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자 박선정의 '돈 드릴로와 함께 세상 읽기' 4 - 『리브라』㊦ 불평등의 그물에서 발버둥치는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
박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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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7 15:39 | 최종 수정 2021.06.21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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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동네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나도 잘 모르겠어.”
“나는 온종일 서서 일한다.” 마거리트가 말했다.
“나 때문에 엄마가 고생한단 소리네.”
“그렇게 말한 적 없다.”
“나도 내가 직접 저녁 챙겨먹는 거 싫어.”
“나는 일하잖아. 일한단 말이야. 돈을 벌고 있잖니?”
“그래봤자 겨우 입에 풀칠하는 정도인데 뭐.”“내가 앉아서 빈둥거리는 게 아니잖아.” ...
(『리브라』중에서)
돈 드릴로의 소설 『리브라』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소년 리 하비 오스월드와 어머니 마거리트의 대화다. 드릴로는 소설의 많은 부분을 리 오스월드의 유소년 시절 이야기들에 할애하고 있다. 특히 아들 리에 대한 어머니의 증언과도 같은 서사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어머니와 아들’의 고단했을 삶을 들여다보도록 만든다. 모자는 마치 영화 '기생충'을 연상시키는 지하방 공간에서 살았다. 난독증을 겪으면서도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아들 리는 거의 학교에 가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거리를 배회하곤 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아비 없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았지만 세상의 모든 자식이 부모의 바람대로 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처럼 그녀 역시 자신의 아들이 멋진 성인으로 자라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들은 결국 어머니의 바람과는 정반대 쪽에서 유명인이 된다.
리 오스월드의 어머니는 동물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서 동물원 옆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는 아들이 좋아할 거라고 기대한다. 물론 집세가 저렴해서 이사 간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군대에 입대한 후 아들의 소식이 끊어졌을 때는 미국 내 여러 관련 기관에 지치지 않고 자식을 찾아달라는 탄원을 내기도 한다. 세기의 미 대통령인 케네디를 암살한 자의 어머니 역시 아들만은 잘 키우고 싶고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그저 평범한 어머니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들은 ‘자식들을 돌보느라 모든 걸 포기한’ 어머니에게서 사랑과 고마움을 느끼기 보다는 지겨움을 느끼는 듯하다. 신세한탄처럼 또는 자기 위로와 변명처럼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또 시작이다’라는 말과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듯 ... 떠들어대는’ 것으로 표현될 뿐이다.
“나는 이날 이때껏 자식들을 돌보느라 모든 걸 포기했다. 이건 나한테 지독한 오점이야. 나 역시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랐다는 걸 잊지 마라. 그런 환경이 얼마나 지긋지긋한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 나는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살림까지 도맡아했다.”
또 시작이다. 그녀는 곧 리의 존재를 망각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듯 목소리를 높여 족히 두 시간은 떠들어댈 게 틀림없다.”(『리브라』중에서)
