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한 후, 산티아고 대성당을 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각자 돌아가기도 하지만 대다수 순례자들이 산티아고에서 추가로 가는 두 장소가 있다. 바로 피스테라(Fisterra)와 묵시아(Muxía). 피스테라는 지난 포르투갈 여행 때 갔던 호카곶(Cape Roca)과 함께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 유럽 사람들이 땅끝이라고 믿었던 곳으로 '세상의 끝'이라는 의미에서 0.00km가 새겨진 돌비석이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장소 묵시아는 야고보가 묵시아에서 선교 활동을 할 때 성모 마리아가 돌배를 타고 와 야고보를 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스페인의 작은 땅끝 항구로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성지 순례지로 알려져 있다.
두 군데 모두 워낙 아름답기로 유명한 해안 마을이라 산티아고에서 가는 버스 시간표도 있을 정도인데 보통 순례길을 완주하고 나서 산티아고에서 피스테라까지 3일 더 걸어가기도 한다고 한다. 필자 마음 같아선 더 걷고 싶기도 했지만, 시간과 상황 관계상 더 걷는 건 무리라 묵시아를 먼저 갈 것인가 피스테라를 먼저 갈 것인가? 고민 끝에 우리는 저녁 버스를 타고 묵시아로 향했다.
다만 너무 어둑어둑한 시간에 묵시아에 도착하여 그냥 저녁밥을 먹고 잠시 해변 길을 산책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였는데, 아침에 일어나 둘러본 묵시아는 와! 너무나 예뻤다. 특히 언덕 위로 올라가 바라본 아기자기한 마을과 대서양이 쫙 펼쳐져 있는 모습은 마치 만화에서 볼 듯한 정말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덕분에 최근 다음 일정 및 숙소 관련 등 여러모로 신경 쓴다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잠시나마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잊을 수 있었는데, 그저 주변 경관을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지는 순간이었다.
또한 묵시아에서도 0km 표지석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옆에 있는 번개 모양의 바위는 2002년 유조선이 좌초되어 6만6,000톤의 기름 유출로 인근 지역의 생태계가 파괴된 사건이 있어, 그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세운 기념탑이라고 한다. 비록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불확실한 미래, 혼란 속에서 온전히 즐기지 못한 부분은 아쉽지만, 묵시아에서 풍경과 함께 힐링 시간을 보낸 다음 다 같이 택시를 타고 또 다른 명소 피스테라로 넘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예전 필자가 그랬듯이 행님들의 귀국 항공편에도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사실 여기서 오늘 저녁에 다들 헤어지기로 했었는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인생이라고 코로나가 불러온 여파로 인해 본의 아니게 이곳 피스테라에서 하루 더 같이 머물기로 했다. 덕분에(?) 시간적 여유가 생겨 한결 여유롭게 마을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피스테라는 확실히 묵시아보단 큰 마을이었다.
이후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다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춰 다 같이 세상의 끝을 향해 걸어갔다. 세상의 끝은 마을에서 대략 3km 정도 더 깊숙이 들어가야 했는데 대서양을 바라보며 마실 맥주까지 챙겨 들고, 중간에 만난 야고보 동상과 인사도 나누며 걸어간 끝에 0.00km 표지석이 있는 세상의 끝에 도착했다. 세상의 끝은 등대, 십자가도 있고 주변은 바다로 탁 트여 있는 장소였는데 순례자들은 이곳 피스테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의미로 본인이 지니고 있던 물건들, 순례길 동안 함께 했던 옷이나 신발 등을 태웠다고 한다. (지금은 금지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뭐 물건을 태울 마음이 없었기에 탁 트인 뷰를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원 없이 맞으며 마음속으로 새마음 새 출발을 다짐하였다. 또 명당자리를 찾기도 하고 사진 찍고 놀면서 서서히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는데 너무나 들뜨면서도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하이라이트. 가져온 산미구엘 맥주와 함께 대서양 지평선으로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보았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리. 순례길을 걸으며 쌓인 피로와 근심 걱정 모두를 말끔히 씻을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황홀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다만 이 느낌을 언어로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게 매우 아쉬운데 정말 위대한 자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해가 저물고 난 뒤 다시 마을로 돌아가는 길, 살다 살다 마치 태양처럼 밝은 달도 마주하였는데, 필자가 살면서 본 달 중에서 가장 밝은 달과 밝은 달빛을 통해 희망과 위로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덧 다가온 이별의 시간. 이제 진짜 끝이라 그런지 산티아고 대성당을 봤을 때보다 더 뭉클함과 먹먹함이 올라왔다. 어제 서양 삼총사와 헤어질 때도 먹먹했는데 참 이별이란 하면 할수록 무뎌지기는커녕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디오스(Adios)! 이제 내일이면 각자의 길을 향해 떠나야 한다.
<글, 사진 = 김도훈 기자 eoeksgksep1@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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