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94)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21장 교장선생님의 욕심과 의심치매(3)

이득수 승인 2024.11.28 21:31 | 최종 수정 2024.12.02 09:29 의견 0

21. 교장선생님의 욕심과 의심치매(3)

황급히 일어나 출구로 향했지만 이미 그 등이 구부정한 사내는 흔적이 없었다.

차갑고 어두운 겨울이 찾아왔지만 동쪽으로 창이 난 열찬씨의 집은 눈을 뜨면 노란 햇살이 거실의 양탄자로 찾아와 칙칙하거나 음울한 느낌은 없었다. 일어나자말자 창을 열면 수영강 건너 센텀시티와 어이들의 머리에 난 버짐자국 <헌디>처럼 네 개의 너덜이 늘어선 장산의 숲, 아침마다 머리를 감아 빗은 정갈한 숲이 아침인사를 건넸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과정교와 수영4호교 사이의 수영강에 물오리가 가득히 날아올랐다. 그 옛날 절대자 왕이 총애에서 버림받아 언 달을 바라보거나 접동새 울음소리에 가슴을 졸이던 <귀거래사>의 시인이 떠난 지 천년이 가까워 산천초목이 변하다 못해 상전벽해가 되었어도 남으로 열린 수영강과 그 강물을 받아들여 더한층 푸르게 넘실대는 파도와 그 위를 느릿느릿 기어가는 다이아몬드 장식의 광안대교와 양안의 기라성 같은 아파트들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마치 아침마다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하고 새 옷을 입는 새색시처럼 여전히 설레는 빛남으로 밝고 맑고 투명했다.

하루에 두어 번 서너 시간씩 한 7, 8쪽의 소설을 쓰는 열찬씨의 작업도 꾸준히 지속되고 매일 온천천이나 수영강을 걷고 원동교아래서 바둑을 두거나 산우회사무실에서 훌라를 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숨길 것 없는 친구들과 소주잔을 나누며 늙은 사내들의 Y담을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여전히 현서를 거두느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고 저녁 늦게 들어오는 아내 영순씨와도 별 갈등 없이 서로가 배려했고 아이를 안 보는 일요일엔 영순씨가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면 바로 대변이나 일광쪽의 바닷가로 나가 회나 전복죽을 먹고 한참 바람을 쏘이다 볕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영서네 가게가 쉬는 날엔 여섯 가족이 함께 외식을 하기도 했다.

북에서 온 피난민들이 한 겨울에 얼음이 둥둥 뜨는 냉면을 먹듯 그 차가운 겨울에 즐기는 별난 취미 하나를 개발했는데 그건 음력 그믐께 간조가 가장 심해 저 안쪽 바닷가의 갯바위와 해초가 완전히 드러나는 바닷가에서 조개와 고둥과 자잘한 물고기를 잡는 일이었다.

수렵채취의 유전자가 핏줄에 깊이 새겨진 농사꾼 아들 열찬씨, 민물고기잡이와 고사리채취를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열찬씨가 금방 빠져드는 이 기상천외한 취미는 매일이다시피 영순씨와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떠는 14층의 단짝 호영이할머니에게서 비롯되었다.

호영이할머니 윤금화씨는 기장군 일광면 학리라는 어촌에서 자랐는데 일광면장을 지낸 아버지 밑의 6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고 당시 국회의원을 지내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태중의 아기를 남기고 떠난 그 유복자 최백호 <영일만 친구>의 소꿉친구로 자라나 지금도 가끔 동창모임에서 만나는 것을 최고의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당시에 면장이라면 시골에선 꽤 명문에 속하는데 딸만 여섯 키우는 극도로 조신한 분위기에서 자라 60년대에 여고를 나와 제법 큰 기업체의 사장비서로 근무했는데 키가 훤칠하고 얼굴이 밝고 훤하며 무엇보다 기품이 넘치는 정원씨에게 김해출신의 키가 자그만하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총각이 죽자 사자 <오로지 윤금화!>만 외치고 덤비는 바람에 결혼을 해서 일남일녀를 두었고 사업가로 변신한 남편이 여러 번 실패를 하고 마지막엔 보험외판을 하며 김해의 옥답이 다 날아가도 당황하거나 허둥대는 일 없이 아들딸을 잘 키워냈고 부부사이도 아주 원만하기 보다는 여전히 <내 사랑 윤금화!>을 외치는 이마가 훤하게 벗어진 키 작은 남편을 먹이고 재우고 바깥출입을 시키는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보살핌으로 빈틈없이 잘 유지되는 셈이었다.

