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창간호】 신작시 - 김영화, 농담 등

장소시학 승인 2022.12.19 09:57 | 최종 수정 2022.12.22 12:55 의견 0

농담 외 9편

김 영 화

 

하천 옆 아파트
동네 상가 두릿거리던 노인
기우뚱 거북걸음한다
길 건너 골목집 아들 
자리보전한다는 소문

분리수거 날 폐지 묶음 보태는데
된장 뚝배기 같은 그늘 눈가
손수레 들고나던 빗물 벽에
푸른 곰팡이 번지면
한 달 미동 없던 폐지 탑 
부조처럼 늙어갔다

그 노인 새벽이슬 맞고 졌다는데
꽃대 부은 목젖 목련
멍울 밀어올렸다

 

장어

 

소금 뿌리면 살이 뻣뻣해져서 맛 없으니
그냥 핏물 거품 빠지도록 양재기에 몇 번 
비벼 가지고 헹구소
마산 어시장 손님 예전 같지 않은데
뱃살 희뜩희뜩 두툼한
장어 좌판만 문전성시

44번 상회 얼음 좌대 
새우 바지락 양식 가리비도 주춤 졸고
완도산 전복 수족관 단체암벽 타는데
주인장 눈길 장어에 들러붙은 채 
목소리만 갈라진다

검은 비닐봉지 
바스락바스락 
집까지 따라와도
온몸으로 꿈틀대는데
찜통에 던져 덖는다
먹는다는 지난한 동사가 팽팽한
오월

 

태균이

 

학교에서 막 돌아왔을 때
예감은 틀리지 않아
낯선 공기가 배꾸마당에 가라앉고 있었다
손수레 하나 마을 회관을 가로질렀다
누군가 내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어른들이 수군거렸다
돌무덤이 될 거라 했다

한 살 터울 병약한 아이는 외사촌 누이 따라
일찍 입학했고 나는 어린 보호자가 되었다
고모는 짚불에 싼 달걀 꾸러미를 자주 학교에 들고 왔다
선생님은 둘을 한 책상에 앉혔고 아이들 놀림이
부끄러운 나는 슬슬 피했다
오 년 내내 결석과 입원이 잦던 아이는
부산 큰 병원에서 수술하고도 기운을 못차렸다
방과 후 숙제를 들고 가면 친구가 그리워 
무언가 자꾸 물었다
가슴까지 꺾인 목 고개를 베개 탑에 파묻고
가까스로 가지색 입술을 달싹거리면 겨울바람 소리가 났다
고작 열두 살

아이를 고망실에 심은 후 고모는
신반 미타산 절 부처를 모시더니
집 곁방에 신당을 들였다
나는 보라색이 더는 곱지 않았다
제비꽃 나팔꽃 도라지꽃 죄다 멍든 입술
캄캄 어지러웠다

 

멸치의 꿈

 

빛깔 맛깔 눈부신
상표 달고 
자란 멸치 배 탄다
뭍은
헌옷수거함도
게워내는
작업복
작업화가
만선이다
조선소 멸치들
귀갓길은  
비척걸음

 

내리사랑

 

새끼 고양이가 밥그릇을 핥고 있다
여린 송곳니로 고개를 쫀다
아기작아기작
새끼가 말았던 꼬리를 세우고 물러나자
어미가 가장자리를 빠르게 훑었다
바닥 그릇이 기우뚱 기울었다
어미도 꼬리를 세우고 새끼 옆으로 돌아선다
곁을 지키던 눈곱 낀 잿빛 고양이 
그제야 남은 그릇을 싹싹 비웠다
어미의 어미라 했다

 

강습

 

건너 아파트 옥상 노부부
유모차 앞세우고 걸음마 중

한쪽 겨드랑이 끼고
앞선 아내 무릎 한껏 올리며
시범을 보인다

한 발 한 발
더 넓게 가장자리를 돌아 

볕 쬔다
언덕 하나 밀어젖힌다

 

