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서상균]
22. 갈수록 태산 오리농장(8)
며칠 뒤 명촌의 또식씨가 노랑머리 호동씨와 함께 렉카 차를 끌고 와서
“외삼촌, 건물은 원래 뒷담에 바짝 붙여야 공간활용에 좋습니다.”
하며 울타리에 붙여 세우고 고정시키니 오른쪽의 물탱크와 자동적으로 각을 이룬 기역자의 틈에 수돗가까지 있는 아담한 마당이 절로 조성되었다. 마당 앞 한 4미터 지점에 철주를 빅고 처마 끝에서 줄을 메어 고정시킨 뒤 검정 비닐막을 씌워 비를 피할 그늘 막을 만들고 그 아래 두꺼운 방수(防水)목으로 의자까지 붙여 만든 6인용탁자를 놓으니 한결 분위기가 살아났다. 마당 한 귀퉁이에 드럼통을 아랫부분에 뚫고 불을 지피는 쓰레기 소각 통까지 설치하고 마지막으로 전기를 연결, 방안에 불을 켜고 전기보일러 작동법까지 일일이 가르쳐준 뒤에
“화장실만 갖추었다면 신혼부부가 살아도 될 집인데 많이 아쉽습니다.”
하는 지라
“정화조 묻고 양변기 설치하는데 얼마나 드나?”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장비동원해서 땅을 파 정화조 묻고 양변기 설치하는데 백만 원도 훨씬 더 덜겠지만 그 보다도 허가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참, 그렇겠구나.”
“자신이 정화조설치와 청소업무를 처리하는 위생과를 관장하는 주민복지국장까지 지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럼 공원이나 유원지에 있는 이동식 F. R. P 간이화장실은 얼마나 하는데?”
역시 공중화장실업무를 관장하는 국장으로 송도해수욕장과 암남공원, 대신공원을 순찰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묻는데
“잘은 모르지만 그것도 운반비포함 돈백만 원은 더 들 겁니다.”
“그래. 차차 생각해보지. 당장은 돈도 그렇고.”
“예. 저도 공사하는 중에 헌 것이라도 생기면 실어다드리지요.”
하고 돌아가는데
“수고했다. 저녁에 50만 원 더 송금해 줄께.”
“아이고 고맙습니다. 역시 외삼촌입니더.”
“니는 알아서 달라고 하지만 어떻게 외삼촌이 조카 손해나게 주겠노? 별로 안 남더라도 외삼촌한테 노력봉사한 셈 치게.”
“예. 감사합니다.”
두 사람을 보내고 집을 한번 빙 둘러보니 네 평도 넘어 보이는 방이 너무나 넓어보였다. 옛날 빈촌인 버든 마을에선 동사의 회의용 방 말고는 유일한 기와집인 4칸 겹집의 종석이네 집 안방도 이 보다는 훨씬 작을 것 같았다. 전부 여섯 평이라고 했는데 어쩌면 열찬씨네의 초가 삼 칸 부엌하나에 큰 방과 작은 방이 딸린 큰 채보다도 더 큰 것 같았고 문짝이나 창문이 그 때 다 허물어지는 초가집과는 비교도 안 되었다. 결혼을 하고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도록 무려 열세 번이나 이사를 다니도록 그렇게 힘들던 내 집 마련에 17년이나 걸렸는데 이제 비록 가건물이기는 하지만 먹고 자기에 부족함이 없는 집이 또 하나 생긴 것이었다.
[그림=서상균]
일요일이 되자 이제 집이 있으니 열찬씨가 기본적으로 밥을 하고 라면을 끓일 정도로 살림을 갖춘다고 영순씨가 아침부터 부산을 떠는데
“영순아, 너거 밭에 언제 갈 끼고? 설마 내 빼고 갈라카는 거는 아니제?”
