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창간호】 신작시 - 최영순, 동거 등

장소시학 승인 2022.12.23 14:53 | 최종 수정 2022.12.24 12:05 의견 0

 

동거 외 9편

 

최 영 순

 

소리 소문없이 
살짝이 앉아
함께 살겠다는 위 선종
눈에 보이는 물체는 빙그르르
심장이 발랑발랑 뛴다
순간 내 마음 수양이 덜되어 
콕 찌르는 말과 행동을 반성하고
살아오면서 
물맛 좋은 순서를 왼다 
황당한 시술일 쥐고
한 손은 시 더듬는데
몸살을 앓는다
오늘 시작노트는 흐리고 비.


평택 며느리

 

까치설날
차례 음식 준비 중
짬짬이 손 전화 만지다 
창동에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한다
새아가 명절에는 가족이랑 함께 지내자 
어머님 말로만 듣던 시집살이 
우리 집 얘기네요
귀가하지 않고 친정 가니
설 명절 아들은 심장이 쫄깃쫄깃 
도다리 눈으로 애써 괜찮은 척 하는데
시아버지 며느리 사온 
양주와 명품 지갑 버리신다
다시는 안 본다 
절대 데리고 오지 마라.

 

삼종당숙

 

오토바이 사고
머리 인지 장애

마누라
남의 편 빌려
수도꼭지 바꾸더니
LED 안방등 붙이다
두 사람 감전이 되었는지

비 오는 날 
우산 하나 받쳐 들고 
둘이서 걸어가는데
못 본 척 눈 감고 
대문 잠그신 
당숙.

 

멋진 남자

 

학교 앞 슈퍼
양복 차림 멀건 허우대
석전 초등에 행사 있다며
솔담배 한 갑에 얼마요
오백 원입니더 담배 오백 갑
과자는 섞어 두 박스 
음료수 세 박스 준비해 주소
빨리 빨리
담배 먼저 주면 차에 갖다 놓고 올 테니
과자 챙기라 하더니
차가 사라졌다
학교 전화하니 행사 일정 없습니다.

 

일기

 

비가 와서 
비가 와서
고추 익어 갈라지고
어영부영 심은 참깨
줄기 부러져 썩고
고구마는 
고라니 와서 뜯고
산돼지 파 디비고
그래도 손주 좋아하는
옥수수는 풍년.

 

헛개나무 심다

 

그 남자 태어나기 전부터 
조부님 
용왕당에 치성 올리셨다  
대대손손 큰 인물 나고 
타들어 가는 가뭄에 
오곡 춤추게 하는 단비를 비손하며
배 속 
알코올 바라기 
한 그루 심어 두셨을까
소맥 막걸리 마중물로 밀어 올린
땀방울 방울이 논밭 보양식 
곳간 생쥐가 웃는다.

 

한센씨

 

비바람에 
얼고 녹고 
얼고 녹고
손발이 문드러졌다는데

만철아 
만철아 
동네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고
깔깔 도망 다니며 던진다

군에 가기 전 
혼인해서 핏줄 하나
놀이터에서 돌 맞으며 
아이들 얼굴 빙그레 바라본다.

 

할미꽃

 

쪼그려 앉아 
콩 모종 심기 풀 뽑기에
절뚝절뚝 관절 삐약삐약 허리
산다고 애먹었는데
주렁주렁 병이 되어 돌아왔다는
꼬부랑 할머니 
훗날 내 모습이다

아침에 일어나 네 발로 걸으면 편하다고
영감아 당신도 함 해보소.

 

산딸기

 

자란섬 바닷가
된비알 올라 츠렁바위 
진분홍 몸값 자랑에
따는 족족 입에 가져가는데
이파리 하는 말
한 삶을, 쓴 바다 보며 
버티고 견뎌
힘들었다고
목말랐다고.

 

이웃사촌

 

온 동네
한 지붕 가족도 꼭꼭 닫았다
강력 수사계, 119 
무슨 일 있어요?
경찰은 수사 중이라 
말 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집 젊은 부부밖에 없는데
여자인지 남자인지요
코로나19인가요
안절부절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구급차 들것
남자가 갔습니다.

 

최영순 시인

◇ 시인 최영순 
195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13년부터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 교실에서 시쓰기를 하고 있다. 현재 초보 농사꾼이다. 2020년 6인 공동시집 《양파집》(시와시학)과 2021년 『문학고을』 신인 작품상으로 문학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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