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산티아고 순례' (52) - 마스크 찾아 삼만리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이후 두 번째 이야기(2020. 03. 10)
피스테라(Fisterra) – 묵시아(Muxía)
김도훈 기자
승인
2021.11.26 11:00 | 최종 수정 2021.11.30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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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함께했던 시간은 이젠 추억으로 남기고 서로 가야 할 길 찾아서 떠나야 해요♬
오늘은 다들 각자 갈 길을 향해 떠나는 날이다. 형, 누나들은 산티아고로 돌아가고 필자는 오늘 피스테라(Fisterra)에서 해안 길을 따라 다시 묵시아(Muxía)로 걸어가기로 했기에 아침 작별 인사를 끝으로 헤어졌다.
그런데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티가 난다고 했던가. 한 달 내내 붙어 있다가 막상 떨어져 혼자 걸으니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몰려왔다. 그렇지만 서양 삼총사와 다음에 슬로베니아나 미국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던 것처럼 언젠가 우리도 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본격적인 필자의 홀로서기 겸 마지막 걷는 여정을 출발하였다.
생각해보니 오늘이 필자가 군대 입대한 지 5주 년 되는 날이기도 했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르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는데 입대 날처럼 오늘 날씨도 상당히 좋지 못했다. 비가 내리는 데다 홀로 가다 보니 초반 길을 조금 헤매기도 하여 걷는 게 쉽지 않았는데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유럽 & 스페인이 더 이상 코로나 청정구역이 아닐 뿐더러 스페인에서 코로나 상황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처음 터졌을 때 코로나 청정구역인 스페인 순례길에 있다고 좋아하고만 있을 게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을 가지고 초반에 약국 가서 마스크를 미리 몇 개라도 샀어야 했는데 그 당시엔 그저 태평하기만 했다. 결국 상황이 악화된 지금에 와서야 뒤늦게 부랴부랴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보이는 약국마다 들러 보았지만, 어디에도 마스크가 남아있지 않았다. 필자의 선견지명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그래도 간신히 마스크 하나를 구하긴 하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 가지 안 좋은 소식을 바로 접하게 되었다.
긴급뉴스로 2주 동안 라리가(스페인 프로 축구 리그) 모든 경기를 무관중으로 진행한다고 발표가 난 것이다. 아뿔싸! 원래는 순례길 이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펼쳐지는 레알 마드리드 경기와 캄프 누에서 펼쳐지는 바르셀로나 경기를 한 경기씩 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계획을 짜놨었는데 또 한 번의 허망함을 느끼게 되었다. 기대했던 만큼 더욱 힘이 쫙 풀렸다. 더군다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언제는 한국이 제일 불안하고 위험해 보였는데 이제 한국이 제일 안전해 보이고 지금은 스페인이 더 위험한 것 같아 더욱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일단은 오늘의 목적지 묵시아를 향해 나아갔다. 해안 길을 따라 걷는 줄 알았건만 숲길만 걸어 좀 쳐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묵시아에 가까워질수록 해안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바라보니 다행히 다시 마음이 편안해졌는데 묵시아 근처 몽돌 해수욕장 같은 장소를 발견하여 그곳에 앉아 30분가량 바다를 보며 홀로 멍하니 감상에 잠기기도 하고 여유를 즐긴 끝에 묵시아에 도착했다. 한 번 와봤다고 되게 정겨운 느낌이 들었는데 거기다 완전 대박! 살다 살다 가장 크고 아름다운 무지개를 직접 눈으로 보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다만 필자는 아무래도 마스크가 없는 게 계속 불안하여 묵시아에 있는 모든 약국에 가보았지만 도통 마스크를 구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5km 떨어져 있는 약국에 마지막으로 한번 전화를 걸어보았는데 다행히 그곳엔 마스크가 있다고 했다. (si. 스페인어로 yes) 바로 마스크 여정을 떠났는데 걷던 도중 갑자기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마스크를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비를 맞아가며 뚜벅뚜벅 간신히 약국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약국에서 마스크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전화했을 때는 있다면서요? 단호하게 없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약국 밖을 나오게 되었는데 이 무슨 허탕인가. 필자의 모습이 마치 물에 젖은 생쥐처럼 처량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비도 계속 내리고 도저히 걸을 엄두가 안 나 돌아가는 길은 히치하이킹을 시도하였다. 두 번의 무시 끝에 인자한 할아버지가 태워주셔서 차를 타고 무사히 묵시아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무려 한 시간을 걸어온 거리가 차로는 불과 5분 거리였다. 거기다 묵시아에 도착하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는 것이 아닌가. 이루 말할 수 없는 허망함이 몰려와 이를 달래기 위해 어제에 이어 언덕에 올라가 거기서 홀로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었다.
너무 다이나믹한 여정에 고생해서 그런가 뭉클함 먹먹함이 있었는데 다사다난했던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면 비록 마스크는 못 구했지만, 한국에서도 해보지 못한 히치하이킹을 성공했다는 뿌듯함과 함께 여러 색다른 경험 및 새로운 추억을 쌓은 뜻깊은 하루로 기억될 듯하다.
<글, 사진 = 김도훈 기자 eoeksgksep1@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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