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 (28)】 이가 없는 사람 - 유승도
조승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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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9 10:10 | 최종 수정 2024.03.0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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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없는 사람
유 승 도
이가 없다고 했다
살짝 벌린 입안을 보니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게 없다
붉은 기가 살짝 도는 잇몸이 어슴푸레 드러나 있었으니
그것도 어둠에 다름이 아니었다
음식도 입속으로 들어가면 어둠이다
잘게 씹어도 어둠이 되지 않는 게
아니니 이가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것도 좋은 일이다
슬쩍슬쩍 웃을 때마다 입속 어둠이 입 밖의 세상을 살핀다
여차하면 나까지 먹을 자세다
삶이 저런 거라면, 무엇이라도 받아들일 저 어둠이라면,
이가 할 일을 맡겨도 되겠다.
- 『동행문학』, 2023년 가을호
생물이 제 몸의 영양분을 섭취하려고 먹을 것을 몸속으로 보내려면 잘게 분쇄하거나 찢거나 그냥 흡수하는 첫 과정을 입안에서 하게 된다. 여기에 치아가 필요하다. 치악력이 엄청난 악어는 분쇄를 할 수가 없어서 물고 좌우로 흔들거나 제 몸을 축으로 회전시켜서 입안에 들어갈 크기로 자른다. 치아(이)를 맷돌처럼 갈 수 있는 사람이나 소는 느긋이 음미도 할 수가 있다. 소화력을 돕는 데에 치아는 무척 유용한 것인데, 모유를 먹던 아기들의 입 속에서 치아가 자라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시인은 이가 없다는 사람을 만났고, ‘살짝 벌린 입안을 보니 어둠 속에서 반짝’ 거려야 할 이는 보이지 않고 잇몸만 ‘어슴푸레 드러나 있었으니 그것도 어둠’ 같이 보였다. 위장을 향해 이어진 식도에서부터 어둠이 시작되므로 ‘음식도 입속으로 들어가면 어둠’으로 동화가 되고 이것은 ‘잘게 씹어도 어둠’으로 일체화되므로 ‘이가 없으면 없는 대로’ 순응하며 사는 것도 좋은 일이라 한다.
검은돈으로 마련한 먹거리나 정직한 돈으로 다듬은 먹거리 모두 어둠으로 변해 버릴 것인데 이 어둠은 ‘슬쩍슬쩍 웃을 때마다’ ‘입 밖의 세상을 살’피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여차하면 나까지 먹을 자세’로 노리고 있으니 ‘삶이 저런 거라면, 무엇이라도 받아들일 저 어둠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겠냐고 ‘이가 할 일을 맡겨도 되겠다’ 면서 그래도 유혹은 피하고 최후의 보루로 양심에 따라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입속에는 올바른 맛을 구분하고 바른말 할 수 있는 혀가 치아보다는 더 오래 버티고 있을 것이다.
◇ 조승래 시인 : ▷경남 함안 출생, 2010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 시집: 《칭다오 잔교 위》, 《뼈가 눕다》, 《어느 봄바다 활동성 어류에 대한 보고서》, 《적막이 오는 순서》 외 ▷계간문예 문학상(2020), 조지훈 문학상(2021) 수상 ▷단국대 겸임교수,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역임(경영학 박사) ▷한국시인협회, 문학의 집 서울, 한국문인협회 이사,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 ▷취미생활로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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