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관 오디세이-시공간의 만곡
‘등가 원리(equivalence principle)’를 통해 중력에 의한 공간의 휨, 시간 지연, 빛의 적색편이 현상을 통찰한 아인슈타인은 마침내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또다시 새롭게 혁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의 친구 에렌페스트(Paul Ehrenfest)가 제기했던 ‘에렌페스트 역설’은 시공간(spacetime)에 대한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데 좋은 발판이 되었습니다.
에렌페스트 역설(Ehrenfest's Paradox)
에렌페스트 역설은 ‘레코드판이나 회전목마 같은 원판이 회전할 경우 원둘레는 줄어드는(로렌츠 수축) 반면 반지름은 그대로이다. 따라서 이 경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파이(π=원둘레/지름=3.14159…)의 값이 다르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에렌페스트 역설을 더욱 심화시킨 사고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회전 기준계 위의 시계와 측정용 자(scale)의 성질’이란 유명한 사고실험입니다. 여기서 밝혀진 놀라운 사실은 중력은 시계를 느리게 가게하고, 공간을 비튼다는 것입니다. 즉 굽어진 공간에 대한 상상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준 것입니다.
이제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을 재연해보겠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이 성립하는 갈릴레이 기준계 K에 대하여 등속회전 중이면서 중력장이 존재하지 않는 기준계 K'를 가정합니다. 머릿속에 그리기 쉽게, 이 기준계 K'은 회전목마나 턴테이블 위에서 회전하는 레코드판과 같은 큰 원판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원판 K'의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관측자는 반지름 방향 바깥쪽으로 작용하는 힘을 느끼게 됩니다. 원래 정지 상태에 있었던 이 관측자는 이 힘을 관성의 효과(원심력)라고 해석할 것입니다.
그러나 원판 위에 있는 관측자는 원판을 ‘중력장이 작용하는 정지 상태’에 있는 기준계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등가 원리에 의해 이 관측자의 해석은 정당화됩니다. 즉 그는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원판을 기준으로 정지 상태에 있는 모든 물체에 작용하는 힘을 중력장의 효과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원판 위의 이 관측자가 시계와 측정용 자(scale)를 가지고 실험을 한다고 가정해봅니다. 먼저 관측자는 똑같은 시계 두 개를 하나는 원판의 중심에, 또 하나는 원판의 가장자리에 놓아둡니다. 이들 두 시계는 원판을 기준으로 정지 상태에 있게 됩니다. 이제 회전하지 않는 갈릴레이 기준계 K의 입장에서 볼 때, 이들 두 시계가 같은 비율로 가는가의 여부를 확인해보겠습니다.
K에서 판단할 때 원판의 중심에 있는 시계는 정지해 있으나(원판 중심에는 회전 효과가 없으므로), 가장자리에 놓아둔 시계는 원판의 회전운동 때문에 운동 상태에 있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운동하는 물체는 시간 지연 효과를 가집니다. 따라서 가장자리의 시계가 원판의 중심에 있는 시계보다 항상 느리게 갈 것입니다.
만약 원판의 중심에 시계와 같이 있는 관측자가 있다면, 이 관측자도 분명히 같은 효과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원판에서 시계의 위치에 따라(중심에서 멀어질수록 회전 속도가 더 크므로 더 느리게 간다) 시계가 더 빨리 갈 수도 있고 혹은 더 느리게 갈 수도 있다고 추론할 것입니다.
이번엔 원판 위의 관측자가 길이를 잽니다. 관측자가 측정용 표준 자를 원판 가장자리에 접선방향으로 대는 순간, 갈릴레이 기준계 K에서 보면, 자의 길이가 표준 자보다 짧아지게 됩니다. 이는 특수상대성이론에서 확인했듯이 운동하는 물체의 길이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반면 측정용 자를 원판의 반지름 방향으로 놓아두면 K에서 판단할 경우, 자의 길이가 짧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로렌츠 수축은 속도와 같은 방향에서는 일어나지만 속도와 직각 방향에서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관측자가 측정용 자를 가지고 처음에는 원판의 둘레를 측정하고(자의 길이가 수축하므로 둘레는 정지 때보다 더 큰 값으로 측정된다)바원더 길게 , 그 다음으로 원판의 지름을 측정하여 둘레를 지름으로 나누어 준 값은 우리가 알고 있는 파이(π=원둘레/지름=3.14159…)보다 더 큰 수가 될 것입니다. 파이 값은 원판의 곳곳마다 다르게 측정될 것입니다. 따라서 유클리드 기하학의 정리는 회전 원판 혹은 중력장에서는 정확하게 성립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평평한 원판을 회전시켰더니 원주율이 달라졌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결론은 평평한 원판이 회전하면 더는 평평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회전(가속)이 평평한 원판을 굽어지게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등가 원리에 따라 중력장도 평평한 원판을 굽어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회전하지 않고 정지해 있는 공간이라도 강한 중력장이 존재한다면 그 공간은 굽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상의 사고실험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회전하는 원판은 더는 유클리드 기학학이 성립하는 평면이 아니며, 그곳에서는 시간도 일정하게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평면기하학인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시공간을 기술할 수 없으니 새로운 기하학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먼저 그 기하학이 그려낼 그림들을 상상했습니다.
