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산티아고 순례' (49) - 순례길 종착지, 산티아고 대성당과 마주하다

산티아고 순례길 32일차(2020. 03. 07)
아르수아(Arzúa)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39km 구간

김도훈 기자 승인 2021.11.12 20:33 | 최종 수정 2021.11.15 14:05 의견 0
7시 40분, 안개 속에서 마치 귀신이 나올듯한 새벽 순례길의 풍경.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아왔다. 사실 원래는 내일 산티아고 도착하는 일정이지만 하루라도 빨리 산티아고 대성당을 보고 싶었기에 우리는 지난번 레온(Leon)에 갔을 때처럼 대략 40km 거리를 한 번에 걸어 오늘 산티아고에 도착하기로 했다. 모처럼 긴 거리를 걸어야 하기에 오늘은 새벽 다섯 시 반에 기상을 하였는데, 세상 부지런한 동연 행님이 깨워주셨음에도 불구 일어나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순례길 역사상 가장 힘든 아침 기상이었는데, 아마도 그간 피로 누적과 오랜 순례길 생활 적응에 따른 약간의 게으름 때문인 듯했다.

그렇지만 확실한 목표가 있었기에 빠르게 짐 정리 및 모든 준비를 마친 다음 6시40분. 대망의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길의 마지막 여정을 출발하였다. 모두가 잠든 시간, 고요하고 어두컴컴한 하늘 아래 오랜만에 랜턴도 사용하면서 어둠을 뚫고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전설의 고향 귀신 나올 것 같은 숲속을 지날 땐 약간 무섭기도 했는데 주변에 안개는 많았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다만 해가 없어서 그런지 기운이 살아나지 않아 초반엔 걸으면서도 계속 멍하고 피곤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 여정의 기록

그래도 서서히 주변이 밝아오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옴에 따라 피곤함도 서서히 사라지고 기운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확실히 인간은 날씨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해가 떠오름에 따라 한층 밝아진 기분으로 오전 시간은 이런저런 생각 및 심정 정리, 주변 지인들과 통화를 하면서 걸었다. 마지막 여정이지만 늘 하던 대로 향후 일정을 생각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걸어갔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표지석에 쓰여있는 거리도 30km, 20km, 10km, 이렇게 확확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많이 걸어왔을수록 힘들기는커녕 더욱 힘이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필자의 유심 기간이 곧 만료라 오늘 보다폰 유심을 바꿔야 했기 때문에, 막바지 10km를 앞두고는 홀로 먼저 산티아고를 향해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막바지 아스팔트 길까지 걷고 걸어 오후 4시30분. 드디어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중심지이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도시, 2000년에는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된 도시인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 다다랐다. 참고로 콤포스텔라는 별이 빛나는 언덕, 별들의 들판이란 뜻이라고 한다.

드디어 마주한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필자.
필자의 순례길 분신 배낭과 가리비 그리고 감격스런 산티아고 대성당의 모습.

산티아고에 도착해서는 우선 도시 입구에 있는 대형마트 안 보다폰 매장으로 직행하여 유심칩을 새로 끼웠다. 이후 뒤따라오던 형, 누나를 기다릴 겸 마트 구경을 하였는데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안 와 확인해보니 데이터가 안 터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약간의 소동이 있었지만, 부랴부랴 문제를 해결한 다음 간신히 산티아고 입구에서 다시 만나 대망의 목적지를 향해 같이 걸어갔다. 산티아고는 여느 대도시답게 상당히 넓어 도시 입구에서도 대성당까지 한 20 - 30분 걸어가야 했는데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낸 끝에 마침내!!! 오늘 출발한 지 11시간 30분이 지난 오후 6시 10분. 말로만 듣던 성지이자 대망의 목적지,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과 마주하게 되었다.

지난 한 달 함께한 형, 누나와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한참 걸을 당시엔 산티아고 대성당을 직접 보면 어떨까?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진 않을까? 막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큰 감흥이랄까 감동의 눈물이 몰려오진 않았다. 슬기누님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는데, 필자는 감동보단 그냥 도착했구나. 당연한 걸 하나 해결했다는 느낌이 들어 처음엔 오히려 덤덤했다. 그래도 우리를 환영해주는 악단(?)의 음악 연주가 들려오기도 하고 지금껏 잘 해냈다는 생각에 갈수록 기분이 좋아져 대성당 앞에서 백구처럼 뛰놀며 성취감과 뿌듯함, 즐거운 시간을 마음껏 만끽하였는데 지금 시점에서 딱 드는, 변하지 않을 생각 한 가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필자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바로 순례길 걷기 전과 비교해서 필자가 훨씬 괜찮은 사람이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산타고의 석양

뒷이야기는 다음 화에 계속 ~

<글, 사진 = 김도훈 기자 eoeksgksep1@injurytime.kr>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본지 편집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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