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산티아고 순례' (48) - D-1. 이젠 진짜 거의 다 왔어!

산티아고 순례길 31일차(2020. 03. 06)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i) - 아르수아(Arzúa) 29km 구간

김도훈 승인 2021.11.06 16:55 | 최종 수정 2021.11.10 11:50 의견 0
리오(Rio) 지역의 순례길 풍광

오늘은 어제 항공편 소식에 대한 궁금증 때문인지 새벽 4시에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바로 사촌 누나에게 연락을 걸어 중간 상황을 알아보았는데, 여기저기 다 난리가 난 듯하다. 항공사와 통화하는데 상담사 연결까지 무려 한 시간 넘게 걸렸다고 한다. 또한 항공편도 런던 경유나 파리 아웃 등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상담사마다 말이 조금씩 달라 확실히 정해진 게 없었다. 모두가 이런 상황이 처음이다 보니 더욱 혼란스러운 거 같은데 확실히 귀국할 수 있는 걸로 잡아달라고 부탁하고 다시 잠을 청하였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연락을 이어 하였는데, 처음엔 시간 땜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새벽 노숙도 할 뻔하다가 사촌 누나가 잘 정리해줘서 끝내 3월 25일 바르셀로나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갔다가 인천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귀국 항공편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기존 22일 출국에서 3일 늦춰지긴 했지만, 가장 큰 변수이자 문제였던 항공권이 확정되자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비록 시간 관계상 독일 여행은 다음으로 미루어졌지만, 불확실성이 해소되어 무엇보다 만족스러웠는데 추가로 체류하게 된 스페인에서의 3일을 더욱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해야지! 오늘도 어제처럼 비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는 여정이었지만 그간 마음을 불안하게 짓눌렸던 퍼즐이 말끔하게 풀려서 그런지 어제와는 달리 상쾌한 기분으로 걸을 수 있었다.

 멜리데(Melide) 마을의 모습

오전 시간은 그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열심히 걸은 필자를 위해 귀국 전에 어떠한 선물을 주면 좋을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어떻게 여유로운 힐링 시간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갈지에 관한 생각을 하며 걸었다. 이와 동시에 사촌 누나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는데, 항공사 상담사 연결까지 또다시 한 시간 반 이상 시간이 소요되는 와중에도 순례길을 걷고 있는 필자를 대신하여 끝까지 기다려 연락해주고 계속 신경 써주면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번 여행&순례 내내 사촌 누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많이 받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필자에게 도움을 주는, 필자가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어서 안도와 함께 참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와 함께 동시에 필자도 좋은 기운과 아우라를 가지고 흔쾌히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머지않아 꼭 그렇게 될 것인데 필자를 도와주는 사람들, 흔히 인복이 있음에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던 순례길에서의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함께 해준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걷다 발견한 표지석. 이제 곧 40km도 깨진다!

오후 들어선 멜리데(Melide) 마을의 유명 뽈뽀 맛집에 들러 뽈뽀를 맛보기도 하고 주변 풍경을 사진 찍으며 걸어갔다. 그러다 바에 들러 휴식을 취하는데 문득 동연 행님이 확실히 필자 얼굴 살이 많이 빠진 거 같다고 말했다. 다 같이 사진을 찍어 본 결과 필자뿐만 아니라 다들 살이 빠져 보였는데, 한 달 동안 순례길을 걸으며 과연 몇 킬로가 빠졌을까? 궁금해졌다. 또한 순례길은 아무리 먹어도 결국은 살이 빠진다는 게 증명되었기에 항상 다이어트 결심이 작심삼일로 끝나는 분들에게 이곳 산티아고 순례길을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다.

 아르수아(Arzúa) 지역의 순례길 풍광

이윽고 마주한 표지석을 통해 어느덧 순례길 40km도 깨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남지 않은 까미노 길, 그간 순례길 여정을 돌아보며 감상에 젖기도 하고 생각들을 정리하기도 하면서 여유롭게 만끽할 줄 알았건만 막판에 터진 코로나바이러스와 항공권 문제 때문에 이리저리 신경 쓴다고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마지막 순간을 영적인 기쁨은커녕 혼란 속에 마무리하는 데다 심지어 막바지 날씨도 하루 눈 온 것 외엔 거의 좋지 않아 더욱 속상함이 몰려왔는데 그렇지만 이미 지나간, 저질러진 상황을 어떻게 하겠는가. 물론 아쉬움이 크게 남긴 하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또한 특별하고 색다른 경험이라 생각하며 아름다운 추억으로 고이 간직해야겠다.

그간 열심히 걸은 우리들의 모습. 다들 홀쭉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목적지 아르수아(Arzúa)에 도착해서는 늘 그렇듯 씻고 휴식을 취하다 마트 가서 장보고 저녁을 먹은 다음 일기를 쓰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였는데 한 달 전 걷기 시작할 때만 해도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던 순간이 어느덧 벌써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딱 오늘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 걸으면 대망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게 된다! 모두에게 감사한 밤,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전날 밤이 지금까지 무사히 잘 걸어왔다는 뿌듯함과 약간의 뭉클함, 그리고 내일에 대한 설렘으로 뒤덮여간다.

<글, 사진 = 김도훈 기자 eoeksgksep1@injurytime.kr>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본지 편집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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