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자 박선정의 '돈 드릴로와 함께 세상 읽기' 9 - 『언더월드』④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 인터넷에 대한 고찰

박선정 승인 2021.12.15 20:12 | 최종 수정 2021.12.18 18:31 의견 0

드릴로는 1997년 소설 『언더월드』에서 ‘핵’에 이어 ‘인터넷’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현대 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된 인터넷이 앞에서 살펴본 핵과 여러 면에서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결합되어 있으면서 주변을 둘러싼 원자들의 분열이나 융합과 같은 작용을 통해 에너지를 생성한다. “끊임없는 연결망으로 장비되어 있는” 인터넷 역시 마찬가지다. 인터넷(Internet)이라는 단어의 개념 자체만으로도 “컴퓨터 이용자들이 온 세계의 컴퓨터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해 주는 컴퓨터 네트워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야말로 인류의 역사상 전례 없는 거대한 정보의 연결망인 셈이다.

“이 바깥에는, 아니 이 안쪽에는, 아니 그녀가 있는 곳이 어디든 간에 그곳에는 공간이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오직 연결만이 존재한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모든 지식이 모이고 연결되고. 하이퍼링크되고, 이 사이트가 저 사이트에 연결되고, 이 사실이 저 사실에 관련된다. 키 스트로크, 마우스 클릭, 끝없는 패스워드의 세계, 아멘(그대로 이루어 지소서).”(『언더월드』 825 인용)

원자핵에 대한 연구가 처음에는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었듯이 인터넷 역시 마찬가지다. 인터넷은 수많은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망과 자본주의가 서로 결합되면서 개발자들의 초심과는 무관한 방향으로도 이용 발전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핵이 발전소로 이용되어 인간에게 편리함을 주는 반면에 핵폭탄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냈듯이, 그리고 그 발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만들어진 ‘부산물’ 또는 쓰레기가 불멸의 존재처럼 땅속에 남아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듯이, 인터넷 역시 그 편리함 아래에서 세상과 인간을 위협하는 또 다른 괴물을 키우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인터넷 세상 이미지 [픽사베이]
인터넷 세상 이미지 [픽사베이]

무엇보다도 인터넷에 대한 현대인들의 의존도가 점점 더 높아지면서 인간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네트워크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인터넷 속 빅데이터는 충실한 하인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각 개인을 분석하고 정리한 후 그 결과물을 우리에게 바친다. 그러나 정작 그것은 자본과 권력이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우리 인간을 이용하기 위한 분석이며 인간들을 더욱 옭아매기 위한 족쇄로 이용되고 있다. 인터넷은 인간에게 말한다. “나는 당신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심지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당신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이러한 분석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더 오랫동안 인터넷 세상에 머물면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최종 목적은 네티즌이 되어버린 인간들로 하여금 상품 구입에 더 많은 돈을 쓰게 만드는 데 있다. 인터넷 속 세상 역시 절대적인 자본주의 사회다. 그리고 초기 식민지 개척을 위해 세계 열강들이 앞 다투어 전쟁을 벌이던 시절처럼,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지고 발견된 세상에서 지금은 자본과 기업들이 앞다투어 미지의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더 많은 공간과 영역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나날이 변화하고 업그레이드 되는 인터넷 세상에서 각 개인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분석들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지고 그 데이터가 제공하는 정보들에 의해 재탄생한다. 이제 세상은 실재하는 내가 나임을 증명하기 위해 인간이 축조한 인터넷 속의 정보가 나를 나라고 인정해주길 기다려야 하는 거대한 허상의 공간이 되어버린 셈이다.

드릴로가『언더월드』를 집필하던 1990년대 말은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한 시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릴로는 전 세계를 하나의 또 다른 세계 안으로 모을 수 있는 인터넷의 세상을 감탄이나 기대보다는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는 땅 속의 지하수로 세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듯이 인터넷 세상 역시 수많은 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또 하나의 지하세계, 즉 ‘언더월드’로 보고 있다. 지하세계는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다양한 영양분과 물과 자원을 만들어내는 보고이고 뿌리이지만, 한편으로는 지진이나 화산과도 같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위험요소를 숨기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인터넷은 현대 사회의 완벽한 ‘언더월드’(지하세계)라 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실제 모습이나 정체성을 감춘 채 자신이 창조한 또 다른 인간인 아바타의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특히, 미증유의 팬데믹을 겪으면서 인류는 자발적 거리두기를 통해 서로 간의 직접적인 만남을 두려워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간에 시대는 더 이상 인터넷 세상을 복제된 가상현실로서의 시뮬라크르(simulacre)의 세상으로 정의하지 않고 함께 공존하고 실재하는 세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터넷 안의 세상에서 각자를 대신하는 아바타의 모습으로 만나고 회의하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이제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점점 이것이 더 편리해지고 있는 듯하다. 그 아바타는 나의 데이터들의 총합이고 나의 역할자이다. 나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전부는 아니다. 그래서 더 편하다고도 한다. 나의 감추고 싶은 부분을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세상과 그 속에서의 인간들은 분명 실재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실재하는 것도 아니다. 이제 ‘실재한다’는 것의 정의마저 새롭게 내려야 할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듯하다.

이처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변화된 세상을 우리는 ‘메타버스’(metaverse)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모든 인간의 운명이라고 여겼던 죽음마저도 변모하였다. 메타버스의 세상에서는 죽은 이도 다시 부활하여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언더월드』에서 이미 오래전에 묘사되고 있는데, 소설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에드가 수녀는 자신이 늘 기도했던 바대로 천국에서 부활할 것을 기대하고 눈을 뜬다.

“그러나 그녀는 천국이 아니라 사이버 세계에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녀는 시스템에 둘러싸여 포획된 느낌을 받는다. 그녀는 안절부절 못한 채 불안을 느낀다. 그곳에서도 끊임없는 바이러스의 위협이 존재하고 있다.”(825쪽 인용)

박선정 박사
박선정 박사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많은 것들이 가능해지고, 많은 분야의 실험 과정에서 엄청나게 경비가 절감되고, 그러기에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해내고, 상상도 안 될 만큼 우리에게 편의성을 가져다 준 메타버스 시대의 도래로 인해 우리는 엄청난 기대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왠지 무언가 불안하다. 그것은 이 역시 또 하나의 위험을 감추고 있는 지하세계일 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인터넷이 만들어 내는 네크워크의 세상이 어디로 연결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인식하면서 현실세계와 더욱 긍정적인 세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결코 인간의 세상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영문학 박사 / 인문학당 달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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