마지막 직업인 보험업계에서도 이제 손을 뗐지만 대기업에 다니는 아들의 효성이 지극해 매일 막걸리 서너 병씩을 마시고 아파트나 돌며 지내다 가끔 엎어져 면상을 가는 일이 있는 아버지를 아주 안타까워 못 견딜 표정으로 지극정성 보살폈다.

또 금화씨를 빼닮아 키가 170센티도 훨씬 넘고 아버지의 반듯한 이목구비를 닮아 아주 훤칠한 서양식미인인 딸은 얼마나 머리가 영민한지 지방대인 부산대를 나와서 건축기사로 일했는데 자격시험을 칠 때마다 합격해 남녀를 통틀어 부산에서 몇 사람 없는 최고의 건축사로 이제 회사원이 아닌 프리랜서로 뛰며 엄청난 수입을 올리는 모양이었다. 그 딸의 외동딸 하연이를 봐주는 보답으로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가족계획구호처럼 부모의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챙기는 것은 물론 명품백과 옷가지까지 조달해 가수 최백호씨가 나오는 동창회를 비롯한 바깥출입에 있어 기품 있는 귀부인으로 갖추고 나가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지만 강가에서 자란 열찬씨가 미꾸라지와 피라미를 잡는 일에서 못 헤어나듯이 갯가처녀 금화씨도 물이 빠진 바다에서 고둥이나 성게를 잡고 파래를 따는 일에 여전히 몰두했다. 그러다 영순씨와 이웃이 되면서 남창으로 고사리를 따러가는 일에 취미를 붙여 봄 한철 주말마다 영순씨의 차로 열찬씨와 셋이 남창의 산불이 난 야산 <부부농장>일대에서 고사리를 캐러 다녔다. 거기에 가끔 영순씨의 사촌언니 미혜씨, 남숙씨가 붙고 친구 경제씨의 아내 남차영씨, 또 같은 14층의 지적직 공무원으로 이제 모 구청의 토지관리과장을 하는 박태국과장도 동참했는데 그 중에서 운여사가 가장 취미가 많고 손이 빨랐다.

하여 주말만 되면 영순씨더러 고사리를 캐러 가자고 졸라 11시 본미사에 참석해 같은 반모임의 신도를 만나는 일도 미루고 새벽미사를 다녀와 바로 열찬씨와 셋이서 출발하기도 했다. 그러고서도 3,3일이 지난 수요일, 목요일이 되면 잠을 자다 천장에 고사리가 왔다갔다하는 바람에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 출근하는 딸에게 부탁해 승용차로 남창 부부농장 앞에 떨어뜨려 놓고 퇴근길에 찾으러 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딸이 프리랜서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바닷가로 고둥이나 성게를 잡으러 가는 일은 한 달에 한 2,3일 그믐께, 그것도 간조시간이 오후 2,3시에서 한두 시간 정도라 결혼식이나 모임이 있는 날은 출어가 어려웠는데 어느 듯 금화씨보다도 더 고둥잡기에 취미가 붙은 영순씨가 예식장 앞에서 기다리다 모피코트를 걸친 정장의 귀부인 금화씨를 픽업하여 온정리나 구덕포, 아니면 학리의 바닷가에 도착하면 열찬씨더러 먼저 바닷가에 나가게 하고 한 5분 뒤에는 목이 긴 장화를 신고 점퍼에 수건을 겹겹이 둘러쓴 갯가의 아낙이 되어 기다란 조쇄를 들고 나타나는 것이었다. 키가 큰 금화씨가 사내처럼 꺼떡거리며 여기저기 파래가 다닥다닥한 바위섬과 아직도 물에 잠긴 큰 돌을 뒤져 성게와 돌 담치, 엄지손가락만큼 굵은 참 고둥을 잡아오는 사이에 무릎관절이 안 좋은 영순씨는 방금 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퍼질러 앉아 조쇄로 차근차근 발 앞의 돌들을 뒤지며 제법 큰 참 고둥이나 소라가 소복하게 드러나는 것을 잡았다. 그 사이에 열찬씨는 아직 물이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은 갯바위 사이의 웅덩이와 바위틈을 장갑 낀 손으로 쓰윽 훑어 사정없이 손가락을 찔러대는 성게나 물컹거리는 군소에 간간히 낙지새끼도 잡고 한 번은 조그만 공처럼 몸을 똘똘 뭉친 제법 큰 문어를 잡아 <전두환을 생포했다!>고 소리친 적도 있었다. 그리고 날마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바위사이에는 아주 큰 돌담치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욕심은 굴뚝같지만 조쇄나 호미로는 너무 힘이 들어 몇 마리만 따서

