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불안을 못이긴 6살 개가 4층 방충망을 뚫고 뛰어내립니다.
자학을 멈추지 않는 원숭이는 실험실에만 있지 않고, 지옥과도 같은 밀집된 축사에 갇힌 닭과 돼지도 자신의 몸을 학대합니다.
사람의 수인을 배운 오랑우탄이 '나는 사람이다'라고 표현한 뒤 우울증을 겪다 외롭게 죽습니다.
'정신을 가진 동물은 모두 정신 줄을 놓을 수 있다.'
책 『우리 모두 마음이 있어』의 저자이자 과학사학자인 로렐 브레이트먼이 마음이 아픈 동물들을 찾아다니며 한 이야기입니다. 동물도 마음이, 정신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의식이니 정신이니 하는 것은 사람만이 지닌 고차원의 인지활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은 아기 코끼리를 특별한 방식으로 땅에 묻는 아시아 코끼리의 행동을 목격한 이야기를 보면 명확해집니다. 죽은 아기 코끼리의 가족들이 아기를 땅을 파서 배가 하늘로 나오도록 묻어주고는 한참이나 눈물을 보인 것입니다. 몇 차례나 관찰이 됐습니다.
마음은 사람만이 가진 배타적이고 지배적인 진화의 결정체가 아닙니다. 생명체에겐 저마다의 마음이 있습니다. 각자의 의식이 있습니다. 단지 사람의 감각으로는 이해 못할 뿐입니다. 눈을 감는다고 세상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지어 나무를 관찰하던 찰스 다윈은 '나무는 머리 없는 동물이며, 기억이 몸 전체에 퍼져있다'라고 했습니다. 나무도 듣고 기억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실험실에서든 외부에서든 과학적으로 증명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동물이나 나무들을 생각이나 의식, 마음이 없는 존재로 취급합니다. 오로지 쓰일 모에 따른 자원으로서만 가치를 매겼습니다. 나무는 목재로서만, 땅 속 화석들은 석탄과 석유로서만, 소는 소고기로서만, 물은 수자원이 된지 오래고, 공기도 자원이 됐습니다. 하지만 자원의 개념은 쓰고 버린다는 인식이 깊숙이 깔려있습니다. 모든 자원은 쓰레기가 됩니다. 시간의 문제 일 뿐입니다. 쓰레기는 쌓이고 부패합니다. 유한한 지구의 땅과 물은 오염되고, 대기는 요동칩니다.
그러다 기후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당장 올 초봄에 한 번도 없었던 겨울장마를 겪었습니다. 자연에서 권리를 뺏고, 자원이라는 노예로 취급해 버린 결과입니다. 자연의 권리를 박탈하는 순간 인간의 권리도 온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권리를 가졌다는 인간들끼리도 지옥도를 만듭니다. 존재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상실되었기 때문입니다. 존재에 대한 공감능력 없으면 공격성으로 드러납니다.
공격하지 않으면 공격받을까봐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나만, 우리만 마음이 있고 그래서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불안을 만듭니다.
그래서 자연의 권리를 찾아주는 일이 이제 우리의 역할입니다.
자연에게 권리는 있습니다.
단지 자연은 그 권리를 주장하지 않을 뿐입니다.
<KNN 기획특집국장·다큐멘터리 '위대한 비행'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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