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이었다. 아이를 보느라 지친 영순씨가 꾸벅꾸벅 졸며 연속극을 보다 9시 뉴스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를 고는 소리가 진동해 화장실에 갔다 오던 열찬씨가 안방의 TV스위치를 끄자
“와 끄는데? 아직 보고 있는데.”
“응? 아직 안 잤어?”
다시 켜주고 거실에 나와 교육방송의 한문강의를 듣는데 이제 갓 50이나 되었음직한 젊은 강사가 이백의 <조발백제성>을 강의하는데
早發白帝城
朝辭白帝彩雲間
千里江陵一日還
兩岸猿聲啼不盡
輕舟已過萬重山
칠판에 이백의 칠언절구를 써놓고
“오늘은 이백의 유명한 시 조발백제성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만 우선 시선 이백에 대해서는 여러분은 물론 동양인이라면 삼척동자라도 다 알만 한 시인이라 설명을 생략하고 우선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발백제성
조사백제 채운간
천리강릉 일일환
양안원성 제부진
경주이과 만중산.”
하얀 피부에 동글동글한 얼굴에 해맑은 눈빛으로 저 사람이 옛날에 태어났더라면 필시 어느 권세가의 옥골선풍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살며 가문을 빛내고 말을 타고 시를 읊고 청루를 드나들며 여인들을 울릴 귀공자가 틀림없을 텐데 어떻게 나보다 젊어도 한참이나 젊은 사람이 그 어려운 한시를 저렇게 줄줄 읽어나가는지 신기했다.
명색 국문과에 들어가 졸업은커녕 절반도 마치지 못하고 평생 제대로 된 스승이나 교과서도 없이 동사무소의 새마을문고나 이동도서관, 구청의 자료실에서 시와 소설은 물론 문학사학철학의 이론서와 신화, 전설, 불교, 기독교, 지리, 동식물, 천문학과 지리에 이르기까지 손에 잡히는 모든 분야 별별 잡학의 책들을 다 읽고 신문에 나오는 한자나 사자성어 하나둘을 익혀 그걸 연결시켜 평이(平易)한 한시나 한문을 겨우 떠듬떠듬 읽어나가는 자신에 비해
(저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게 태어났는가? 유복한 가정에 준수한 외모와 총명한 두뇌 매사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차분한 성격으로 성균관대학교에서 한학 또는 유학(儒學)을 전공하여 그 어려운 한문이나 한시를 체계적, 이론적으로 공부하니 얼마나 즐거운가?
천용사주지 능지스님 이병석시인의 서가에서 한문문법이란 책을 발견하고 아하, 이렇게 한문을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편안 안(安)자를 아니, 어떻게 식의 부사로 풀이하고 세로 종(縱)자를 설령으로 번역할 수 있을까 주인 몰래 슬그머니 뽑아 일독을 하고 너무나 황홀한 신세계를 경험했지만 다시 슬그머니 서재에 꽂아놓고 산을 내려오면 얼마나 아쉬웠던지 저이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소설가도 국어선생도 못된 나는 참으로 아쉬운 변방의 무명시인이라는 생각에 미쳐 가슴에 뜨거운 무엇이 울컥하는 걸 느끼면서
-이른 아침 백제성의 채색구름 뚫고 떠나
천 리라 강릉길을 하루 만에 돌아 왔네
양쪽 벼랑 원숭이 울음 그치지 않는데
경쾌한 배는 이미 만 겹 산을 다 지났네,-
읽어나가면서 여기저기 분필로 동그라미를 치거나 화살표를 그려 여백에 토를 달아가면서
-여러분, 당시 또는 한시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시대배경과 작자의 처지를 알아야 하는데 여러분 아시다시피 이백은 중국문명의 발상지인 황허나 대강으로 불리는 양자강권역에 사는 정통 한족이 아니라 너무나 멀고 외져 삼국지에서 세가 약한 유비가 도읍을 삼았던 사천성 또는 그 보다도 더 먼 변방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말하자면 정통 한족의 문화, 당시(唐詩)나 궁중음악의 고아한 기품이 아닌 변방의 오랑캐, 또 그들의 말발굽소리와 호가(胡笳)소리 같은 강인하고 거칠고 거침이 없는 기질, 그 중에서도 군계일학의 천품을 가진 하늘이 낸 시인으로 보아야겠습니다.