연산동의 4촌처형 미혜씨의 전화가 오더니
“우리 집에 판이랑 탁자랑 법랑세트랑 너거 한 사림 차려줄 물건이 많다. 일단 우리 집에 와서 물건이랑 나랑 싣고 가자.”
하는 바람에 아침을 먹고 연산로터리 처형 집에 도착하자 밥상하나위에 시기로 된 식기세트와 법랑냄비를 수북이 쌓아놓고 그 옆에 19인치 텔레비전세트도 놓아두고
“식기도 식기지만 우리 가서방 테레비가 있어야 안 되겠나? 요거는 우리 안방에 쓰던 건데 이참에 거실에 거를 옮기고 거실에는 최신식으로 하나 사기로 했다.”
“고맙기는 하지만 다 실어질라나?”
하고 셋이서 주섬주섬 챙기는데
“가만 있어봐라. 오른 거기서 점심밥 해묵자. 산에서 밥 해묵으면 얼마나 맛있다고.”
하면서 김치와 간장, 된장에 고추장까지 챙기더니
“쌀은 가다가 한 포대 사자. 우리 갑장 제부가 살림 차리는데 우째 묵던 쌀을 주겠노?”
하고 영순씨보다 더 신명을 내었다. 그러나 차가 개좌터널을 넘어 철마면소재지를 지나 또 한참을 달려 곰내터널을 넘고 다시 정관 신도시에서 홈플러스를 지나 좌천읍내를 거쳐 동해바다가 펼쳐진 임랑해수욕장을 지나자
“야, 경치하나는 좋지만 너무 멀다. 영순이 니는 몰라도 차없는 가서방은 고생이 많겠다.”
하다
“야, 깜빡할 번했다. 가다가 쌀집 보이면 차 대라.”
해서 월내에서 쌀을 사는데 옆 건물에 감자탕 집이 있는 걸 보고
“아, 감자탕 좋지. 우거지 듬뿍 넣고 뼈다귀도 듬뿍 넣고 나중에 밥을 볶아도 좋고.”
아직 아홉 시도 안 됐는데 시장기가 도는지
“안 되겠다. 밭에 가면 일단 컵라면이나 하나씩 끓여먹자.”
하면서 옆의 마트로 데려가 라면과 우동, 칼국수에 컵라면을 종류별로 한 뭉치씩 사고 햇반도 한 세트를 사고 계산을 치르면서
“내가 남동생 서이를 살림 낼 때 보다 우리 제부 농장에 살림 채리는 기 더 기분이 좋네.”
하고 평생에 안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다 한적한 산길을 돌아 현장에 도착하자
“어쭈! 정말로 저 푸른 초원 우에네.”
하고 방문을 열어보고 전깃불과 수도꼭지를 켜보고 신이 나더니 문득
“야야, 영순아, 니는 괜찮나?”
“뭐를?”
하며 마주보던 영순씨가
“그래. 벌써 아침 먹고 나온 지 두 시간이 다 되 가지.”
“보소. 당신은 어째 해결하는데?”
바지춤 내리는 동작을 해보이자
“아, 남자야 뭐 침침한 데가 다 화장실이지.”
하며 건물 뒤쪽을 가리켰다. 거기에 구서동에서 싣고 온 작은 간장독하나를 세워놓고 소변을 봐왔던 것이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지만 기왕 있는 독이니 오줌을 받아 정구지 밭에 줄 요량으로. 나란히 뒤란으로 돌아간 두 사람이 잠시 후 겸연쩍은 표정으로 나오면서 영순씨가
“보소. 아무래도 이래서는 안 되겠네. 앞으로 영서애미나 며느리도 올 수가 있고 구포엄마도 자주 올 건데.”
“그래서 정화조를 묻고 양변기를 놓는 일을 알아보니 돈도 백만 원이 더 들지만 정화조 허가가 안 난다고 하네.”
하고는 손잡이가 달린 빈 페인트통 하나를 찾아들고 창고에 들어가
“당신, 이리 와 봐!”
