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창간호】 『장소시학』을 펴내며

장소시학 승인 2022.12.16 11:06 | 최종 수정 2022.12.17 09:32 의견 0

경부울 지역을 대상으로 지역 가치의 발굴, 창조, 전승을 기치로 내세운 부정기 문예지 『장소시학』 창간호가 지난해 11월 발간된 데 이어 지난달 제2호가 나왔다. 인저리타임은 『장소시학』이 지향하는 가치에 동조·성원하는 의미로 『장소시학』의 내용을 연재, 널리 소개하고자 한다. 

 

『장소시학』을 펴내면서

『장소시학』 창간호를 내보낸다. 경남과 부산 그리고 울산을 중심으로 지역과 장소를 으뜸 가치로 내세운 소박한 부정기잡지다. 그렇지만 향유 구성원에게 이 책은 글쓰기를 빌려 자신과 세상 사이에 놓인 무거운 참과 사실에 격려 받고 위로 받는 작은 실천 마당이 되기 바란다. 겨냥하기로는 빠른 시일 안에 경남․부산 시군별 특집을 한 차례씩 마련하는 목표. 거기에 힘입어 30권에 이른 ‘지역문학총서’도 부쩍 몸을 키울 것이다. 총서 연속물에 잡지 개념의 책도 들어서게 되는 셈이다.

창간호를 마련하면서 매체를 마련하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한꺼번에 맛본다. 글쓴이를 모시기 힘들고 기획한 뜻에 걸맞은 글을 얻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처음 계획보다 품이 많이 준 목차를 선뵌다. 목차도 오락가락했다. 비록 돈과 권력으로 갈래갈래, 켜켜로 뜯기고 갈라 붙여진 채 자본주의의 불가사리, 근대 산업주의 쓰레기터가 되어버렸지만, 지역과 장소는 삶이 깃들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몸 담고 있는 구체 현실이자 실천 역장으로서 생명 가치가 존중받는 삶자리를 향한 걸음걸이가 쉬 지치지 않기를 빈다.

창간호 특집은 경남 고성과 김해 지역으로 삼았다. 이 잡지의 중심 필진인 경남시인회 회원의 정주지 마산과 창원에 붙은 곳이다. 준비한 몇몇 작가론, 발굴 문헌 소개는 뒷날로 미루었다. 그런 가운데 고성 삼산의 신진 시인 차수민이 근대 초기 어린이문학인 김형두를 발굴한 글을 마련했다. 뒷날 부산에서 언론인으로 활동이 컸던 김형두의 어린이문학은 고성 근대문학의 첫 풍광을 이룬다. 이어서 고성 역내 비평가 최미선이 향리 어린이문학가 심군식론을 얹었다. 기독교 시조 시인 선정주와 함께 고성의 정신과 문학 윤리를 키워낸 그의 어린이문학이 앞으로 더 눈길을 끌기 바란다. 김해 쪽에는 점필재연구소 정석태 교수가 김해 전통 유림문화를 소개하는 한 꼭지를 마련해 주었다. 김해 지역의 급격한 변모 아래 숨쉬고 있는 전통의 전승과 확산을 위해 머리를 맞댈 수 있기 바란다.

답사기로는 두 편을 싣는다. 고성 근대문학의 빛나는 한 자리는 광복지사 최낙종이 떠받친다. 기미만세의거의 검거 폭풍에 쫒겨 섬나라 동경으로 몸을 피한 뒤 거기서 재왜 겨레 아나키즘 항쟁과 매체 투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안타깝게 왜로에 의해 원사한 분이다. 앞으로 그이를 향한 본격 연구를 끌어내기 위한 이음매로 하순이 시인이 생가를 알렸다. 거기에다 고성 개천에 있는 최계락 유택 답사기를 김영화 시인이 마련했다. 지역 문학 문화재로 고성 사회가 잊지 않고 가꾸리라 믿는다.