혼자 아들을 키우고 경제를 꾸려가면서도 리의 어머니는 “집 안 어느 한구석 반짝반짝 빛나지 않는 곳이 없고 무엇 하나 흐트러진 것 없이 잘 정돈”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면서 살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하자마자 유럽으로 떠나는 배를 타고 집과 고국을 떠난 것이 모두 “자신의 인생을 짓누르는 고단함이 그 애를 떠나게 한 거라” 여기며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인생이 그 아들의 인생으로 대를 잇는 것을 힘없이 지켜봐야만 했을, 그리고 그 사건 이후에는 대통령을 암살한 살인자의 어머니라는 지탄 속에서 살아야 했을 리의 어머니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그렇다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운명을 갖고 태어나는 것일까. ‘리브라’(천칭자리)라는 제목은 리 오스월드의 탄생 별자리이면서 동시에 케네디의 별자리이기도 하다. 즉, 둘은 같은 별자리의 운명을 갖고 태어난 셈이다. 그럼에도 둘은 시작부터 완전히 다른 삶을 산다. 한 명은 부유한 명문 가정에서 태어나 교양 있는 어머니의 돌봄과 교육 환경 아래에서 지도자로서의 인물로 성장한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듯이’ 신세한탄을 하며 삶에 찌들려 있는 홀어머니와 함께 가난과 불안과 사회의 무시 속에서 세상의 외토리로 자란다. 그렇게 전혀 만날 것 같지 않은 둘은 운명적으로 한 지점에서 만나 완벽한 무명의 하나가 다른 유명의 하나를 살해함으로써 함께 세계사 속에 남는다. 그리고 자신의 총을 맞고 쓰러져간 상대 리브라(케네디)의 운명처럼 자신(리)도 전혀 무관한 누군가(잭 루비)의 총에 쓰러져 간다. 결국 두 명의 운명은 리브라(천칭)의 양쪽 위에 같은 죽음의 무게로 걸린다. 그러나 대통령으로 살다간 한 인물은 세계의 추모 속에서 세상과 이별을 하지만, 나머지 한 명은 무덤의 묘비명에서조차 자신의 본명을 적지 못한 채 쓸쓸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과연 리 하비 오스월드, 그의 잘못일까? 아니면, 그 아이를 이렇게 밖에 키우지 못한 그의 어머니 마가레트의 잘못일까?
리 오스월드의 이러한 운명은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서 등장하는 ‘일렉트로’라는 이름의 ‘전기 인간’과도 흡사하다. 그는 처음부터 세상과 인간을 파괴하려고 태어난 악마가 아니었다. 그는 흑인이며 사회의 약자이자 소수자로서 거대한 회사 속의 기계 부품처럼 존재감 없는 한 기술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오히려 책임감도 있고 의리도 있으며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전혀 자신의 잘못과는 무관하게 ‘어쩌다가 우연히 운명처럼’ 온 몸에 전기가 통하고 전기 뱀장어의 공격을 받으면서 ‘전기인간’으로 부활한다. 온몸에 전기가 흐르면서 엄청난 힘과 파괴력을 얻으면서 괴물과도 같은 외모로 변신한 이후에도 그는 인간들과 세상을 향해 전혀 분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가 이전과는 달리 ‘자신을 쳐다보고 있음’에 감탄하고 놀라워한다.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존재감 없이 살던 아웃사이더가 일순간 모두의 관심을 받게 된 데에 대한 감동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세상이 자신의 실제 모습과는 상관없이, 혹은 알려고조차 하지 않은 채, 자신을 모두의 ‘적’으로 지목해버렸음을 깨닫는다. “이건 제 잘못이 아니에요.”를 되풀이해서 외치지만 세상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그는 말을 들을 가치조차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리라. 세상은 일제히 그를 공공의 적으로 간주하여 공격을 가하고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에 박수와 찬사를 보낸다. 이제 그 스스로가 세상의 적이 되고 악이 되는 것밖에 다른 선택은 없다. 밀란 쿤데라가 말한 ‘추락본능’이 이런 것이지 싶다.
돈 드릴로의 『리브라』에 등장하는 리 오스월드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리를 살해하는 잭 루비 역시 현대사회에서의 지독한 아웃사이더들이다. 어쩌면 이들은 불평등 속에서 태어나 공정하지 못한 삶과 대우를 받다가 결국 죽어서 마저도 정당하지 못한 평가로 역사에 기록된 우리 사회 최고의 약자들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돈 드릴로는 소설 『리브라』를 통해 노력이나 선택과는 무관하게 사회가 던져 놓은 숱한 불공평함의 그물망 속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을 조금은 달리 바라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보이지 않는 수없이 많은 것들이 서로 얽힌 채 빠른 속도로 생성과 변화를 만들어가면서 점점 더 인간의 존재 의미는 사라져 가는 현대 사회에서, 보이는 것 너머에 감추어진 진실과 의미에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을 열어 놓아야 할 때가 아닐까.
<영문학 박사 / 인문학당 달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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