영순씨를 부르고 페인트 통위에 판자조각 두 개를 걸치고
“아쉬운 데로 여기 앉아서 일을 보면 내가 갖다 비울 테니 그리 알아. 이게 우리 조상들이 반만년동안 사용하던 푸세식 화장실이야.”
하니
“아이구 엉덩이 다 실키겠다. 철물점에 좌변기뚜껑만 파는 데가 있을까?”
하고 부지런히 세간을 정리하고 라면을 끓였다. 점심을 먹고 텔레비전 선을 연결했지만 화면이 잡히지 않아 도로 끄고 커피를 끓여 마시는데
“아이구, 새 살림 차리셨네요. 이 오리 바닥에서 최신식 건물에 말입니다.”
배밭 집의 재활용센터 조사장이 찾아와 집안을 빙 둘러보며 인사를 하다가 영순씨가 커피를 건네주자 자리에 앉아 무의식적으로 모자를 벗으려다 깜짝 놀라 다시 쓰는데
“아저씨, 괜찮아요. 여자가 나이 들어 똥배 좀 나오는 거나 남자가 이마 좀 벗어지는 거나.”
미혜씨가 말하면서 저도 멋쩍은지 하하 웃었다.
“예. 그렇지요. 뭐.”
하면서 조사장이 텔레비전을 켜보더니
“내 그럴 줄 알았지요. 제가 이 골짝에 처음 들어와서 화면이 안 잡혀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나중에 KT에 연락하면 부스터도 달아주고 하겠지만 우선 우리 집에서 유선 땡기 쓰고 모른 척 하이소. 자주 보지도 안 하면서 한 달에 돈을 만오천 원이나 줄라카이 손이 오구라듭디다.”
하면서 황급히 나가더니 울타리 뒤의 도랑으로 전선하나를 줄줄 끌고 오더니 개구멍으로 전선과 사람이 함께 들어와 선을 연결하니 KBS 전국노래자랑이 한창이었다. 조사장이 돌아가고 텔레비전을 보다 각자 꾸벅꾸벅 졸다 잠이 깨니 오후 세시였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고 일어서는데
“우리 제부 세 살림나는데 내가 참을 수 있나. 우선 제부가 컴퓨터도 얹고 책상으로도 쓸 탁자 하나하고 냉장고, 세탁기 하나씩 줄께.”
“언니, 그 거 다 하면 돈이 얼만데?”
“이 바보야, 그걸 다 새 걸로 사면 돈이 얼만데? 내가 인자 자궁경부암 걸린 지 5년이 지났고 담당의사가 완치된 것 같다고 해서 엔간한 가전제품은 새 걸로 한번 바꿀란다. 그 까짓 한번 왔다 한 번 가는 인생,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니고.”
“그라면 우리 영감집이 쓰레기처리장이란 말이가?”
“싫으면 그만 둬라. 가시나가 인자 배가 불렀나? 나도 아까 그 재활용 조사장한테 팔면 돈 십만 원을 받을 끼다.”
“아이다. 언니 자꾸 얻으려니 미안해서 그렇지.”
하고 문단속을 한 뒤 다시 야산지대와 한수원아파트를 되돌아 월내마을로 나오는데
“아이구, 감자탕집!”
미혜씨가 손뼉을 탁 치더니
“영순아 차 대라. 묵고 가자.”
“아이고, 언니. 점심 묵은 지 얼마 됐다고?”
“라면이 어데 식사가? 나는 벌써부터 배가 고프다. 또 오늘 같이 좋은 날 저 좋은 별미집을 그냥 가기도 그렇고.”
부득불 차를 세우고 감자탕을 시켜 열찬씨가 소주 한 병을 마시는 것을 본 미혜씨가 마트에 들리자 더니 소주 한 상자와 맥주캔 여섯 개 세트를 사 차에 실어주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