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메랄다 로피즈. 12세. 천국에서 편히 쉬다.(『언더월드』 본문 인용)
돈 드릴로의 1997년 소설 『언더월드』에는 종일 컴퓨터 속 인터넷 세상을 웹서핑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제프(Jeff)라는 젊은이가 등장한다. 어느 날 그는 인터넷에서 한 소녀가 끔찍한 범죄의 희생양으로 사망한 채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기사를 읽는다. 미국 뉴욕의 브롱크스 인근에 있는 ‘벽’(Wall)이라 불리는 빈민가의 한 건물 지붕 위에서 한 소녀가 강간을 당한 후 건물 아래로 내던져진 채 죽은 것이다. 그 소녀의 이름은 에스메랄다다. 이 기사는 인터넷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면서 많은 시민들의 공분과 애도의 중심에 놓인다. 그 와중에 이스마엘이라는 예술가는 이제껏 해 온 것처럼, 죽은 소녀의 얼굴을 빈민가 벽에 그래피티로 애도를 표현한다. 이어서 ‘기적 같은 일’이 등장한다. 야간에 그 지역 철로로 기차가 지나가면서 비춘 불빛에 철로 옆 광고판에 죽은 에스메랄다의 얼굴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자 그 기적을 직접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와 보도진이 몰려든다. 그 가운데는 제대 위에 성물을 바치듯 자신의 아기를 들어 올리는 엄마도 있다. 심지어 에스메랄다를 ‘벽’ 안의 빈민가에 버렸던 초라한 모습의 친모도 모습을 드러낸다. 그 친모는 에스메랄다로 여겨지는 얼굴이 광고판에 나타나자 이내 기절하고 만다. 그런 그녀를 구급차가 실어가고 취재 차량이 그 뒤를 따른다.
정작 이 기적의 현장에 찾아간 에드가, 그레이시 두 수녀는 ‘그 얼굴이 정말 에스메랄다의 얼굴인지, 그리고 그것이 과연 기적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들은 자신들과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믿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 ‘기적’은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나흘 째 되던 날부터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진다. 사람들은 다시 ‘흥밋거리’를 찾아 인터넷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사실, 현대사회에서 “진정한 기적은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든 곳에 모일 수 있게 하는” 인터넷 세상 자체이기 때문이다.
드릴로는 『언더월드』를 통해 다양한 인물들과 다양한 이야기들이 서로 별개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각각의 것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복잡하고도 거대한 세상사를 만들어 가는 것임을 재확인시킨다. 그리고 이제, 수십억 수백억 개의 파편된 조각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네모난 세상 속에 한꺼번에 모여 있는 ‘인터넷 세상이 오히려 바깥의 현실 세상을 움직인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모호함을 넘어 무의미한 논쟁이 되고 있다. 그러기에 드릴로는 거의 천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거리의 소녀인 에스메랄다의 죽음을 등장시킨다. 이 사건의 발견 역시 인터넷 세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그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에 의해 실제 세계로 이동, 확대되어 사람들을 현실공간으로 불러내지만, 더 이상의 흥미가 사라지자 다시 인터넷 세상에 영원히 묻히는 것으로 끝난다. 물론, 인터넷 세상에서의 죽음과 매장은 누군가의 검색으로 인해 언제든 부활할 수 있다.
드릴로가 에스메랄다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보여주는 ‘벽’이라 불리는 빈민촌은 철저하게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다. 그곳은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채 살고 있는, 그리고 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사람들의 공간이다. 더욱이 모든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인터넷 세상에서조차 제외되고 소외된 곳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별다른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기에(즉, 돈이 되지 않기에) 인터넷 세상도 그들을 무시한다. 그곳은 심지어 네트워크 세상에 연결되기 위해 필요한 와이파이(Wifi)조차 부재하기에, 세상의 누군가가 소환해내지 않는 한 (인터넷) 바깥 세상과도 안쪽 세상과도 거의 ‘접속’이 불가능하다. 거기 그 사람들은 그곳에 있지만 마치 있지 않은 존재처럼 살고 있다.
소설 속 ‘벽’은 페루에 존재하는 ‘수치의 벽’(Wall of Shame)을 연상시킨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여기 사는 사람들을 범죄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단정 짓고, 높은 벽을 쌓아 가두고 차단시켜 버리는 그 벽은 탐욕과 이익으로 점철된 자본주의 사회 속 현대인들의 냉혹한 면모를 단적으로 증명해 보이는 일례라 하겠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시간에 동일 공간에 모일 수 있게 한다는 현시대의 진정한 기적인 인터넷 세상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또 다른 기적인 ‘메타버스’(metaverse)를 창조하고 있지만, 이 세상으로의 패스워드 역시 돈이다. 돈 없는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지역은 메타버스의 세상에서도 소외되고 만다. 이처럼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약자를 더욱 소외시키고 외면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제는 이러한 약자들의 존재와 그들이 사는 공간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가상공간으로 변하는 듯하다. 이들의 이야기는 어떤 이유로든 인터넷에서 회자될 때만 호기심과 동정을 받을 뿐 사람들의 흥미가 사라지면 금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듯이 사라진다. 소설 속 에스메랄다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외감이 비단 에스메랄다의 몫만은 아니다. 수많은 연결망 속에 서로 연결된 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혼자임을 느낀다. 우리가 속한 네크워크는 마치 와이파이 문제로 접속이 불가능한 순간처럼 순식간에 와해될 수 있음을 직감한다. 결국 이 거대한 연결망 속에서 현대인들 각자는 그저 하나의 작은 노드일 뿐이다. 그러기에 드릴로는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잠시만 창밖을 내다보라”고 말하고 있다. 이웃집 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과 이웃들의 이야기 소리, 그리고 하늘과 바람과 별을 보고 듣고 느끼라고 말이다. 수많은 연결망으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세상을 살면서, 나와 연결된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다 인간적인 소중한 만남으로 이어가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깊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바로 이럴 때만이 지금의 이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과 가상의 네트워크 세상에서 제대로 존재하고 함께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수많은 현실과 가상의 연결고리 속에서 제대로 된 굵직한 연결고리 하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말이다.
총 5회에 걸쳐 쓰레기와 핵, 인터넷 그리고 인간이라는 각각의 주제를 통해 살펴본 드릴로의 『언더월드』는 결국 자연과 환경, 과학과 인간은 모두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재확인시켜준다. 아울러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경각심을 잊지 않도록 현대인들에게 경고와 지혜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Everything is connected.)
<영문학 박사 / 인문학당 달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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