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방정식'은 뭘 말하는 걸까?

'아인슈타인 방정식'은 뭘 말하는 걸까?

조송현 승인 2017.06.09 00:00 | 최종 수정 2018.10.05 12:28 의견 0
취리히 공과대학 시절 아인슈타인(왼쪽 두 번째)과 마르셀 그로스만(왼쪽 첫 번째). 아인슈타인 오른쪽은 구스타프 가이슬러와 마르셀 그로스만의 형인 유진 그로스만. 대학 때부터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을 간파한 그로스만은 일반상대성이론을 기술할 수학을 개발하는 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 출처: 미국물리연구소(AIP)
취리히 공과대학 시절 아인슈타인(왼쪽 두 번째)과 마르셀 그로스만(왼쪽 첫 번째). 아인슈타인 오른쪽은 구스타프 가이슬러와 마르셀 그로스만의 형인 유진 그로스만. 대학 때부터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을 간파한 그로스만은 일반상대성이론을 기술할 수학을 개발하는 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 출처: 미국물리연구소(AIP)

우주관 오디세이-아인슈타인 방정식(중력장 방정식)

일반상대성이론의 정화인 ‘아인슈타인 방정식(Einstein's Field Equation, 중력장 방정식)’은 눈밝은 물리학자들로부터 매우 아름답다는 상찬을 받았습니다.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보른(Max Born, 1882~1970)은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은 한 편의 예술작품 같았다. 자연에 대한 인간 사고의 위대한 향연이며, 철학적 통찰과 물리학적 직관 그리고 수학적 기교의 놀라운 결합이다.”라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제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의 정수인 중력장방정식을 유도한 여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아인슈타인에게도 그 길은 멀고 험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등가원리를 인식한 것은 ‘생애 최고의 영감’을 얻은 1907년입니다. 그 해 그는 관성계에서만 적용되는 특수상대성이론을 중력장 내에서나 가속 운동하는 기준계에서도 적용되는 일반이론(일반상대성이론)을 세우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의 기초’라는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등가원리를 연역하면서 중력장 속에서 시간 지연, 빛의 휨 현상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 3년 반 동안 아인슈타인은 이에 관한 논의를 더는 진행시키지 않았습니다. 1909년과 1910년에 아인슈타인은 주로 광양자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1911년 6월 프라하 대학 재직시절 ‘빛의 전파에 대한 중력의 영향’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중력에 관한 논의를 예전보다 한층 발전시켰습니다. 여기서 그는 특수상대성이론의 수학적 토대였던 로렌츠 변환이 중력을 취급하는 데는 일반적으로 적용되지 않으며, 중력장 방정식은 비선형방정식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간파했습니다. 구부러진 공간을 다루는 새로운 기하학의 필요성을 느낀 것도 이즈음입니다.

새로운 기하학을 찾아 - 리만기하학

1912년 7월 프라하 대학에서 취리히 공과대학의 정교수로 복귀한 아인슈타인은 우주에서 중력의 역할을 설명하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신의 생각을 알아내는’ 중력장 방정식을 도출하는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중력을 공간의 만곡으로 대체한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구조를 기술하는 수학(기하학)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자신을 매혹했던 ‘성스러운 기하학’에 들어 있던 유클리드 기하학과는 전혀 다른 기하학, 비유클리드 기하학(리만기하학)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론의 도구로써 수학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수학을 ‘현학적 과잉’이라며 경멸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특수상대성이론이라는 탁월한 이론을 성취한 것은 물리적 직관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수학을 통해 특수상대성이론을 한층 우아하고 심오하게 발전시킨 사람은 취리히 공과대학의 수학 교수인 민코프스키(Hermann Minkowski)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공간의 만곡을 기술할 도구(수학)를 찾지 못하면 중력장 방정식을 정립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그에게 수학은 새로운 발견을 구체화할 도구로 인식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프라하에서 취리히로 돌아오자마자 친구 마르셀 그로스만을 찾아갔습니다. 취리히 공대 시절부터 절친인 그로스만은 이 대학 수학과 학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로스만, 나 좀 도와주게. 난 지금 미칠 지경이네.” 아인슈타인은 중력장을 지배하는 법칙을 기술할 수학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즈음 아인슈타인이 중력장 방정식을 기술할 수학을 찾는 데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가는 독일의 수리물리학자 아놀드 좀머펠트(Arnold Sommerfeld)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나는 지금 중력 문제에 몰두하고 있는데, 수학자 친구의 도움으로 모든 난관을 극복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확실한 사실은, 생애에 이처럼 고생한 적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 예전엔 내 무지의 소치로 순전히 사치로만 여겼던 수학에 대해 커다란 존경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에 비한다면 특수상대성이론은 어린애 장난 같은 것입니다.”1)

