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692)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3장 누님 또 누님들(24)

이득수 승인 2024.02.25 07:00 의견 0

“저는 오늘 혼주인 이금찬 집사의 남동생 이열찬입니다. 먼저 명촌 하고도 등말리 들판가운데 외딴집 비슷하게 외롭게 사는 우리 누님과 가족을 늘 따뜻이 챙겨주는 울주교회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한 꼬투리에 든 콩과 같은 형제자매간에도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면 각자의 형편대로 살아가며 서로 만나거나 돕기가 힘든데 우리 자영이 돌아가신 후 만약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면 우리 누님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하면 더욱더 여러분이 감사하고도 고맙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 셋 째 누님이 평생에 아주 잘 한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비록 지금은 안 계시지만 다정다감한 우리 자영을 만나 4남1녀 아이를 많이 낳은 것이고 또 하나는 하느님의 딸이 되어 힘들고 외로운 노후를 서로 의지하며 잘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인 줄 압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제가 뭐 가족대표로 지명되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생각해보니 촌사람 우리형제자매에게 무슨 큰 자랑거리는 없고 대신 딸과 며느리와 손녀가 많아 엄청난 미인부대가 있는데 오늘은 우선 8공주만 소개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운을 떼니 교인들이 와아, 웃으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먼저 여러분도 잘 아실 둘째누님 가순찬권사를 소개드리겠습니다.”

하자

“주여!”

안 그래도 입이 달막달막하던 순찬씨가 부목사에게 절을 꾸뻑하고 열찬씨를 바라보는데 앗차! 싶은 열찬씨가 어서 앉으라는 신호를 하자

“할렐루야!”

몹시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렇지만 한번 이야기를 꺼내놓으면 5분 10분에 눈물을 글썽이며 할렐루야를 찾으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원래 제 누님이 네 분인데 유감스럽게도 큰 누님은 얼마 전에 작고하셔서 오시지를 못하고 우선 둘째 이순찬권사님을 첫째 공주로 소개했습니다. 여러분, 참 아름다우시죠?”

하니 모처럼 한복을 입어 더 한층 넉넉한 같이 풍성한 몸매의 순찬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씩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다음은 오늘의 혼주이신 울주교회 이금찬 집사님을 소개합니다. 우리 7남매중에 손끝이 제일 야무진 누님인데 어찌 된 셈인지 어릴 때부터 제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중년이후 하느님의 딸이 되어 점점 형편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박수 부탁합니다.”

하니

“감사합니다.”

평소 까무잡잡한 얼굴에 붉은 홍조가 감돌았다. 교인들 좌석에서 “잘 한다!” 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꽤 만족스런 모양이었다. 이어

“제 막내누님인 가덕찬공주입니다. 그냥 순하고 착한 막내딸이었는데 제주도 고(高)씨로 코크고 잘 생긴데다 부지런하기도 한 남편 고차대씨를 만나 아주 짭짤한 시골부자가 되어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자영, 고맙습니다.”

하자 벙긋 웃으며 인사를 하는 부부를 향해 박수가 쏟아졌다.

“다음은 인물은 좀 빠지지만 주최 측의 농간으로 일단 미인에 포함시키기로 했습니다. 제 아내 홍영순여사입니다.”

하자 와아 웃음이 터지며

“기 중 났다.!”
“그 남편에 그 각씨다!”

교인 측에서 박수가 터졌다.

“다음은 다섯 째 공주 제 제수씨인 박화자공줍니다. 딸 부잣집 넷째 딸로 아주 야무지고 부지런합니다.”

박수 끝에

“다음은 울주교회의 멋쟁이 우리 큰 질부 천선초집삽니다.”

하자 하얗고 애띤 얼굴의 큰 질부가 일어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얼굴 가득 미소를 띠우고 손을 흔들었고

“다음은 우리 둘째 질부 최경숙집사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울주교회를 대표하는 건강미인으로 특히 아이를 잘 낳아 하느님의 축복을 제일 많이 받은 질부입니다. 이렇게 칭찬을 한다고 다시 넷째를 낳을까 겁이 납니다.”

하니 까무잡잡한 얼굴 가득 웃음을 띠우고 손을 흔들었다. 결혼식을 출발하기 전에 영순씨가

“보소. 당신 오늘 제일 밝고 활달하며 ‘외삼촌! 외삼촌!’ 한다고 큰 질부만 챙기면 큰일 납니더. 여자들이란 다 셈이 있지만 둘째 또식이 처가 특히 예민하니 조심하이소.”

“알았다. 내가 누고? 부녀회하고 여자 통반장 잘 다스리기로 유명한 이열찬동장아이가?”

하며 금찬씨에게 물어 질부 셋의 이름을 미리 외어둔 것이었다.

“다음은 우리 셋 째 질부입니다. 부산에서 수돗물을 먹고 자란 공주라 얼굴이 하얀 백설공주입니다.”

하고 소개를 마치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수고했습니다. 멋진 소개였습니다.”

아직 30대의 부목사가 찾아와 인사를 하더니

“전에 교회에 다녔다면서요?”

열찬씨의 눈을 들여다봐 졸지에 급소를 찔린 열찬씨가

“예.”

하고 눈길을 내려 깔자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오시지요. 누님들이랑 같이 교회에 나오시지요.”

너무나 진지하게 나오는지라

“예. 차차 생각해보지요.”

진땀을 빼며 자리에 앉았다.

“그래. 현주는 잘 산다 카더나?”

“뭐 별 탈 없이 잘 산다 카더라.”

“아아는?”

“딸 하나를 낳았다 카더라.”

