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관 오디세이-'생애 최고의 영감'
1907년 9월 어느 날 아인슈타인은 근무처인 베른 특허국의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한줄기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유낙하 하고 있다면 그는 자신의 몸무게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 상상은 자신을 화들짝 놀라게 했고, 이후 8년 동안 열성적으로 일반상대성이론에 매달리게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후에 이를 ‘생애 최고의 영감’이라고 회상했고, 그 영감(intuition)은 일반상대성이론의 기초가 되는 ‘등가 원리(equivalence principle)’로 구체화되었습니다.
등가 원리를 간단히 말하면, 가속의 효과와 중력의 효과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며, 관성 질량과 중력 질량이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자유낙하 하는 사람은 몸무게를 느끼지 못 한다’는 아인슈타인의 상상과 비슷한 경험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승강기를 타고 올라갈 때 처음엔 우리 몸이 약간 무거워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와 반대로 내려갈 때는 살짝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만약 이때 승강기가 내려갈 때 가속도가 점점 더 커진다면 우리는 몸무게가 점점 더 가벼워지는 것으로 느낄 것이며, 마침내 자유낙하(중력가속도 9.8m/s²)에까지 이르면 우리는 몸무게가 완전히 0이라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상태를 상상했다는 것입니다. 속도의 변화(가속) 효과를 중력의 변화 효과로 느끼는 현실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속 효과와 중력 효과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 어떤 중대한 물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간파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과 가속 효과의 등가성을 확인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고실험을 했습니다.
로켓 모양의 거대한 우주선이 지상에 세워져 있습니다. 우리는 지상의 우주선 안에서 지구중력(중력가속도 g)에 해당하는 몸무게를 느끼게 됩니다. 이제 우주선이 지구궤도를 탈출해 태양과 항성들의 ‘중력이 거의 미치지 않는 우주공간’(갈릴레이 공간, 관성계)에 도달해 멈췄습니다.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데다 정지해 있으므로 우리 몸은 우주선 안에 붕 떠 있게 됩니다.
이 우주선 안에서는 바깥을 보지 못해 상대운동 여부를 시각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때 다른 우주선이 살그머니 다가와 우리 우주선을 끌고 가면서 가속도를 지구중력 가속도와 같은 g에 이르게 합니다. 이렇게 되면 우주선 안의 우리에게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공중에 붕 떠있던 승무원들은 진행방향과 반대방향으로 힘을 받게 됩니다. 그 힘은 지구 위에서 중력을 받는 것과 꼭 같습니다.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지구상에 로켓이 발사되기 전부터 마취돼 있던 우리 중 누군가가 지금 막 깨어났다면, 그는 우주선이 가속 비행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지구에서 발사대기 상태로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 사고실험에서 던진 문제에 대한 답은 ‘알 수 없다’입니다.
등가 원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사고실험을 더 진전시켜 보겠습니다. 이번엔 우주선 안에 용수철저울이 있습니다. 지구에서 쇠구슬 하나를 달았더니 용수철의 길이가 10cm이고 저울 눈금은 100을 가리켰습니다. 똑같은 용수철저울을 우리의 우주선에 실었습니다. 광활한 우주의 갈릴레이 공간에 정지해 있던 우주선의 속도를 조금씩 올려 지구 중력가속도 g까지 높입니다.
이 과정에서 용수철저울을 관찰해보겠습니다. 저울의 용수철은 우주선의 가속도가 높아짐에 따라 점점 늘어나다가 g에 이르면 용수철 길이는 10cm, 저울 눈금 100을 가리킵니다. 이는 지구에 있는 우주실험실에서와 똑같은 수치입니다. 지구에서 용수철을 늘어나게 한 것은 중력이었다면, 우주선에서 용수철을 늘어나게 한 것은 가속도입니다. 그러므로 가속도와 중력이 똑같은 작용을 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번 사고실험에서는 용수철에 매단 쇠구슬 질량의 성격도 지구에서와는 다르게 취급됐던 것입니다. 지구의 실험실에서 무게를 달 때는 뉴턴의 정의에 따라 중력질량이라고 부르며, 우주선 속에서는 가속에 저항하는 물체의 관성의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관성질량이라고 정의됩니다. 그런데 위의 사고실험에 의해 이 둘은 동등한 것으로 확인된 것입니다.
뉴턴도 이미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같다는 사실을 유도했으나 하지만 그 심오한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뉴턴은 그것의 물리적 중대성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뉴턴의 운동법칙은 힘과 가속도 관계의 방정식(F=m₁a)으로 기술됩니다. 여기서 물체의 질량 m₁은 관성질량입니다. 관성질량이란 (정지한) 물체가 힘에 의해 가속될 때 받는 저항의 크기를 말합니다. 중력도 일정한 가속도를 발생시킨다는 사실은 갈릴레이가 발견했습니다.
중력장 내에 물체가 있을 경우 그 물체가 받는 힘은 중력질량과 중력가속도(중력장의 세기)로 표현됩니다(F=m₂g). 중력질량이란 물체가 중력에 대해 반응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양으로, 중력 효과의 척도입니다. 중력가속도는 모든 물체에 대해 똑같은 값을 갖는다는 사실을 갈릴레이가 증명했습니다.
따라서 위의 두 가지 관계식을 통해 물체의 중력질량은 그 물체의 관성질량과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중력질량과 관성질량이 같다는 것은 곧 중력과 가속도가 물리적으로 동등하다는 뜻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한 물체의 동일한 성질이 상황에 따라 ‘관성(inertia)’으로도 나타나고 ‘무게(weight)’로도 나타난다. 여기서 관성은 가속도의 다른 표현이고, 무게는 중력의 다른 표현이다.
갈릴레이와 뉴턴 이후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의 동등성은 실험으로도 확증되었습니다. 헝가리의 물리학자 외트뵈시(Otvos, 1848~1919)는 1889년과 1908년 두 차례에 걸쳐 등가성 여부를 확인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약 10억 분의 1 범위 내에서 같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1907년 아인슈타인은 등가 원리를 착안할 당시 이 실험 결과를 몰랐으며, 1912년에야 알았다고 합니다.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같다는 사실, 뉴턴도 그 중대성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그 사실은 우주의 심오한 진리를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생애 가장 행복한 영감’을 통해 가속 효과와 중력 효과의 등가성을 통찰한 이후 중력질량과 관성질량의 동등성의 깊은 의미를 새삼 깨닫고 '나자빠질 만큼 놀랐다'고 합니다.
‘자유낙하 엘리베이터 사고실험’과 ‘우주선 사고실험’ 결과를 요약하면, 갈릴레이 공간(관성계)에서 우주선이 가속 비행 중일지라도 ‘우주선이 중력장에서 정지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가속도와 중력이 서로 상대적인(교환가능한) 물리량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속 효과와 중력 효과를 구별할 수 없다는 이 사실은 곧 균일한 중력장을 가진 관성계는 가속 운동하는 비관성계로 대체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로써 아인슈타인은 ‘등가 원리(equivalence principle)’가 신뢰할 만하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이론의 출발이 되는 핵심적인 가설(원리)로 내세웠습니다. ‘가속계(accelerating frame)와 중력계(gravitating frame)의 물리 법칙은 구별할 수 없다.’ 이로부터 그는 일반상대성이론 창안에 착수합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그 길이 얼마나 멀고 험난한 여정인지 ‘생애 최고의 영감’을 경험한 1907년 당시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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