새로운 시공간의 그림 ... 중력은 없다, 시공의 만곡이 있을 뿐
아인슈타인은 등가 원리와 에렌페스트 역설을 통해 시공간이 굽어져 있다, 혹은 만곡(curvature)되어 있다는 추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텅 빈 공간의 구조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주 공간의 만곡은 인간의 상상력을 아무리 동원해도 시각화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공간에 전자기장이 퍼져 있다면 전기를 띤 입자의 움직임을 통해 전자기장의 구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공간에 빛을 쏘아 빛의 행동을 보면 어떨까요? 앞에서 확인했듯이 질량이 큰 항성 가까이에 발사된 빛의 경로는 구부러집니다. 이를 ‘뉴턴의 중력’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직진성(최단 경로로 진행)을 가진 빛이 휘어진 공간을 따라 갔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중력의 효과는 공간의 만곡으로 대치될 수 있습니다. ‘중력’은 사실상 불필요한 개념인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중력을 불필요한 개념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공간의 만곡이라는 그림을 그리면서 중력의 개념을 버렸습니다. 물질은 중력을 낳는 게 아니라 공간의 만곡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반상대성이론의 중심 결론입니다.
이제 아인슈타인이 상상한 휘어진 공간에 대한 그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 부드럽고 탄력성이 좋은 실로 짠 천(피륙)이 있습니다. 이 천을 여러 사람이 들고 당겨서 평평하게 쫙 폅니다. 그 위에 볼링공을 얹습니다. 그러면 볼링공이 놓인 곳은 움푹 꺼질 것입니다. 그 주변에 작은 구슬을 굴려봅니다. 구슬은 곧바로 볼링공이 있는 곳으로 빨려가거나, (볼링공의 정면 방향과 약간 비켜서 세게 굴린다면) 볼링공이 만든 곡면에서 직선으로 구르지 않고 휘어진 경로를 따라 굴러갈 것입니다.
이 상황에 대한 뉴턴역학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경우 피륙이 투명하다고 가정하면 이해하기 편합니다. 이곳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뉴턴역학 지지자들은 볼링공 주변의 곡면을 보지 못합니다. 구슬이 볼링공 주변에서 직선으로 가지 않고 곡선을 따라 진행하는 데 대해 이들은 볼링공에서 어떤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관성의 법칙에 따라 직선을 움직이는 구슬에 중력(만유인력)이 작용해 진로를 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구슬의 진행방향이 돌 쪽으로 휘어지게 한 것은 ‘출처가 불분명한 힘’이 아니라 피륙의 곡면이라고 해석합니다. 구슬을 당기는 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아인슈타인은 생각했습니다. 힘이란 가상이며 환상이라는 것이죠. 엄연히 존재하는 것은 피륙 표면의 만곡이며, 이것이 구슬의 진로를 휘어지게 한 것이라고요. 돌의 진로를 결정하는 것은 곡면 자체인 것입니다.
이제 이 피륙을 우주공간이라 하고, 볼링공을 태양, 구슬을 지구라고 상상해보겠습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현상을 뉴턴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원래 관성의 원리에 의해 직선 운동하는 지구를 태양의 ‘중력’이 끌어당기기 때문에 지구가 계속 궤도를 돈다. 그리고 이 힘은 지구가 사과를 당기거나 달을 당기는 것과 같은 성격이라고요.
하지만 중력이 곧 공간의 만곡이라고 생각한 아인슈타인의 설명은 다릅니다. 모든 물체는 관성의 법칙에 의해 직선(두 점 사이의 최단 거리로서 정의된다)을 따라 움직이는데, 휘어진 시공간에서는 측지선(geodesic)을 따라 움직입니다(측지선은 두 시공간 사이를 잇는 최단 시공간 거리이다. 휘어진 시공간에서는 직선이란 개념을 폐기하고 측지선이란 개념을 씁니다). 따라서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도는 것은 태양이 지구를 끌어당기기 때문이 아니라 지구가 휘어진 공간의 측지선을 따라 움직이는데 그것이 원의 형태인 것입니다.
이 상상을 통해 아인슈타인은 태양의 중력 변화가 지구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뉴턴이 생각했듯이 즉각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빛이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같았습니다.
만약 피륙 위의 볼링공을 갑자기 치웠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러면 피륙의 표면은 물결과 같은 파동을 일으키며 본래 상대로 돌아오며, 이 파동은 피륙을 타고 퍼져나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태양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지면 휘어진 공간에 충격파를 만들고 이는 광속으로 공간 속에 퍼져나갈 것입니다. 이것은 맥스웰이 ‘거미줄’ 상상을 통해 전자기파가 일정한 속도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설명한 내용과 비슷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같은 상상을 통해 중력파를 예견했습니다.
사실 뉴턴 자신도 『프린키피아』에서 천체의 운동을 만유인력의 법칙을 통해 설명하긴 했지만 우주 전체에 즉각적으로 작용하는 신비로운 중력의 원인을 밝히지는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마침내 아인슈타인은 뉴턴이 밝히지 못한 ‘중력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시공간의 만곡(the curvature of spacetime)인 것입니다.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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