“그라면 현주는 벌써 아아가 셋이네.”

“셋이든 넷이든 위서방이 처음부터 알고 결혼해서 문제가 없답니다. 사람이 아주 순하고 착하답니다.”

“그런 다행이 없네.”

“자, 인자 장촌누님차례네.”

“장촌에사 무슨 문제가 있나? 딸 하나 미진이는 시집가서 아들만 둘 놓고 잘 살고, 영감할마이는 촌부자소리를 들으면서 건강하게 잘 살고.”

“그래도 걱정 없는 집이 어딨노? 아들도 없고.”

“마 괜찮구만. 요새 이아들 둘이 아니면 하나만 놓은 세상에 에데 아들 없는 집이 한두 집이가? 괜히 명촌형님이 자기보다 잘 사는 것이 셈이 나서 자기 아들 많은 것 가지고 유세를 하지.”

“하긴.”

“대신 미진이가 밤톨 같은 아들을 셋이나 낳아서 말이야. 지 애비 김서방이 언양바닥에선 제일 큰 근 2미터가 되는 거인이라 초등학에 다니는 애 둘이 벌써 키가 저거 엄마만 하다고 영감할망구 자랑이 늘어졌던데.”

“아아들 공부는 잘 하고?”

“별 말 없는 것 보면 별로 같더구먼. 앞으로 당신 눈치 없이 장촌 아주버님이나 누님, 미진이한테 아아들 공부이야기는 하지마소.”

“알았어. 그런데 말이야. 그 많은 돈 평생 쓰지도 못하고 나중에 아까워서 우짜꼬? 죽어서 가져갈 거도 아니고?”

“당신도 명촌형님 닮았소? 넘이사 우짜기나. 저거 엄마아빠 죽으면 미진이가 어련히 알아서 챙기가겠지.”

“그러니까 살았을 때 맛있는 것도 좀 사먹고 놀러도 좀 댕기고 기부도 좀 하고 그래 살아야지.”

“그 기 버릇이 안 돼서 호주머니에 손이 잘 안 들어간다 아이가?”

“하긴.”

하던 열찬씨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형제간에 돈 안 빌려준

다고 또 소고기 안 사준다고 지청구를 하는 금찬씨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도 아주바님이 요새는 많이 달라졌다카더라.”

“어떻게?”

“우선 해마다 논을 사던 걸 이제 더는 안 산다는구먼.”

“왜?”

“장촌형님이 자기는 무릎이 앉아 인자 더는 논두렁을 탈 수 없다고 자꾸 논밭을 살려면 혼자서 농사를 다 지으라고 말려서 말이지.”

“그래서?”

“요새 농사일에 굳이 여자 괴롭힐 일 없다면서 트랙터랑 콤바인을 사서 남의 모내기와 타작까지 해 줘서 또 돈을 더 번다는군.”

“저런? 그래도 논 귀퉁이에 빠진 모를 심거나 콤바인기계 들어갈 입구 나락을 먼저 베어주는 보조가 있어야 되는데.”

“그것도 안 한 데. 굳이 남의 돈 벌 필요도 없다면서 그 시간에 안양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도 받고 복지회관이나 경노당에 간다는구먼.”

“그래도 아무말 안 하는가? 자영이.”

“괜찮다는군.”

“그 거 참 희한하네. 사람이 변했나?”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당신이나 좀 변하소. 마누라대신 설거지도 좀 하고.”

“아나, 콩콩이다. 내가 미쳤나?”

하고 일단 장촌은 넘어가기로 하고

“울산 백찬이네 민우는 제대를 했는가?”

“저런 벌써 1년이 넘었지. 저번에 벌초 때 만났다면서 사람이 당최 앙금이 없어. 대충 보고 대충 이야기 하고 그라고는 잊어뿌고. 그 정신으로 우째 공부는 그래 하고 글은 또 쓰는지?”

“아, 그렇구나! 인자 기억이 나네. 그럼 취업은?”

“그게 문젠가 봐. 성적이 어중간해서.”

울산공대 기계과를 나와서 기업체가 많은 울산에서 의례히 취업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현대자동차나 현대중공업에 아버지가 퇴직할 때 노조를 통해 슬며시 자식을 밀어 넣는 수도 간혹 있었는데 이제 귀족노조운운 하면서 사회의 지탄을 받아 힘든 모양이었다. 몇 군데 원서를 넣어 실패를 하고 사촌형 정석이가 있는 서울이나 수도권, 특히 삼성에 취직을 할 수는 없을까 물어봐서 영순씨도 그렇게만 되면 사촌끼리 서로 의지하고 살아 얼마나 좋을까 싶어 정석이에게 연락을 했는데

“아무래도 그 성적으로는 힘들 것 같아요. 더욱 어학연수를 안 갔다와서 영어도 안 되고.”

하며 난색을 표했다. 그 후로는 손아래동서를 만나도 차마 뭘 물어보기조차 힘들어 그저 눈치만 살핀다고 했다.

“어서 취직을 해야지. 그 다음 성우는?”

“지금 군에 갔는데 제대를 해도 지 형보다 공부도 적게 하고 덩치까지 작아서 걱정이 태산이라는 구먼.”

“저런. 백찬이는 아직 몇 년이나 남았는가? 퇴직이.”

“내가 우예 아요? 당신 동생을.”

“그렇지. 58년 개띠지만 호적에 한 해 늦게 얹혀 아직 7,8년은 남았겠구먼. 아아들도 그 새 무슨 일이 있겠지. 인자 마 넘어가자.”

“휴우!”

영순씨가 긴 한숨을 쉬었다.

※ 이 글은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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