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60) 인생 달밤 - 유재영
조승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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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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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달밤
유 재 영
여보게, 통성명도 없이 어깨를 툭! 치는 것이 있다. 보지 않아도 그것은 올해 내가 듣는 청동색 마지막 질문, 층층나무 아래 며칠 전 죽은 사슴벌레 풍장을 하고 와서 울먹이는 등 휘인 바람소리 같은 것, 성냥불빛만한 가을 저녁마저 이렇게 보내고 나면 내일은 물구나무 선 그 많은 생각들 아아 또 어쩔 것인가, 창밖에 불과하게 익은 달 걸어 놓고 막 버스 놓쳐가며, 인생이 뭐 별거냐며 종점 국밥집 혼술 마시며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듯》, 동학사, 한국의 서정시 4인(나태주, 권달웅, 유재영, 이준관)시집에서
시 해설
‘올해 내가 듣는 청동색 마지막 질문’이 누구라 밝히지 않고 시인의 어깨를 툭 쳤다. 시인은 이미 알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청동색에서 찾아낸다.
숲속에서 죽은 사슴벌레를 풍장하느라 며칠간 분향하며 재를 정성껏 지내주고 온 바람은 휘어져 목소리조차 슬프다. 바람은 늘 한발이 늦다. 죽음마다 임종을 지켜본 적 없고 그저 날아온 부고장에 몸을 떨 뿐, 그래서 바람은 숲속마다 찾아다니며 속죄하느라 햇살이 들춘 자리를 함께 들여다보는 것이다.
올해 마지막 청동색 주검이라고 자처한 도토리들도 고요히 입적하여 마지막 의식을 기다린다. 바람은 어쩌겠는가, 풍장이라도 지내주어야지, 손수건만한 하늘에서 성냥 불빛만하게 남은 가을 저녁이 저물고 내일이면 못다한 일들과 해야 할 일들, 과하게 했던 일들이 떼 지어 몰려올 건인데. 어쩌랴, 버스는 떠났고 창밖의 익은 달이 아직 있으니 인생 달밤에 혼술 맛 참 좋네, 종점에서 다시 새로운 바람이 여보게, 어깨를 툭! 치겠지. 인생 달밤 좋은 시 읽은 독자도 인생 술 한잔 마실 것 같다.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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