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5-수필】 벚나무 충전소 - 이상섭

시민시대1 승인 2023.05.13 12:39 | 최종 수정 2023.05.13 12:44 의견 0

나이만큼 무서운 깡패도 없다. 사람을 소리 없이 흠씬 두들겨 패고 사족을 못 쓰게 하니까. 그렇다고 나이를 대책 없이 먹고 싶은 사람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해서 더 늙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건강을 챙기려 부지런히 아파트 뒷산을 오르곤 한다. 산을 오르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자연은 신이 쓴 위대한 책이라 했으니 녹색 책 한 권을 보약으로 마신 기분이라고나 할까.

산으로 향하는 길은 양쪽으로 벚나무가 서 있다. 덕분에 건들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하고 수인사라도 받는 듯 괜히 우쭐해지기도 한다. 한데 어느 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벚나무들이 치렁치렁했던 가지를 잃은 채 깡똥한 몸으로 서 있어서였다. 그 모습이 마치 죽은 나무 작대기를 꽂아놓은 것 같았다. 미간이 저절로 좁혀졌다. 호박도 서리 내린 다음에 따야 달다고, 다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봄이 올 때까지 손 놓고 있다가 뒤늦게 가지치기한다고 설치더니 이게 무슨 꼴이람. 전지작업을 하려면 나무의 속성이라도 제대로 알고 하든지.

혹시?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아파트 단지 내에는 내가 즐겨 찾는 벤치가 있다. 그 벤치 곁에는 무성한 가지를 드리운 벚나무가 함께 서 있어 내가 ‘벚나무 충전소’라 이름 붙인 곳. 소설을 쓰다가 글이 잘 풀리지 않으면 찾아와 그림자를 길게 늘어질 때까지 상상을 재충전하던 최애(最愛)의 장소. 그곳의 벚나무 안부가 걱정이었다. 허겁지겁 달려와 봤더니 그 나무 역시 수난의 흔적이 낭자했다. 이 벚나무야말로 같은 시기에 심은 다른 나무들과 달리 수세가 등등하여 위엄까지 서려 있었다. 덕분에 꽃까지 풍성해 봄이면 사람들의 플래시 사례를 받았고, 여름에는 그늘 또한 무성해 어르신들이 다리쉼을 하거나 세상사를 주고받는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하곤 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허공으로 뻗었던 사지를 잃었으니 벤치 아래 봄나물처럼 싱싱하던 사람들의 웃음마저 사라진 건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일을 자행한 치들이야 뻔했다. 관리사무소 직원의 임무 중 하나가 조경수 관리이기도 하니까. 문제는 가지치기해도 정도가 너무 심했다는 거다. 치렁하게 내려앉은 가지들로 인한 민원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자르면 어쩌란 말인가. 벚나무야말로 얼마나 까탈스러운 나무인가. 제 몸에 손을 대거나 닿기만 해도 닿은 가지를 스스로 말려 죽이는 ‘한 성깔’ 하는 나무이지 않은가. 그런 성정을 알기에 벚나무를 심을 때부터 몇십 년을 내다보고 식수를 하는 것이 조경업계의 불문율이다. 그런데, 그런 기본적인 상식도 모르고 작업을 한단 말인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벚나무만큼 똑똑한 나무도 없다. 제 몸을 타고 오르는 개미를 되레 역이용할 줄 아니까. 벚나무 잎을 자세히 살펴보라. 잎자루에 혹처럼 달린 게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밀선(蜜腺)’이라 부르는 곳으로, 벚나무는 이곳으로 꿀을 만들어 분비한다. 그러니까 벚나무는 꿀을 모으는 벌과 달리 꿀을 직접 만들어내는 재주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벚나무는 이 꿀로 개미를 유인해 자신의 잎을 갉아 먹는 해충을 없애는 것이다. 물론 벚나무도 알고 있다, 꿀을 많이 제공하면 개미가 해충을 잡는 일을 게을리한다는 것을. 해서 미량만 제공하는 지혜도 발휘한다.

이런 똑똑함을 가졌으니 제 온몸을 빈틈없이 꽃으로 치장하는 재주야 말해 무엇하랴. 더군다나 수령이 몇십 년이 넘은 아름드리나무가 뿜어내는 꽃의 아름다움은 스케일 자체가 다르다. 사람들이 만사를 제쳐두고 ‘벚꽃 맛집’이라며 진해로 달려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뿐인가. 늘어진 꽃가지가 수면에 닿을 듯 그네를 타는 ‘처진벚나무’의 운치는 또 어떤가. 경주 안압지에서 꽃가지가 달을 잡아당겨 수작하는 봄밤의 정경을 본다면 아마 당신도 ‘밤드리 노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벚나무가 꽃의 아름다움만 선사하는 건 아니다. 가을에는 붉게 물들인 잎으로 우리를 또 한 번 아름다움의 세계로 이끈다. 언젠가 영주 부석사에 들렀다가 풍기 가는 길에 마주친 그 선홍빛 ‘벚단풍’을 잊을 수 없다. 마치 홍등을 내건 것처럼 수백 미터를 일직선으로 늘어서서 환히 길을 밝혀주던 그 붉은 아름다움을. 그 광경을 본 후 나는 벚나무를 ‘벗나무’라고 고쳐 부르기로 했을 정도니까. 그런 인간의 벗 같은 존재를 고작 걸어 다니고 차가 달리는 데에 걸리적거린다고 무참히 잘라버릴 생각부터 하다니. ‘숲세권’이니 ‘공기맛집’을 도대체 누가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도저히 이 사태를 묵과하고 있을 수 없었다. 모르고 그랬다면 일깨워 줘야 하고, 알고도 그랬다면 다시는 그런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야 내년에는 제대로 된 벚나무 충전소를 가동할 수 있으니까. 마음먹은 김에 핸드폰을 꺼내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전화를 했다. 그런 다음, 직원에게 식물학자라도 되는 양 벚나무의 까탈스러운 성정과 특성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직원이 되레 고맙다고 했다, 벚나무가 그런 나무임을 몰랐다면서. 그러면서 덧붙였다. 이제는 민원이 들어와도 벚나무 건드릴 일은 없을 거라며 나를 안심시키기까지 했다.

이상섭 

이상섭

 

등단: 199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2002년 <창비신인소설상>

저서: 소설집『슬픔의 두께』『그곳에는 눈물들이 모인다』『바닷가 그집에서, 이틀』『챔피언』

르포집『굳세어라 국제시장』『을숙도 갈대숲을 거닐다』와 팩션집 『거기서 도란도란』

수상: 부산소설문학상, 부산작가상, 백신애문학상 봉생문화상 이주홍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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