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 이야기(18) - 친정집이 인천이게 된 연유
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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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30 21:08 | 최종 수정 2021.01.30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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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친정집은 금호동에서 인천으로 이사를 갔다. 그리 가게 된 까닭은 나한테 작은 이모부, 엄마한테 작은 형부 덕분이었다. 인천항에서 통선업을 하는 작은 이모는 엄마의 친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원래 형제자매들 중에 어느 한 명이 잘 되면 그 덕택에 산다는 말이 있는데 비슷한 맥락이다. 엄마의 두 살 아래 동생인 작은 외삼촌의 증언에 의하면 엄마의 두 살 위인 큰 외삼촌이 먼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큰 외삼촌의 작은 누나 남편인 작은 이모부가 하는 인천항 통선업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은 이모부가 운영하는 작은 개인회사에서 상무 직책을 맡았다고 한다. 작은 외삼촌도 군대를 제대하고 취직을 하려고 형인 큰 외삼촌한테 가면서 취직이 되어 인천에 살게 되면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도 같이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엄마의 작은 언니가 인천에서 먼저 살고 나중에 아버지와 엄마, 남동생과 오빠까지 인천에서 살게 되었으니 엄마의 친정집이 인천이게 되었던 것이다.
오남매 중 세 명이 인천에서 살고 부모도 인천에서 살게 된 상황이기에 엄마도 인천에서 살게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또 어떤 다른 인생이 펼쳐질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꿋꿋이 한양대 앞 행당동에서 살며 어느 화창한 날 이렇게 인천 자유공원으로 놀러 가게 되었다. 아마도 놀러간 외할아버지 집에서 외삼촌이 구경시켜 주겠다며 우리 가족을 이끌며 나오신 듯하다. 모자를 쓴 큰 외삼촌의 살아생전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저리도 밝게 웃는 엄마 밑에서 어찌 저리 매번 사진찍힐 때마다 찡그리는 아들인 내가 나왔을까? 그런데 다행이도 나는 자라면서 점점 엄마처럼 웃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니 천만다행이다. 모두 엄마 덕이다.
<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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