이번 고성과 김해 기획에서는 회향기를 싣는다. 고성 쪽에서는 출향 문학인 가운데서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번역문학가 천병희, 문학비평가 이선영에 관한 각론을 마련하지 못한 아쉬움을 삭이는 한 방식이 회향기로 남았다. 서울의 현장 비평가 김종회, 부산의 중견 언론인 최학림이 고향 영오와 하일을 되새겼다. 김해 쪽에서는 원로 소설가 윤진상과 우리 고전문학계 중심 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강옥 교수가 회향의 심사를 올렸다. 김해 문학과 낙동강 가장자리의 전통을 이해하는 데 한 실마리가 되리라 믿는다. 오랜만에 서울과 부산 그리고 대구에서 들려 주는 네 분의 사향가다. 고성, 김해 지역과 지역민을 향한 자긍심 드높은 격려의 메아리로 되살기 바란다.

애초 고성과 김해 지역 장소시를 가려뽑아 널찍한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런데 고성 지역은 아직 시절 인연이 닿지 않았다. 내세울 만한 작품이 눈에 뜨이지 않은 가운데 알려진 백석의 것과 황동규 시인의 두 편을 중심으로 역내 작품 몇을 올리는 선에서 그쳤다. 뒷날 다시 고성으로 들어설 기회가 주어진다면 함께 나눌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기 바란다. 김해 지역은 고성과 달리 내세울 작품이 적지 않다. 따로 개별 논고를 마련하고 낱책을 빌려 갈무리해야 할 정도다. 따라서 그런 앞날을 마음에 두면서, 이번 기회에는 글쓴이 시 가운데서 김해와 낙동강을 다룬 작품을 가려뽑아 한자리에 묶는 방식을 따랐다. 앞으로 그럴 기회가 없으리라는 욕심 탓이다. 처음 기획에서는 편집위원들의 고성 장소시로 따로 한 꼭지 만들고자 했다. 마음만 앞섰던, 성급한 일이 되어서 물렸다. 그 아쉬움은 신작시 자리로 녹인다.

이번 『장소시학』 창간호에서는 신인으로 구자순 시인을 내보낸다. 글쓴이의 기억이 맞다면 구 시인과 처음 만난 때는 2007년 2학기였다. 매주 한 차례씩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나가는 지역 시민 상대 시창작반 강의실에서다. 눈에 뜨이지도 않고 나서지도 않은 조용한 됨됨이였다. 학교를 벗어나 경남․부산 일대를 돌아다닌 문학 답사 때는 누구보다 씩씩하게 걸었다는 기억 말고는. 이제 자신만이 지닌 숨결과 언어가 잘 녹은 작품 15편을 선뵌다. 앞으로 고통스런 눌변과 달변 사이 균형을 잘 잡으면서 더 많은, 더 넓은 구자순을 우리에게 보여 주리라 믿는다. 시인의 앞길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중앙대 이승하, 원광대 강연호, 두 분이 격려해 주었다.

지난 해 나온 공동시집 『양파집』 서평은 멀리 안동대 한경희 교수가 맡아 주었다.  『장소시학』의 지면을 자주 빛내 주리라 믿는다. ‘발굴 문학예술지’는 앞시대 지역문학예술의 흐름을 엿볼 수 있을 문헌을 찾아 올리는 자리다. 처음으로 이주홍의 「현대문학」을 싣는다.  『경남도지』(1963)에 실렸던 것이다. 새롭게 지역문학연구를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한 지남반이 되기 바란다. ‘발굴 문학예술지’ 뒤로 글쓴이의 ‘창작을 위한 시론’을 붙인다. 이번 의제는 시에서 ‘생략’ 문제다. 실천비평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바란다.  『장소시학』 2집은 의령 지역을 중심으로 삼을 생각이다. 더 뜻있는 지역문학 전통을 알릴 수 있기 바란다.

부정기잡지의 장점은 출판 시일에 쫒기는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점을 한껏 살려 오래 읽히고 이바지 큰 글을 많이 얻을 수 있기 바란다. 책을 내는 중심 주체는 경남시인회와 두리다. 구성원은  『장소시학』을 이음매로 자신을 밝히는 데서 머물지 말고, 따뜻하나 치열하게 자신을 태워 둘레를 밝히는 등불로 부쩍부쩍 자랄 수 있으리라.

2021년 가을

박 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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