“야, 이게 바로 열합(裂蛤)이다. 제사 때 올리지 않으면 딸자식이 못 산다는 처갓집 물건 열합, 우리 어릴 때 몸살을 하면 이 열합을 사다 찹쌀을 넣고 죽을 끓이고 달걀하나를 풀어서 먹이면 금방 일어나곤 했지.”

하고 시꺼먼 수염 아래로 드러난 분홍빛 속살의 괴이쩍은 모습을 들여다보면

“마, 치우소. 다 늙어 힘도 못 쓰면서 그래도 명색 남정네라고?”

영순씨가 눈을 흘기면 금화씨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렇게 한 차례 어로(漁撈)작업이 끝나면 주차해둔 차량의 트렁크에서 물과 가스레인지를 꺼내 커피를 끓여 찬바람이 쌩쌩 부는 바닷가에서 마시면 한층 맛이 났는데 매번 낙지새끼 한두 마리나 작은 문어가 잡혀 열찬씨의 술안주로서도 부족함이 없었다.

심심하지도 않고 바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경황이 없거나 맥이 빠진 상태도 아닌 포근한 겨울, 이제 정년퇴직을 하고 어디에 억매일 것도 없이 남편은 글을 쓰고 아내는 손녀를 돌보는 제법 그럴 듯하면서 극히 만족스러운 열찬씨네 삶에 단 하나의 영 불편한 그늘이 생겼다.

지금은 농사를 짓는 계절이 아니지만 물망골의 지주 교장선생내외가 치매가 걸려도 하필이면 사람을 못 믿고 의심하며 괴롭히는 의심암귀(疑心暗鬼)에 걸려 뭔가 마뜩찮은 상태로 해어졌고 그 중에서도 열찬씨가 자기의 거름을 훔쳐갔다고 우기는 점, 문중답인가 한 번 물어본 일로 자기 땅을 가로채려고 생각한다는 점, 그리고 동서 황서방에 대해서 끝없이 지청구를 하며 땅세를 올려야 된다고 했는데 한해 겨울이 지나면 그 의심과 심술이 한층 더 할 것만 같은 불안이었다.

자기 내외는 그래도 나이도 좀 들었고 교장선생 내외와 밥이라도 가끔 먹으며 지내는데 비해 도무지 자신 외에 남의 일은 발상조차도 할 줄 모르는 내성적 동서 황 서방과 유난히 자존심이 강하고 싫은 소리 듣기를 죽기만 여기는 처제 영신씨도 어떻게 나올지, 언니이자 맏동서로 이것저것 의지하고 같이 술밥을 먹을 땐 아무 탈이 없지만 무슨 어려운 일이 있거나 갈등이 생기면 마치 초등학생처럼 단순한 방어본능만 가진 생 속의 두 사람이 한해 만에 땅세를 올리거나 땅을 비우라고 하면 전후사정 생각할 것도 없이 자신들을 물망골에 끌어들인(비록 자신들이 사정사정 부탁해서 들어왔지만) 열찬씨 내외를 엄청 원망하며 속상해 할 것이 불을 보듯 뻔 했다. 서로 말은 안 하지만 늘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인 영순씨 내외가

“이상하다. 교장선생이 한번 쯤 전화로 내나 황 서방에 대해서 시비를 걸 때가 되었는데?”

“마 씰 데 없는 소리 하지 마소. 입 살이 보살이다.”

하고 잠이 들었는데 진짜 일이 터지고 말았다. 새벽 두시 반에 교장선생의 전화가 온 것이었다.

“여, 여보세요?”

이 시간에 누가 전화를 했을까, 혹시 언양의 고추친구 찬승씨가 술은 취하고 잠은 안 와서 전화를 하는 걸까, 그렇지만 그 친구는 몇 년 전 잠 안 올 때 읽으라고 시 한편을 써 주고는 그게 세상 제일의 수면제라고 자랑하고 다니지 않았는가 더듬어 나가는데

“...”