그가 황제가 사는 궁궐을 출입한 짧은 시절이란 그러니까 대당제국의 최성기로서 당태종 이세민의 <정관(貞觀)의 치(治)>가 끝나고 양귀비의 치마폭에서 조금씩 혼군(昏君)으로 변해가는 천보(天寶)연간 의 막바지, 이백과 동시대를 산 두 걸출한 변방인 양귀비와 안록산이 이미 궁중을 출입하며 거대한 소용돌이와 파국의 기운이 피어오르던 시기로 신품(神品)에 가까운 시재로 자신을 지상으로 유배 온 신선으로 알아주는 고관 하지장(賀知章, 그도 시인이었음)의 추천으로 궁중에 들어와 몇 날 며칠을 술에 취해 양귀비의 미모와 현종의 선정을 치하하는 낯간지러운 시, 그러나 워낙 뛰어난 시재로 시 자체로서는 하나의 결함도 없이 그냥 화려하고 빛나는 시를 쓰기는 했지만 천재의 오만한 성품이 환관 고력사의 비위를 건드려 마침내 궁에서 쫓겨나 천지간을 유랑했다. 와중에 시성 두보(杜甫)를 만나기도 하지만 마침내 안록산의 난이 터져 마땅히 머물 곳도 먹고 마실 경황도 없는 끝없는 몰락의 길을 걸어 기나긴 <안사의 난>이 수습된 대종의 대력(大曆)연간에는 신선도에 빠져 오늘날의 수은인 주사(朱砂), 또는 단사(丹砂)로 불로장생의 약을 만들려다 오히려 수은중독으로 옆구리가 터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여간 제가 시대배경과 작자의 입장을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이백이 이 시는 태평성대에 씌어 진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풍전등화처럼 위험한 일촉즉발의 시기에 그나마 선비적 풍류를 살린 시이긴 하지만 그 내용자체에서 아름다운 채색구름에 대비한 원숭이의 울음소리와 하루 만에 만 겹산을 지나 천리 길을 돌아왔다는 경쾌하기보다는 급박함, 그리고 한번 지나가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엄중함을 그 짧은 시에서 시인특유의 감각으로 멋지게 살려낸 점이지요.”
하며 여유 있게 웃는 둥글고 하얀 얼굴 자신감에 넘치는 귀공자의 풍모가
(세상에는 저렇게 곱게 태어나 우아하고 품위 있고 존경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뭐냐? 비록 내가 원한 직업은 아니었지만 평생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다 못해 손에 들어온 책은 모조리 다 읽어낸 나는 왜 나보다 열 살도 더 어린 저 사람에게 내가 좋아하는 문학인 시와 한학인 한문과 사학인 역사에 대해서 미치지 못 하고 이렇게 공손한 제가가 되어 귀를 쫑긋 세우고 배워야 될까?)
한심한 생각이 다 드는데
“자, 여기서 문맥상 한자 특유의 다의성(多義性)을 나타낸다고 할까, 해석상 묘미를 살펴볼 곳이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첫 구절 조사백제성입니다. 위의 제목에 조발백제성이라고 아침에 백제성을 떠난다는 내용이면 본문도 같은 조발백제성이 되어야 하는데 사양한다는 사(辭)자를 써 조사백제성, 그러니까 백제성을 떠난다기보다는 백제성을 사양한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우회적으로 표현한 중국인다운 발상법입니다.”
하고 사(辭)자에 백묵으로 동그라미를 치며 자신 있게 웃으며
“또 양안원성 제부진 즉 삼협의 좁은 강 양 언덕의 원숭이가 울어 그치지 않는다는 부분은 별도의 유래가 있지요? 어느 사람이 장난삼아 원숭이새끼 한 마리를 어미에게서 뺏어가자 식음을 전폐한 어미가 울다 죽어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더라는 단장(斷腸)의 고사처럼 그 많은 원숭이가 하루 종일 울어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거대한 파국이 몰려올 조짐과 불안을 잘 나태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며 울 제(啼)자에 동그라미를 치더니
“마지막으로 <경주이과 만중산, 즉 가벼운 배는 만 겹의 산을 단숨에 돌아왔네.>의 뜻은 배가 빠르게 겹겹의 산을 돌아왔다는 뜻 보다는 어쩌면 다시는 저 먼 만 겹의 산, 그러니까 이미 지나온 시간의 저쪽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뜻하는지 모릅니다. 그렇지요. 모든 삶, 모든 시간, 모든 사건과 역사가 그렇듯이 한번 지나간 갈등이나 환란은 다시 그 이전의 평온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하는 순간
(아하, 그렇구나!)