그로스만은 문헌을 뒤진 끝에 아인슈타인에게 필요한 수학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1854년 베른하르트 리만(Bernhart Riemann)이 개발한 리만기하학이었습니다. 마침내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의 만곡을 묘사하기에 충분히 강력한 수학적 도구를 손에 쥐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그 수학적 도구를 마음대로 다루게 될 때까지는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평면상의 기하학인데 비해 리만기하학은 곡면기하학입니다. 19세기 들어 대담한 수학자들에 의해 유클리드 기하학의 아성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러시아의 니콜라이 로바체프스키와 헝가리의 야노스 보여이의 기초 연구에 이어 ‘수학의 왕자’라고 불리는 칼 프리드리히 가우스와 그의 제자 리만에 의해 본격적으로 개발되었습니다.

리만은 2, 3차원뿐 아니라 임의의 차원의 휘어진 공간에 대한 기하학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같은 리만기하학이 우주를 보다 정확하게 묘사를 해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임의 차원의 곡면을 다루는 미분기하학(differential geometry)은 텐서미적분학(tensor calculus)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동안 쓸모없이 어렵기만 하다고 냉대 받던 미분기하학이 갑자기 우주를 기술하는 핵심 언어로 부상한 것입니다.

리만기하학이 우주의 구조를 기술할 수학적 도구임을 확인한 아인슈타인은 ‘공변(covariance)’의 개념을 일반화하고자 했습니다. 뉴턴역학은 갈릴레이 변환에 공변이라고 합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로렌츠 변환에 공변입니다. 마찬가지로 아인슈타인은 관성계뿐 아니라 가속계에 대해서도 물리 법칙의 형태를 보존하는 변환식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로부터 아인슈타인은 1912년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일반공변 원리(priciple of general covariance)를 얻었습니다.

‘물리학 방정식은 일반적으로 공변이어야 한다(곧 물리학 방정식은 모든 좌표변환에 대해 같은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

리만기하학이 중력을 기술할 올바른 언어임을 확인한 아인슈타인은 일반공변 원리를 이정표로 삼아 중력장 방정식에 인도하는 바른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인슈타인은 1912년의 바른 길을 버리고 샛길로 빠져들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바른 길을 버린 정확한 이유는 그동안 역사가들 사이에 큰 미스터리였습니다. 그러나 10여 년 전 그의 「잃어버린 노트」에 대한 분석이 완료됨으로써 비로소 일반상대성이론을 향한 궤적을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노트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이 샛길로 빠진 결정적인 이유는 그 길이 ‘마흐 원리(Mach’s principle)’를 위배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마흐 원리는 '중력을 받거나 가속운동하는 물체가 경험하는 관성력은 그 물체를 제외한 우주의 다른 모든 물체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는 원리입니다.