수화기 저쪽에서 금방 말은 나오지 않고 가쁜 숨을 헐떡거리는 소리가 한참이나 들려

(혹시 교장선생이? 그 양반이 잠 안 자고 이 시간에 왜?)

하는데

“보소, 이, 이 국장!”

과연 박 교장이 틀림없었다.

“아이구, 교장선생님이 이 시간에 우째?”

“이 시간이고, 말고 당신 와 내 거름을 다 가져갔소?”

“예에?”

“내가 암만 생각해도 봉지거름 두 자루가 빈단 말인데 천지강산에 당신 아니고 내 거름을 훔쳐갈 사람이 누가 있어?”

“예에? 제가 제 거름 잔뜩 놔두고 왜 교장선생님 거름을 훔쳐요?”

“그러니까 내가 화가 난단 말이지. 제 거름 잔뜩 놔두고 몇 자루 없는 이 늙은이의 거름을 훔치고 말이야?”

“아니, 교장선생님이 언제 거름 쌓아놓고 살았어요? 제가 언양에 갔다 오면서 소똥거름 싣고 와서 한두 포대 준 거 하고 골짜기사람들이 공동으로 구입해서 일일이 제가 져다준 거름인데 그걸 제가 왜 훔쳐요?”

“그러니까 내가 화가 나지. 있는 놈이 더 무섭다더니. 나이도 젊고 힘도 좋고 거름도 많은 사람이 이 늙은이의 거름이나 탐을 내고.”

“아니,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재가 훔칠 이유도 없지만 옆에서 늘 보는 윤병균씨도 그건 아니라고 이 국장이 손댄 것이 아니라 교장선생님이 착각한 것이라고 여러 번 말하지 않았습니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안 겪어본 지가 우째 알아? 지도 나처럼 거름도둑을 맞아봐야 알지.”

“예에?”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데

“여보.”

안방에서 자던 영순씨가 언제 나왔는지 거실바닥에 나란히 앉아

“명절전이고 하니 언제 만나서 점심이나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하소. 나이 많은 사람이 정신이 깜빡깜빡 하는 가봐.”

하고 옆구리를 질러

“교장선생님, 밤도 야심하니 일단 전화를 끊고 주무시고 언제 한번 만나서 이야기 하십시다. 마침 명절전이니 얼굴도 볼겸...”

하고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는데

“영감! 저 인간들이 인자는 거름이 아니라 남의 땅을 꿀꺽 삼킬라꼬 수작하는 거요. 저 도동놈들하고 만나면 안 돼요!”

앙칼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제 전화 끊고 서로 좀 자도록 합시다. 그 까짓 거름이야 정 필요하시면 제가 몇 포 드릴 수도 있고.”

하는 순간

“봐라! 도둑이 지 발 절린다고. 지가 도둑질해 갔으니 저런 말이 나오지.”

또 앙칼진 사모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전화 끊습니다. 다음에 이야기하지요.”

전화를 끊자말자 계속 신호음이 울려 마침내 전원을 꺼버리고 다시 누우려는데 영순씨가 거실 등을 켜면서

“당신은 지금 잠이 오요?”

혀를 끌끌 찼다.

“우짤 기고? 나 많은 사람이 정신이 없어서 저러는데?”

“정신이 없는 기 아니라 의심하는 치매에 걸린 모양인데 저 끝없는 의심을 우째 다 견딘단 말이요?”

“그럼 우짜겠노?”

“그러니까 처음부터 당신이 좀 잘했어야지요?”

“응?‘

“의심받을 짓을 안했어야지요?”

“아니, 혼자서 거름 60포를 져 나르면서 인자 한 발짝도 더 걸을 힘이 없어 휘청거리자 가까운데 우선 쌓자고 한 사람이 누군데?”

“그렇기나 말았기나 당신이 의심을 안 받았어야지.”

“뭐라?”

열찬씨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그 새 그 연구했어?”

“아니, 연구라니?”

“나는 교장선생 억지전화 받느라고 진땀을 흘리는데 당신은 모든 것은 내 잘못이고 당신은 아무 잘못 없다고 당신만 쏙 빠져나가는 연구.”

“아니. 꼭 그런 것이 아니라 당신이 의심받을 짓을 안 했어야지.”