귀소

 

세 해 전 둥지 틀고 새끼 품었던 비둘기 한 마리 두 마리 비행 시작하자마자 둥지 치우기에 돌입했었다 에어컨 실외기 쪽은 한여름이 아니면 열지 않기에 꾸르륵 소리만 안 들렸어도 몰랐다 문을 열자 바깥 상황은 보통이 넘었다 몇 회를 비행했을지 모를 잔가지에 헝겊 쪼가리까지 그것까지는 기특했는데 웬걸 똥과 오물이 엉겨 붙은 바닥은 끝나버린 연회장 바로 코앞에서 반짝 눈이 마주쳐도 자기 집인 양 시치미다 아이들은 세균 옮기는 숙주라고 부추기니 팔을 걷어붙였다 비둘기 퇴치 검색창에는 전문업체부터 퇴치용품까지 참 많기도 했다 여기까지 어쨌거나 맘껏 창문 열고 지낼 수 있어 통쾌했다 비둘기 따위 보금자리는 임대도 어림없지 암 혹 하나 떨어지면 하나 더 붙인다더니 이번엔 말벌집이 조롱박처럼 열렸다 칸칸이 세 든 상상은 하기도 싫으니 이 또한 그들이 스스로 떠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고맙게도 외벽 페인트 인부들이 때마침 없애 주었다 산 넘어 산 반대쪽 베란다에 아침이면 새들이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가만 보니 예감 틀리지 않고 외벽 돌출부에 앉았다 가는 것이다 각도를 보니 앞 베란다와 직선 그 영악한 후예에게 또 한 번 나는 지고야 말았다

 

홍수주의보

 

매미 노래
어느 해 월드컵 경기장 부부젤라 
소리보다 더 요란하다
경자년 음유월 질긴 장마에
반짝 든 햇살 놓칠세라
동시다발로
묵은 속정 목청 터지게
주고 받는데
산다는 건 살아남는다는 건
절호 안타를 날리는 것
설레발도 먼저 치고
훅 잽 한방에 날려버리기

대저 생태공원 
야구장이며 연밭 삼킨
큰물 구경에
강 끄트머리 서서
사진 찍는 내외 가로막은
경찰차 한 대 

 

 

마스크 쓴 유치부 아이들이 
선생님 따라 까르르 우르르 뛴다
코로나 19로 붙여진 대유행 병에
초등 교실 텅 비었고
병설 유치원 아이들만 뒤뜰 운동장 차지다
집이나 원이나 아이 천성을 매어 놓았으니
흐린 하늘쯤 대순가
울 넘은 망아지처럼 달뜬 뜀박질이다
마스크에 갇힌 들숨이 그 쬐끄만 
폐로 들기도 전에 가쁜 숨을 내뱉을 것이다
저들이 무슨 죄인가
대열에서 이탈한 시리아 난민 아이를
조용히 따라다니던 슬로베니아 군인 사진
스친다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하나
방독면 아닌 마스크여서 형량이 줄까
참다 내쉬는 숨은 날숨이 먼저니
행여 꿈에서 발 헛딛더라도 
참지 말고 시원하게 내지르라

 

제비집

 

슬레이트 처마 밑 드난살이에도
댓돌 위에 똥탑 
정분 쌓던 때 있었다
식구들 떠난 빈집 남쪽 창도 마다하고
슬래브 지붕 출입문 알아
주인 행세한다 아무렴 
요양병원 침상에 누워
꿈에서나 다녀갈 축담 어지른들
제 새끼 기르는 일 다르지 않아
가랑비 같은 먼 자식 
고향길 찾으면
빈집 하나
제비집 하나

 

김영화
김영화 시인

시인 김영화 
1966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경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2년부터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 교실에서 시쓰기를 배우고 있다. 2020년 6인 공동시집 《양파집》(시와시학)과 2021년 계간지 『여기』 시 신인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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