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이 던진 돌이었다. 불확실함 속으로, 어쩌면 새로운 것에로, 어쩌면 무엘 던져졌다.” 헤세 「데미안」에 나오는 문장처럼 필자는 불안한 미래에 운명을 맡긴 채 오늘 아침 마드리드행 렌페(스페인 기차)에 몸을 실었다.
지난번 스페인 라리가 축구 무관중 소식에 이어 스페인의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어가고 있다. 어제까진 스페인 관광지 출입 및 관람이 가능하였는데, 오늘부터 스페인 모든 관광지가 문을 닫는다고 한다. 뉴스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마지막으로 입장한 사람들의 인터뷰도 보였는데 하필 필자가 마드리드로 넘어가는 날 이 무슨 날벼락인가. 추천받은 마드리드 근교 톨레도(스페인 신성로마제국 카를로스 5세의 궁전이 있던 곳으로 198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투어를 비롯하여 마드리드 왕궁, 무엇보다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을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매우 속상했다.
또한 들어 보니 이제 산티아고에 있던 순례 사무소도 폐쇄되어 사무소에서 직접 증명서를 받지 못하고 입구에 있는 통에 크레덴시알을 넣으면 훗날 우편으로 증명서를 보내 준다고 한다. 더군다나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도 모두 문을 닫기로 하여 이제는 순례길을 걸을 수도 없다고 하던데 불행 중 다행? 혼란한 와중에도 산티아고 순례길은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기에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타이밍이 늦어 순례길 완주도 못 하고 만약 걷던 도중에 멈춰야 했으면 더욱 상실감이 컸을 것 같다. 비록 남은 기간 온전한 여행은 물 건너갔지만, 순례길이라도 온전히 완주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긍정적인 생각과 함께 마드리드로 향하였다.
여러 역경을 뚫고 도착한 마드리드, 필자가 급히 잡은 숙소는 마드리드 외곽 알코르콘에 위치하였기에 우선 지하철을 타러 갔다. 그런데 마드리드 지하철은 기차랑 같이 운행하고 있어 좀 어려웠다. 처음이라 표 예매부터 쉽지 않았는데, 말도 안 통해 혼자 이리저리 고생하다 다행히 누군가가 필자를 도와주어 알마르콘 숙소로 무사히 갈 수 있었다. 다만 지하철도 그렇고 거리에 사람이 생각보다 별로 없어 썰렁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도 숙소에서 한국인 사장님과 몇몇 한국인을 만나 불안한 마음이 약간 진정되기도 했다.
이제 밖에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기에 숙소에서 쉬다 스페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과 치킨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최근 마드리드에 코로나 확진자가 넘쳐나 마드리드를 봉쇄한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때 약간 정신적으로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는데 아직 귀국까지 12일이나 남아있기에 더욱 무서웠다.
마드리드에 있을 게 아니라 빠르게 일단 바르셀로나로 넘어가야 하나 생각이 들어 바로 바르셀로나 민박을 열심히 찾아보면서 바르셀로나행 버스를 급히 예매했다. 귀국 전까지 바르셀로나에서 순례길 기록을 정리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르셀로나 민박 사장님께서 지금 바르셀로나도 상황이 심각하기에 여기로 올 게 아니라 아직 중동 항공을 통해서는 마드리드에서 한국으로 귀국 가능하니 항공편을 찾아서 그냥 빠르게 마드리드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셨다.
듣고 보니 아무래도 그게 맞는 거 같아서 바로 비행기를 알아보았다. 카타르 항공이 보이길래 트레블제니오라는 사이트를 이용하여 급히 예매를 진행하였는데 여기서 악몽이 펼쳐지고야 말았다. 해외라 50만 원 이상 이체가 안 되는 난관에 봉착하여 급히 한국에 연락해서 사촌을 통해 입금을 완료하였는데, 갑자기 예약이 취소되어버린 것이다. 아니 결제 전에는 예약이 컨펌되어 있다가 입금을 하니 갑자기 예약 취소? 여기서 필자는 완전 멘탈 붕괴를 겪게 되었는데, 불안한 시기, 불안한 상황 속에서 필자는 필자대로 난리고 새벽 시간 한국에선 또 한국에서 난리가 난 그야말로 아수라장 완전 혼돈의 시간이었다. <뒤늦게 보니 트레블제니오는 악명 높은 사이트였다. 웬만하면 이용하지 마시길!!>
급한 마음에 바로 공항에 다녀오기도 했는데, 일단 빠르게 탈출하는 게 우선이기에 에라 모르겠다. 사전 아시아나항공과 해결 못 한 트레블제니오와 카타르 항공은 제쳐두고 바로 내일 날짜로 돌아가는 에미레이츠 항공편 예매를 완료하였다. 그런 다음 마드리드 시내 작은 호텔에서 돌아가 악몽 같았던 마드리드에서의 이틀이자 유럽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마무리하였는데, 저 멀리 희미한 터널 끝의 불빛처럼 순례길보다 더 힘들었던 순례길 이후의 유럽 생활도 마침내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난 이틀이 필자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 끔찍했던, 정신적으로 괴로웠던 이틀이라 할 수 있는데, 그래도 이제 내일이면 길고 길었던 유럽 생활을 끝내고 마침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만세!!! 무시무시한 서바이벌에서 살아남아 무사히 귀국한다는 안도감과 함께 악몽 같던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밤이 깊어져 갔다.
<글, 사진 = 김도훈 기자 eoeksgksep1@injurytime.kr>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본지 편집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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