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자 박선정의 '돈 드릴로와 함께 세상 읽기' 7 - 『언더월드』①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박선정 승인 2021.11.06 09:09 | 최종 수정 2021.12.21 14:20 의견 0
1997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카사델라쿨투라(카사델라 문화센터)에서 열린 돈 드릴로의 '언더월드' 독서토론회. 오른쪽은 이탈리아 문학평론가이자 밀라노 IULM 대학 비교문학 교수인 파비오 비토리니 [유튜브 Casa della Cultura  Via Borgogna 3 Milano](왼쪽 상단은 돈 드릴로. 합성)

24년 전 소설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돈 드릴로의 『언더월드』(Underworld, 1997)를 영어 원서로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과 전율, 그리고 공포가 마치 어제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돈 드릴로의 최대 걸작이라고 인정받는 이 소설이 아직까지 국내의 독자들에게 소개되고 읽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서 분량이 거의 천 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이어서 일까, 번역 판권을 이미 오래전 선점하고 있는 출판사 「창비」가 여태 한글 번역본을 출판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나마 최근 소식에 의하면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물로 영화화할 예정이라고 하니, 조만간 영상으로 『언더월드』를 만나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본다.

드릴로는 한 인터뷰에서 “『언더월드』는 폭탄 아래에서 함께 살아온 지난 40년에 대한 감춰진 역사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이 소설의 중심에는 권력과 자본을 쟁취하기 위한 전쟁의 핵심이자 근현대 세계사의 거대 허브라고 할 수 있는 ‘폭탄’이 있다. 현대사회에서의 폭탄은 결국 ‘핵폭탄’으로 귀결될 터인데, 이 역시 핵의 분열과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에너지로 인해 생겨나는 부차적인 부산물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핵분열 역시 ‘분열’이라는 말과는 달리 오히려 서로 연결되어 일어나는 ‘연쇄반응’의 결과로 엄청난 폭파를 불러일으킨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드릴로는 소설 속에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러한 연결이 어떤 식으로 전혀 예상치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특히, 핵폭탄이라는 것이 우리가 예상하지 않았던 부산물에서의 반응에서 초래된 것처럼, 인류의 역사 속에서 드러난 사건 사고들 역시 오히려 우리가 부산물이라 여기는 것들에서의 연쇄작용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핵폭탄과 더불어 『언더월드』의 또 다른 연결고리는 ‘쓰레기’다.

돈 드릴로의 『언더월드』 표지

소설 『언더월드』는 1951년 10월 3일 뉴욕 폴로그라운드에서 있었던 세기적 야구경기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9회 초까지 지고 있던 뉴욕 자이언츠가 바비 톰슨의 홈런으로 브루클린 다저스에 역전승을 하는 장면이다. 야구 방망이에 공이 부딪치는 홈런의 순간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the shot around the world), 바로 그 순간 관중석에서 그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악명 높은 FBI 국장 에드가 후버는 소련의 첫 핵폭탄 실험에 대한 보고를 받는다. 그리고 관중석에 몰래 숨어 들어와서 경기를 보고 있던 흑인 소년 코터 마틴은 운 좋게도 톰슨이 날린 역사적인 홈런공을 손에 넣는다. 이후 마틴의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이 공을 내다 팔고 그 공은 다시 수집가 마빈 룬디의 손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닉 쉐이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엄청나게 비싼 가격을 치르고 닉의 손에 들어 온 그 공이 그 역사적인 공이라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이처럼 소설은 첫 시작을 알린 홈런공과 폭탄이라는 두 개의 핵이 차츰 분열되어 가는 과정처럼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역사적인 실제 인물들의 실제 사건들과, 가상의 소설 속 인물들과 그의 허구적 이야기들이 서로 이어지면서 거대한 폭발과도 같은 충격을 준다. 이처럼 소설 속 인물들은 각각 크고 작은 허브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데, 그중 조금 더 중요한 거대허브의 인물이 닉 쉐이다. 그리고 소설은 닉과 알게 모르게 얽힌 인물들과 사건들로 이어지는데, 그들 각각의 이야기가 모여 이 소설 전체를 구성한다. 그의 아내인 메리언, 그의 동료이자 메리언과 불륜관계에 있는 바비 톰슨, 닉의 한때 연인이기도 했던 클라라 삭스, 닉이 어릴 때 담배를 사러 나갔다가 그 길로 영원히 사라져버린 닉의 아버지, 닉의 동생 매트와 그의 아내 자네트, 그리고 FBI 국장인 에드가 후버, 닉이 어릴 적 다닌 가톨릭학교 교사였으며 현재는 빈민촌 봉사를 하는 에드가 수녀, 그리고 ‘벽’(Wall)이라고 불리는 빈민촌의 벽에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 이스마엘과 그 벽 안에서 강간당한 채 처참하게 죽어간 에스메랄다가 그 인물들이다.

박선정 박사

전혀 무관해 보이는 이들과 사건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는 소설을 다 읽은 후에야 비로소 드러난다. 또한 전혀 상관없다고 여겼던 쓰레기와 핵폭탄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깨닫게 된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의 연결고리, 그것이 곧 ‘언더월드’인 셈이다. 드릴로가 소설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하는 문장이 있는데,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everything is connected)는 문장이 그것이다. 이것은 ‘나비의 작은 날개짓 하나가 태평양을 건너면서 거대한 허리케인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지금 누군가가 만든 작은 사건 하나가 핵분열 같은 연쇄작용을 거치면서 엄청난 폭발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설에서처럼, 한 야구선수의 팔에서 뻗어 나온 힘이 만들어 낸 홈런 한 방이 그때까지의 패배를 역사적인 승리로 이끌 수 있고, 내가 버리는 쓰레기 하나하나가 쌓여서 ‘기자의 피라미드’ 보다 훨씬 더 높은 쓰레기 산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실제로 체르노빌에서는 발전소의 작은 설계 결함과 조작자의 작은 실수가 엄청난 폭발을 불러일으켰고, 사고 후 40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체르노빌과는 거리가 먼 지역에서조차도 기형아와 희귀 질병들이 발생하는 연쇄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 속 연쇄 사건들과 함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드릴로의 24년 전 소설 속 경고는 현재 팬데믹 상황에서 더욱 명확하게 다가온다. 나와는 동떨어진 어느 지역에서의 질병이 지금처럼 전 세계로 퍼져갈 것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실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그대로다. 전 세계가 교통망과 인터넷 망으로 연결되면서 체험해 온 ‘지구촌’의 현실은 단지 긍정적인 면만 품은 것이 아니었다. 이제 우리는 이전의 어느 때보다도 극명하게 한 배를 탄 운명을 가진 인류가 되었다. 더 이상 너와 나는 완전한 남이 될 수 없고 서로에게 무관심할 수도 없다. ‘공동선’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에 살면서도 인간은 점점 더 자기만의 ‘이기심’을 내려놓지 못한다. 『언더월드』를 통한 드릴로의 경고가 더욱 무섭게 다가오는 이유다. - ㊦에서 계속 -

<영문학 박사 / 인문학당 달리 소장>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