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산티아고 순례' (53) - 혼란 와중에 깨우친 인생의 진리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이후 세 번째 이야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의 마지막 이틀(2020. 03. 11 ~ 2020. 03. 12)

김도훈 기자 승인 2021.11.30 21:42 | 최종 수정 2021.12.05 13:06 의견 0
언덕에서 바라본 묵시아(Muxía) 마을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 중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난리이다. 특히 유럽에선 이탈리아의 상황이 심각한데, 어젯밤 같은 알베르게에 있던 이탈리아 친구 한 명이 갑자기 지금 비행기가 아니면 이탈리아로 못 돌아간다며 급히 택시를 타고 산티아고 공항으로 가는 소동이 있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필자가 있는 스페인을 비롯하여 이제는 전 유럽이 불안한 상태에 놓여있는 듯하다. 필자가 생각한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이후의 모습은 전혀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이게 뭐람.

귀국까지 대략 2주 정도의 기간이 남아 있기에 더욱 불안해지는 상황 속에서 일단 필자는 오늘 산티아고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내일까지 콤포스텔라에 머물며 몸과 마음을 추스린 다음 모레 오전 마드리드로 넘어갈 예정인데, 우선은 묵시아(Muxía)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산티아고행 버스 시간이 오후 2시30분이라 시간적 여유는 충분하기에 또 다시 언덕에 올라갔는데 여러 대외 혼란과 불안함 속에서도 신기하게 이곳에만 오면 근심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오늘은 날씨도 대단히 좋아 따스한 태양 아래 아름다운 마을, 펼쳐진 대서양을 바라보며 오전 여유를 만끽하였다.

묵시아(Muxía)의 만화 같은 해안 절경

묵시아와 피스테라 중에서 어느 마을이 더 이쁘고 아름다운지에 대한 하나의 끝나지 않을 논쟁(?)이 있기도 한데, 필자는 묵시아에 한 표를 던진다. 피스테라에서 바라본 일몰도 상당히 이쁘고 낭만적이었지만, 예전 런던보다 맨체스터보다 리버풀 도시를 좋아하는 것처럼 필자는 묵시아 특유의 아기자기하면서 포근한 느낌이 더욱 마음에 더욱 들었기 때문인데, 그렇게 아름다운 묵시아에서 마지막으로 애틋한 시간을 보낸 다음 버스를 타고 다시 산티아고로 돌아갔다.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지만, 언젠가 다시 돌아올 그 날을 기약하며! 좋은 기억을 선사해준 묵시아여 안녕!’

산티아고에 도착해서는 바로 미리 선별해놓은 평점 좋은 알베르게로 향하였다. 그런데 첫 번째로 간 곳은 벌써 사람이 다 차 있었고 두 번째로 간 수도원 알베르게는 공사가 진행 중인 게 아닌가? 각 알베르게 위치도 멀어 마치 순례길을 걷는 것처럼 본의 아니게 대략 한 시간 동안 땀 뻘뻘 흘리며 허탕 치고 고생한 끝에 결국 최종 목적지인 라스트 스탬프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이름처럼 필자의 마지막 알베르게이기도 한 이곳에서 필자의 크레덴시알 마지막 스탬프까지 찍을 수 있었는데, 이후 중국 마켓에 들러 작은 마스크도 구하기도 하고 사온 한국 라면으로 저녁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였다.

산티아고 펍에서 맥주와 함께 본 리버풀 경기. 인생을 배우다.

그러고 나선 근처 펍으로 향하였는데, 오늘 밤에는 필자가 좋아하는 축구클럽 리버풀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유럽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축구 경기가 펼쳐지는 날이었다. 비록 마드리드에서 펼쳐진 지난 16강 1차전 경기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1:0 승리로 끝이 났지만, 리버풀 홈구장 안필드에서 펼쳐지는 2차전 경기. 필자는 안필드의 기적을 믿으며 경기를 보러 갔다.

다들 아틀레티코를 응원하는 분위기 속에서 홀로 조용히 리버풀을 응원하였는데 경기는 바이날둠의 선취 골이 터지기도 하면서 리버풀 분위기가 좋았다. 다만 추가 골이 터지지 않아 연장전에 돌입하였는데 바로 리버풀의 추가 골이 터지면서 이제 진짜 리버풀이 8강에 가는 줄 알고 상당히 기뻐했다. 적진(?)에서 홀로 리버풀을 응원한다는 묘한 짜릿함을 느끼기도 하면서 정말 신났었는데 아뿔싸, 갑자기 실수로 내준 동점 골에 이어 순식간에 연달아 추가 2실점을 하면서 끝내 합산 점수 2:4로 리버풀이 지고 말았다. 허망했다. 탈락이라니. ㅠ 축구 경기를 통해서 얄궂은 운명과 또 한 번 인생의 진리를 배울 수 있었는데, 이는 필자의 현 상황과 맞물려 더욱 큰 울림을 주었다. ‘이것이 인생이구나!’

자라(ZARA)에서 쇼핑 중인 필자

다음 날 기상해서는 초코라떼 츄러스로 아침을 먹고 산티아고에 도착하여 제일 처음 방문했었던, 보다폰 매장이 있던 대형마트에 갔다. 한 달 내내 입고 다녔던 지긋지긋했던 평창 옷과 츄리닝을 드디어 벗어던지기 위해 스페인 현지 브랜드 자라 등 여러 매장을 돌아다니며 그동안 걷는다고 고생한 스스로를 위한 선물 겸 앞으로의 여정 때 입을 옷들을 쇼핑하였다. 여러 시간을 걸쳐 쇼핑을 마치고 나선 산티아고에 있는 한식집에서 들러 제육을 먹는 것으로 산티아고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마무리하였는데, 이제 내일 오전이면 스페인 기차인 렌페(Renfe)를 타고 수도인 마드리드로 넘어가게 된다.

산티아고에서 먹은 마지막 만찬 (제육 덮밥)

참으로 길고 길었던 필자의 다사다난 산티아고 순례길 모든 여정이 정말로 끝이 나니 참으로 시원섭섭한데, 순례길을 걷는 날(생장)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일기도 아마 오늘을 끝으로 멈출 것 같다. 평소 일기는커녕 메모 및 다이어리도 안 쓰는 필자임에도 불구 순례길에서 일기 하나는 비록 하루 미룬 적은 있어도 그 이상 미루지 않고 꼬박꼬박 지금까지 잘 써왔는데, 지금 와서 보니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정말 잘한 것 같다. 하나둘씩 정리되는 지금, 필자의 또 하나의 뿌듯한 업적과 함께 산티아고에서의 마지막 밤이 깊어져 갔다.

 마지막 날 밤 10시에 바라본 산티아고 대성당

<글, 사진 = 김도훈 기자 eoeksgksep1@injurytime.kr>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본지 편집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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