오늘은 라 라구나(La Laguna) 알베르게에서 한국인들끼리 조용히 휴식을 취하였다.
그런데 원래 갈려고 했던 마을인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에 가면 10유로에 티본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다는 특급 정보를 알게 되었다. 이것을 알게 된 이상 또다시 참을 수가 없었는데 아무도 안 간다길래 홀로 내일 가는 길 사전 답사도 할 겸 3km를 걸어 티본스테이크를 먹으러 걸어갔다. 그런데 아니 이럴수가ㅠ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식당이 문이 닫혀있었다. 허망하고 맥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결국 스테이크는 못 먹고 마을 구경만 하다 홀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는데 비록 또 하나의 포기를 해야 했지만, 이 또한 나름 색다른 추억이자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저물어 돌아가는 길이 무섭기도 했지만, 무사히 도착해 저녁을 먹고 조용히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마무리하였는데 이것이 인생이구나!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포기하는 용기를 체험하고 실천할 수 있었던 3월의 첫날이 이렇게 깊어져 갔다. <글, 사진 = 김도훈 기자>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본지 편집부위원장 eoeksgksep1@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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