“의심받을 짓이 아니라 의심하는 병에 걸린 거지. 교장선생이. 그런데 왜 거기서 나는 잘못 하고 당신은 잘못이 없다는 이야기를 해야 되나? 우리가.”

“...”

사람이 깔끔함을 넘어 결백한 것까지는 좋은데 그런 사람의 결점은 만사에 자기의 잘못은 없고 남의 잘못만 남는다는 점이었고 장모 순란씨와 그의 네 딸이 다들 비슷하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 때마다 부아가 치미는 것이었다.

“그만 잠이나 자지. 당신이 걱정해서 될 일도 아니고.”

다시 자리에 누우며 소파에 앉아 씩씩거리는 영순씨에게 말하자

“당신은 시방 잠이 오요?”

“그럼 우짤끼고?”

하는 순간 따르릉 집전화가 울렸다.

“받지 마라. 교장선생이다.”

하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는데 전화는 3분, 5분이 넘도록 계속 울어 방안 가득 벨소리가 흘러넘쳤다.

“안 되겠다. 이러다가 우리 집이 문제가 아니고 삼이부제가 다 깨겠다.”

열찬씨가 전화기 코드를 아예 뽑아버렸다.

“밉던 곱던 지금은 한 도가리에 농사를 같이 짓는 사람 아이가? 거기에다 나이도 부모벌이니 무시하지도 못 하고.”

“그래서요?”

“마침 설날도 다 되어가니 영서네 만두라도 좀 들고 찾아가서 오해를 풀어야지.”

“그 기 푼다고 물릴 오해요? 애당초 없던 죄를 뒤집어씌운 사람들이 무슨 짓을 못 하겠어요. 또 잠깐 정신이 돌아오거나 밥을 사준다고 해해거려도 돌아서면 금방 또 잊어버리고 의심을 하고 욕을 하는 사람들을.”

“그렇지만 우짜겠노? 지금 심어놓은 곡식이랑 거름이랑 비료에 농기구, 비닐과 분무기와 그물과 노끈과 봉지와... 우리 살림이 얼만데 어디 옮길 데도 없고.”

“그러니까 처음부터 교장선생님 밭에 안 올라갔어야지.”

“뭐라?”

또 열찬씨의 눈에 화가 뻗쳤다.

“아니 교장선생 농막에 처음 가던 날, 이런 원두막에 창고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며 우리도 같이 커피나 라면도 끓여먹고 지내면 어떻겠나며 샐샐 웃으며 바닥을 쓸고 물걸레질을 하면서 한집처럼 같이 지내자고 한 사람이 누군데?”

“...”

“이 사람아, 어려운 일을 당 하면 두 사람 다 답답한 법인데 왜 그 때마다 내가 만사 잘못한 사람이고 당신은 잘못이 없는 사람이 되어 날 원망하는 사람이 되노 말이다.”

“...”

“가서 자소. 눈을 좀 붙여다 현서를 보러가지.”

열찬씨가 머리 위까지 이불을 뒤집어쓰는데

“문제는 교장선생이 치매가 아이고 그 놈의 할마시의 심술이지. 아니 심술에 욕심에 요새는 또 정신까지 왔다갔다하니 그 변덕을 누가 다 이길꼬?”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던 영순씨가

“당신은 그러고도 잠이 오요? 당신은 잠이 잘 와 좋겠소?”

하고 안방으로 건너가 계속 이불을 뒤척이며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텔레비전 유선부스에 뜨는 시간이 네 시가 넘는 것을 보고 깜빡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볕이 거실 한가운데 까지 들어와 있었고 영순씨는 가스버너 위에 찌게냄비를 올려놓고 슬비네 집으로 가고 없었다.

“...”

한참이나 정신을 수습한 열찬씨가 컴퓨터 앞에 앉아 매일 쓰는 분량, 하루 5쪽 이상의 소설을 써나가려고 하는데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서재에서 나와 텔레비전을 켜니 <인간극장>이 나오고 있었다. 언제 봐도 착하고 진실하며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며 온갖 근심걱정을 이기며 꿋꿋이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그 진진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 놈의 대하소설을 쓰느라 벌써 근 6개월이나 못 봤다 싶어 한참이나 몰두하는데 찌르릉 전화벨이 울려 바라보니 교장선생의 번호가 떴다. 황급히 전원을 꺼버리고 다시 텔레비전을 보니 그마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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