벌써 꽤나 오래 진행된 교장선생의 기억상실과 의심과 사모의 심술, 그 위에 늙은 두 내외의 끝없는 탐욕, 지나가는 평범한 말 한 마디에서도 자기의 밭이나 원두막에 거름까지 모든 것이 빼앗길 것만 같은 의심암귀에 함몰된 공포에 휩싸인 그들에게 다시 적응을 하고 전처럼 평온하게 농사를 짓기는 이미 그른 것 같다는 생각이, 이미 너무 깊은 의심의 나락에 떨어지고 공포에 사로잡혔다는 생각이 치밀어 부르르 몸이 떨려왔다. 냉장고를 열어 김치와 소주병을 꺼내 거푸 세 잔을 마시고 화장실에 갔다 오니 침대방의 영순씨는 비로소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꺼 주고 거실로 돌아와 자신이 보던 텔레비전도 끄고 자리에 누웠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이다 텔레비전 부스터아래의 전자시계를 보니 벌써 자정이 훨씬 넘어 억지로 잠을 청해도 좀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뒤척이며 비몽사몽간을 헤매는데 따르릉, 단순히 고막을 찢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울렁거리는 가슴을 찢고도 모자라 저 아득한 상념의 저 쪽 처음 말을 배우고 기억을 하기 시작하던 유년의 골짜기까지 찢어발기며 전화벨은 길게 길게 울렸다.
“!”
보나마나 교장선생일 것이었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
“여보세요?”
마침내 수화기를 들었다. 휴대폰과 집 전화를 다 꺼놓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지만 그렇다고 이미 신호가 떨어진 전화를 무조건 끊고 코드를 뽑는다는 것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었다.
“잘 만났네. 그래 말이 나온 김에 뿌리를 뽑아야지.”
역시 교장선생이었고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사모의 기척도 들렸다.
“우짠 일로? 이 야심한 밤에...”
“야심하다니? 이 국장, 당신은 이 밤에 잠이 오나?”
“...”
“우리 마누라가 당신이 내 땅을 탐낸다고 하지만 그렇게까지 당신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데 그렇지만 내 거름 가져간 거는 우짤 거야?”
“예에?”
“그라고 당신 동서 그 버르장머리 없는 황 서방은 우짜고?”
“예에?”
“당장 거름은 물어내고 황 서방은 우리 밭에서 쫓아내어!”
“예? 거름이사 정 그러신다면 몇 포 드릴 수 있지만 농사 잘 짓는 사람을 어찌 갑자기 쫓아냅니까? 마늘 양파는 6월이 되어야 수확을 하는 판에...”
하는데
“그래 맞다. 잘 한다. 인자사 지가 우리 거름 훔쳐갔다고 자백을 하는구나. 영감 바짝 조여서 우리 땅 뺏으려 했다는 자백도 받으소.”
사모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그래 맞아. 거름 몇 개를 준다는 말은 이미 몇 개를 훔쳤다는 자백이네. 그러고 보니 가국장 당신 나쁜 사람이네. 늙은이 꾜셔서 거름이나 훔쳐가고 그런 당신이 남의 땅인들 왜 안 넘보겠어?”
“...”
갈수록 태산이었다.
“선생님, 아직 농사철 멀었으니 봄 되면 만나서 예기하지요.”
사정없이 휴대폰을 끄고 집 전화코드를 뽑고도 불안해 안방의 영순씨 휴대폰들 찾아 전원을 껐다.
“여보, 우리 스마트폰을 사면 어떨까?”
“스마트폰이라?”
“왜 요새 돈푼이나 가진 사람들이 무슨 유행처럼 사가지고 손가락으로 드르르 터치를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는 것 말이야?”
