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관 오디세이-상대성이론이 펼치는 우주론
상대성이론은 인류의 우주관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인류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나옴으로써 우주를 과학적으로 본격 탐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현대 우주론의 원천입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힘입어 우주의 베일을 조금씩 벗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그 우주의 모습에 당혹감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블랙홀은 무엇일까요?
일반상대성이론이 탄생시킨 당혹스러우면서도 신비한 물리적 개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블랙홀(black hole)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이듬해인 1916년 물리학자 칼 슈바르츠쉴트(Karl Schwarzchild)로부터 자신의 중력장 방정식의 풀이를 담은 한 통의 편지를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편지에는 어림풀이 방식을 쓰지 않고 도출한 정확하고도 우아한 방정식의 해(풀이)가 적혀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중력장 방정식은 너무 복잡해 아인슈타인 자신도 어림방식으로 풀어야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방정식 풀이의 결론을 본 뒤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슈바르츠쉴트는 별에 대한 방정식의 해(슈바르츠쉴트 해)를 구했는데, 이 별에 아주 가까운 곳에서는 강한 중력 때문에 빛마저도 벗어나지 못하며, 따라서 이 별은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슈바르츠쉴트는 그 별 주위에 ‘마술의 구’(magic sphere, 오늘날 명칭은 사건의 지평선 event horizon)이 있음을 발견했는데, 이 부근에서는 시공간의 만곡이 엄청나기 때문에 이 경계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심지어 빛조차도 결코 빠져나올 수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멀리서 이 별을 보면 전혀 보이지 않고 다만 암흑처럼 검게 보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보통 별을 얼마만큼 압축해야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슈바르츠쉴트 해에 따르면 태양의 경우 별 중심에서 사건의 지평선까지의 거리(슈바르츠쉴트 반지름)는 3km이며, 지구의 경우 1cm도 되지 않습니다. 당시 과학적 상식으로 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후에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존 휠러(John Wheeler)는 이를 ‘블랙홀’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검은 구멍과 같다는 의미 외에도 실체를 알 수 없는 의혹의 심연이란 느낌을 갖게 하는 적절한 이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수로 사건의 지평선을 통과하여 블랙홀에 빨려드는 비운의 우주비행사를 상상해 봅니다. 스티븐 호킹은 저서 ‘시간의 역사’에서 블랙홀에 빨려드는 우주비행사의 운명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우주비행사의 발에 미치는 중력은 언제나 머리에 미치는 중력보다 강하다. 이 힘의 차이(조석력·tidal force)는 우주비행사를 국수처럼 늘어뜨리거나 조각내버릴 것이다!’
블랙홀의 중력으로 인해 물체가 국수가락처럼 늘어나며 빨려들어가는 현상을 ‘국수효과(noodle effect)’ 또는 ‘스파게티화(spaghettification)’라고 합니다. 이는 한 물체 안에서 각 부위별로 작용하는 중력의 크기가 크게 달라 발생하는, 극단적인 조석력에 의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블랙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광경으로 보입니다.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 다다른 사람에게서 나온 빛은 블랙홀의 중력에 의해 끝없이 길게 늘어나며, 따라서 그 사람은 거의 얼어붙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블랙홀 안으로 빨려드는 것이 아니라 블랙홀 위에 영원히 떠도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블랙홀처럼 기이한 물리적 실체를 내놓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블랙홀이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고 합니다. 1930년대 들어 핵물리학과 양자역학이 발전하면서 아인슈타인의 희망과는 반대로 블랙홀의 존재가 점점 이론적으로 확실해졌습니다.
블랙홀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별들은 핵융합 반응에 의해 에너지를 소진하고 나면 중력수축이 진행되면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킵니다. 이렇게 별이 폭발해 밝게 빛나는 상태를 우리는 초신성(supernova)이라고 합니다. 티코 브라헤가 1572년 11월 관측하고 ‘새로운 별(De Nova Stella)’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 바로 초신성입니다. 초신성은 매우 밝게 빛나는 새로운 별이라는 뜻입니다. 별은 죽으면서 찬란하게 빛나는 불꽃을 뿌린 뒤 블랙홀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별이 다 블랙홀로 부활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거운 별의 폭발은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지점에서 일어납니다. 그 폭발로 인해 별의 외부는 우주로 흩어지지만 별의 중심부는 더욱 단단해집니다. 이렇게 더욱 밀도가 높아진 별의 중심부가 중성자별이나 블랙홀이 됩니다. 어느 것이 되느냐는 그 별의 크기(질량)에 달렸습니다.
태양보다 8배에서 30배 이하 크기의 별이 폭발하면 중성자별을 만들어지고, 30배 이상의 큰 별이 폭발하면 블랙홀이 나타납니다. 즉 이들 별은 초신성으로 폭발, 최후를 맞은 뒤 중성자별과 블랙홀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도 영원히 살지는 못하겠지만요.
이들 중성자별과 블랙홀들은 마주 돌거나 충돌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기도 합니다. 그 에너지가 시공간의 요동, 즉 중력파 형태로 전 우주에 퍼집니다. 2017년 노벨물리학상은 2015년 역사상 최초로 이 중력파를 직접 검출하는 데 성공한 라이고(LIGO, 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의 설계와 제작, 운영에 참여한 킵 손 등 물리학자 3명에게 주어졌습니다.
블랙홀의 존재가 발견된 것은 이로부터 30여 년 후입니다. 1971년 NASA(미국 항공우주국)의 X선 천문위성이 천체 백조좌 X-1 근처에서 방출되는 X선을 관측했습니다. 뭔가 엄청난 중력을 가진 물체가 다른 별을 빨아들이고 있음이 분명했고, 그 물체는 다름 아닌 블랙홀이었습니다. 현대 과학에서 블랙홀의 존재는 상식으로 통합니다. 우리은하 중심에도 거대한 블랙홀이 있다고 합니다.
블랙홀의 존재에 관한 에피소드 한 가지를 소개합니다. 스티븐 호킹은 1971년 킵 손(2017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영화 인터스텔라 자문)과 백조좌 근처에 블랙홀이 ‘있다, 없다’로 내기를 했다고 합니다. 아직 블랙홀이 확인되기 전이었습니다. 킵 손은 ‘있다’에, 호킹은 ‘없다’에 걸었다고 합니다. 킵 손이 이겼지요. 킵 손이 호킹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X선 방출 등 관측 결과를 보면 블랙홀 징후가 분명한데 왜 ‘없다’ 쪽에 걸었느냐.”고.
호킹의 대답은 이랬다고 합니다.
"나는 블랙홀 전문가 아닌가. 그런데 블랙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의 연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블랙홀의 존재는 나의 지극한 소망이네. ‘없다’에 걸면, 설사 내기에서 자네에게 지더라도 나는 지극한 소망을 이루는 게 아닌가?"
블랙홀은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블랙홀의 내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자론을 적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물리학계는 양자중력이론(quantum gravity)으로 블랙홀의 신비를 벗기려고 합니다. 하지만 양자중력이론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합니다.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이 에너지를 방사해 종국에는 증발해버린다는 호킹복사(Hawking Radiation) 이론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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