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순례길 완주의 감동과 기쁨을 느끼고 날이 어둑해짐에 따라 다 같이 택시를 타고 에어비앤비 숙소로 가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그런데 오늘처럼 특별한 날 만찬이 빠질 수 없지. 하필 산티아고에 2020년 미슐랭 스티커가 있는 식당도 보이길래 바로 이곳으로 직행, 화이트 와인과 함께 순례길 역사상 가장 비싼 만찬을 먹으며 그간의 노고와 피로를 씻을 수 있었다.
맛있게 먹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는 자연스레 지난 한 달 동안 걸어온 순례길 여정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우리가 처음 만나 걷기 시작했던 생장(St Jean Pied de Port)에서부터 넷이 처음으로 대화를 나눴던 팜플로나(Pamplona), 최악의 숙소 로스 아르코스(Los Arcos)와 온타나스(Hontanas), 대도시 대성당 레온(Leon)과 부르고스(Burgos),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던 모라티노스(Moratinos), 2월의 마지막 날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에서 즐겼던 카니발, 그리고 순례길에서 맞은 첫눈 등등 그간의 순례길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비록 당시엔 다소 힘들고 곤혹스러웠던 것들도 지나고 보니 모두 즐겁고 소중한, 평생 간직할 좋은 추억으로 남았는데 정말 어디서도 할 수 없는 참으로 귀하고 값진 경험을 한 것 같다.
무엇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갈려면 함께 가라’는 격언처럼 형 누나와 함께 걸었기에 무사히 건강하고 재미있게 잘 도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과연 순례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걸어야 했다면 잘 걸어올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필자와 다소 안 맞고 불편한 부분이 있었더라도 맞춰주고 함께 끝까지 걸어와 준 형, 누나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순간이었다.
그러고 나선 오늘 걸은 거리 및 걸음을 건강 앱을 통해 확인해보았는데, 지난번 프로미스타(Fromista) 6만 보를 넘어선 필자 인생의 새 역사를 찍은 하루였다. 인생 최대 걸음 6만5000보와 거리 44km. 무엇보다 이를 확인하자 갑자기 피곤이 몰려와 역사적인 하루를 빠르게 마무리하였는데 또다시 이렇게 많이 걷는 날이 있을까?
푹 잘 자고 다음 날인 3월 8일 아침 순례 사무소에 인증서를 발급받으러 갔다. 매일 선착순 열 명에게만 인증서와 함께 점심 식사 쿠폰도 제공해준다길래 조금 일찍 일어나 숙소에서 20분 걸어 9시 좀 안 된 시간 순례 사무소에 도착했다. 사이 좋게 6 – 9번째로 도착해 나란히 증명서와 쿠폰을 받았는데 지난 한 달 동안 체감상으로 1000km 훨씬 넘게 걸은 거 같은데 증명서상으론 779km로 약간 적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래도 필자는 리버풀의 레전드 축구 선수 제라드의 등번호인 8번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증명서를 받고 남은 시간 산티아고 대성당 내부를 구경하고자 했으나 배낭 메고는 내부 출입이 불가하여 근처 카페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 순례자를 위한 12시 점심 미사가 행해지는 산티아고 대성당 근처 Convento de San Francisco de santiago 성당으로 향했다. 만남의 광장인 듯 그간 걸으며 마주한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보였는데 이들과 오랜만에 대화도 나누고 함께 미사를 드렸다.
그런 다음 쿠폰을 들고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산티아고 순례길 인증서 발급에 이어 공식적인 순례길 마지막 만찬까지 먹고 나니 이렇게 이제 진짜 순례길 여정이 끝이 났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후련하면서도 시원섭섭한 복잡미묘한 감정이 몰려왔는데 ‘그간 고생 많았다. 도훈. 순례길 경험을 자양분 삼아 앞으로도 열심히 잘 살아가 보자!’
이렇게 길고 길었던 필자의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은 끝이 났지만, 아직 필자의 여행은 끝난 게 아니다. 지금부터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마음껏 즐길 일만 남았기에 우선 바라만 봐도 좋은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누워서 여유를 만끽했다. 공사 중이라 대성당 정문이 가려져 있는 게 약간 아쉬웠지만, 어제와 달리 날씨가 좋아 상당히 행복한 순간이었는데 이윽고 저 멀리서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삼총사를 비롯한 서양 친구들이 오는 것이 보였다. Erin이 우리를 보자마자 DoHoon! 외치면서 달려온 게 되게 인상 깊게 남아있는데, 방금 완주한 이들과도 다 같이 사진 찍고 놀면서 그간 함께한 산티아고 순례길의 보람을 나누고 서로를 축하해주었다.
다만 이를 마지막으로 필자는 철현, 동연행님, 슬기누님과 함께 저녁 버스를 타고 새로운 장소로 향하였는데,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 순례길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필자의 추가 여행, 어떤 일이 펼쳐질지 다음 여정도 기대해주시라!
<글, 사진 = 김도훈 기자 eoeksgksep1@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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