“좋기야 좋겠지만 그 비싼 거를 왜? 또 나는 그런 복잡한 기능을 안 쓰고 사는 사람 아니야? 휴대폰이든 컴퓨터든 전화와 메시지를 걸고 받고 문서를 작성하고 메일을 주고받고 하면 되는 거지. 아니 지금 쓰는 대하소설에 집중하려면 그것도 너무 복잡한 것 같아. 그저 통화나 하고 워드프로세스나 되고 우짜다가 알 듯 말 듯 한 것 있으며 인터넷 검색이나 하고 뭐 그런 간단한 삶을 살고 싶은데 말이야?”
“그건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 그리고 너무 시대나 유행에 뒤떨어지고.”
“아니, 휴대폰에도 유행이 있나?”
“있고말고. 요새 삼성이나 애플에서 신형이 나오면 서로 먼저 사려고 젊은 사람들이 난리가 나는 걸 보면 모르나?”
“그런가?”
“화면이 밝고 색상이 화려하고 사진이나 동영상이 잘 찍히고 음악이나 영화감상이 좋고 인터넷이 초고속으로 뜨고. 뭐 그 장점이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대.”
“그래? 그런데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 젊은 사람도 아니고?”
“아이구, 이 답답한 사람아, 요즘 나처럼 이런 구형 휴대폰, 액정은 좁고 두께만 두껍고 무거운데 화면은 흐릿한 고물휴대폰을 쓰는 사람이 어딨어? 남일회든, 연동회든 모임에 나가면 이런 011 구식휴대폰을 쓰는 사람은 나 밖에 없어. 형제회나 9,8회 부인네들은 간혹 이런 폰을 쓰는 사람이 있지만 제법 사모님소리나 듣는 모임에 가서는 이런 폰을 꺼내놓기가 민망해.”
“암만 그래도 멀쩡하게 통화 잘 되는 휴대폰을 왜 바꿔?”
“통화가 잘 되긴? 야외, 특히 기지국이 먼 오지나 벽지에선 011이나 010이 아니면 잘 터지지도 않은 판에. 또 011, 010 두 번호 중에서도 모두 010중심으로 통합해가는 중에 011을 써도 촌놈대우를 받는데 당신처럼 아직 017이나 016따위를 쓰는 사람들은 희귀동물이나 인간문화재취급을 받는 거지.”
하는 순간 산우회의 양경석 회장이나 유리집 윤 사장, 페인트집 손 사장, 은퇴한 미장공 이영신씨가 넓고 훤하면서 얇고 가벼운 스마트폰을 켜 손가락으로 주르르 전화번호를 검색하며 아들이나 딸, 특히 사위가 사주었다고 자랑하던 모습이 떠올라 큰 사업체를 운영하는 양 사장을 빼고 고만고만한 60대 장년(長年)인 두 사람이 굳이 저런 걸 왜 사는지 모르갰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만큼 편리한 데가 있어 그렇구나 싶지만
“그거 꽤 비싸다고 하던데, 또 매달 통신요금도 많이 나오고.”
“당연하지. 성능이 뛰어나니 기계 값이 비싸고 데이터를 많이 쓰니 요금이 비싸고.”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이 굳이 그런 비싼 폰을 쓸 필요가 있나 말이지. 아무리 좋은 기능이 있어도 그냥 통화기능밖에 안 쓸 텐데.”
“아니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이유라니?”
“전화를 건 상대방 전화번호가 뜬단 말이지. 그리고 이름까지. 그래서 골치 아픈 전화는 미리 차단할 수가 있지.” “엥, 그렇다면?”
“물론이지. 교장선생전화를 안 받을 수가 있지.”
“히야! 세상도 참 좋아졌네.”
“그럼 우선 당신 전화기를 바꿀까? 내친 김에 전화번호도 010으로 바꾸고.”
“나야 좋지만 꽤 비쌀 텐데?”
“근 백 만 원씩 들다가 조금씩 내려간다 하던데. 잘 하면 한 5,60만 원에 될랑가?”
“나는 돈 없다. 당신 알아서 하소.”
“에라이, 왕소금 영감탱이!”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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