아인슈타인은 3년 동안 샛길에서 헤맨 뒤 1915년 11월 자신의 결정적인 실수를 깨닫고 다시 바른 길로 돌아왔습니다. 일반공변 원리의 물리적 의미를 검토한 결과 이 원리가 마흐 원리보다 더 우선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최종적인 방정식을 찾는 데에 몰입했습니다. 이때가 자신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집중력을 발휘한 시기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태양과 행성 같은 물질의 존재로 인해 만들어진 공간의 휘어진 기하(중력과 동일)를 기술하는 일련의 방정식을 유도해 내었습니다. 이 방정식들은 물질의 존재가 어떻게 공간을 휘게 하는지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방정식을 '수성의 근일점 이동'에 적용해보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은 10개의 서로 다른 방정식들로 구성된 텐서방정식인 까닭에 이 작업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는 체력과 정신력이 완전히 고갈될 정도로 몰두해 마침내 1915년 11월 말에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수성의 근일점 이동이 100년에 42.9초라는 답을 얻었으며, 이 값은 실험오차 범위 안에서 충분히 인정될 만한 것이었습니다. 이 결과는 자신의 이론이 옳음을 보여주는 최초의 명확한 관측 증거였기에 기쁨은 극에 달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나는 가장 대담한 꿈을 이루었다는 생각에 며칠 동안 온통 흥분에 휩싸여 지냈다”고 회고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물리적 직관에 의한 등가원리와 수학적 원리인 일반공변 원리에 기초한 중력장 방정식이 구체적이고도 결정적인 관측 결과를 이끌어냈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는 이어 태양에 의한 별빛의 휘어짐을 다시 계산했습니다. 공간의 만곡에 따른 휘어짐의 예측값은 1.74초로 계산되었습니다. 이는 4년 후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에 의해 검증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중력장 방정식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도 10년 동안 애를 먹은 일반상대성이론의 결정체인 ‘아인슈타인 방정식(Einstein's Field Equation)’ 혹은 ‘중력장 방정식’은 무엇일까요? 이 방정식은 뜻하는 바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물질(에너지)이 시공간 구조를 결정한다.’입니다.

그 방정식의 유도 과정은 여기서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강력한 수식인 만큼 아름다운 그림(?)인양 눈에 새겨둘 가치는 있을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방정식(혹은 중력장 방정식). Tµν : 스트레스-에너지 텐서, Rµν : 리치곡률 텐서, R : 리치 곡률, gµν = 계량텐서)
아인슈타인 방정식(혹은 중력장 방정식). Tµν : 스트레스-에너지 텐서, Rµν : 리치곡률 텐서, R : 리치 곡률, gµν = 계량텐서)

아인슈타인 방정식(중력장 방정식)은 시공간의 기하학적 구조(좌변)가 물질과 에너지(우변)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시공간(spacetime)과 전혀 별개로 여겨졌던 물질(에너지)이 서로 얽혀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물리학자들은 이토록 짧은 방정식으로 우주의 창조와 진화를 재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찬탄을 금치 못합니다. 아인슈타인 방정식은 난해하지만, 아름답고 불가사의한 무엇인가가 느껴집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장 방정식을 완성한 후 자신의 이론이 너무나 단순하고 우아하면서도 강력하므로 어떤 물리학자도 그 최면 같은 마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친구인 에렌페스트(Paul Ehrenfest)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기쁨과 흥분에 휩싸여 있네. 이 이론을 정말로 이해한다면 깊은 매력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네. 진정 그 아름다움은 비길 데가 없지.”라고 썼습니다.

1921년 아인슈타인은 처음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정작 상대성이론을 이해하는 기자들과 미국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한 기자가 “상대성이론이 뭡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아주 진지하게 대답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과 아인슈타인 방정식에 관한 최고의 명언이 나오는 순간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우주에서 물질적인 모든 것이 사라져도 시간과 공간은 남아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새로운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물질과 함께 시간과 공간도 사라집니다.”2)

※ 1)데니스 브라이언 지음, 승영조 옮김, 아인슈타인 평전, 북폴리오, 2004. 250p
   2)같은 책 182p

<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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