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픽사베이]

신학자들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다. “원자가 만물을 형성하는 최초의 근원이라고 가정하자. 그러면 원자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원자가 신의 창조에 의해서 비로소 발생했다는 사실을 암시하려 한다.

그러나 데모크리토스는 신학자들에게 다시 반문을 했을 것이다. “원자가 신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신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신학자들은 “신은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존재한다.”라고 답할 것이다.

데모크리토스를 비롯한 유물론자들도 비슷하게 대답한다. 곧, 원자와 물질은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존재하는 불생(不生), 불멸(不滅)의 영원한 존재라고. -강대식/『서양철학과 비판정신』(p.58)-

위와 비슷한 논쟁은 우주의 기원에 관해서 지금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현대 천문학과 물리학의 주요 이론은 빅뱅 이론(the big bang theory)이다. 태초에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매우 좁은 구역에 모여 있었는데, 이것이 약 138억 년 전에 대폭발을 일으켜 우주를 형성했을 것이라는 우주 기원 가설이다.

이에 대해 많은 신학자들은 우주의 기원이 초자연적인 창조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빅뱅 이론이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신의 존재와 창조를 통해서만 우주의 기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빅뱅 이론이 우주의 초기 상태를 설명하는 데 과학적 증거가 충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증거도 있다. 허블의 법칙,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CMB), 원시 원소의 비율 등은 빅뱅 이론을 지지하는 중요한 증거이다.

과학자들은 빅뱅 이론이 완전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과학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새로운 증거와 이론은 통합하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현재의 이론도 미래에는 더 발전하거나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완전하지 않음’을 인정함으로써 인류는 발전해 왔다. ‘무지(無知)의 자각’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은 것이다. 세상과 세상사 대부분은 무지의 베일 싸여있다. 그 베일을 한 꺼풀씩 풀어내는 수고를 생략하고, 초월적인 신에 대한 믿음으로 해결하려 했으면, 지금만큼의 지혜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게 있다. 종교적 이기주의이다. 초월자인 신을 믿되, 그 신은 모든 신자의 단하나의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종파에 따라 각기 다른 여러 신이 있다. 설령 우주가 초월적인 신의 창조물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믿는 신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70년경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조각가였는데, 그는 아버지의 기술을 습득하여 꽤 오랫동안 이 직업에 종사했다. 어머니는 산파였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의 철학 방법을 어머니의 산파술에 비유했다. 어머니가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도록 도와준 것처럼 소크라테스도 진리의 산파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조각가의 직업을 포기하고 철학에 전념했다. 돈 버는 데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니 소크라테스에게 설거지물을 퍼부은 그의 아내 크산티페를 악처라고 비난하는 것은 결코 공평한 처사가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시장과 아테네의 경기장을 둘러싼 언덕을 집으로 생각하였다. 여기서 그는 한가하고 철학에 관심을 있는 사람들과 ‘올바른 삶’에 관해 토론을 벌였다. 소크라테스는, 먼저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나서 그 다음에 질문을 통하여 상대방을 혼란시키는 방법을 썼다.

이렇게 하여 덕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안다고 생각하는 상대방의 자만을 무너뜨렸다. 상대방은 자기의 지식이 옳지 않음을 깨닫고 ‘무지의 지’(無知의 知)에 도달하게 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깨달음이다.

고루한 아테네 시민들에게 소크라테스는 귀중한 시간을 빼앗을 뿐 아니라, 전통적으로 금기가 되어 있는 일들을 의문시하는 귀찮고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잠자는 소를 깨워 귀찮게 하는 등에(쇠파리. gadfly)에 비유하기도 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질문 속에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위대한 진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 아테네 사람들이 경배하던 신전의 신탁은 스스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고백하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인 중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전해주었다.

그렇다면 ‘무지의 자각’은 결국 지(앎)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왜 앎을 강조했으며, 그 앎을 위해 먼저 모름을 자각하라고 했을까?

소크라테스는 덕(德)과 지식을 동일시했다. 곧, 올바른 도덕적 행동은 올바른 지식을 가질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무지가 모든 악덕의 원인이라고 본 것이다.

선과 정의와 용기가 무엇인지 알면, 인간은 선하고 정의롭고 용감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한데 악행은 결국 자신을 해친다. 따라서 불의가 무엇인지 알면, 불의를 행하지 않을 것이다. 이게 소크라테스의 논리이다. 지행합일(知行合一), 지행일치(知行一致)라는 것이다. 지식과 행동은 각각 별개의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한 몸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앎과 행동은 제각각이다. 입과 손발이 다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철저하게 철학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스스로의 철학을 이론 속에서만 정립하였다. 세네카의 말처럼 옳은 길을 아는 사람이 꼭 그 길을 갈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달랐다. 그의 삶과 철학은 혼연일체로 하나였다.

소크라테스는 항상 ‘다이모니온’(Daimonion)이라는, 자신의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신성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이것은 소크라테스가 신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스스로의 양심이 신성한 행위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소크라테스의 신념을 나타내준다.

소크라테스는 때로는 신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예언술을 들먹이기도 하지만, 그의 근본 태도는 보편타당한 도덕 개념이 올리포스 신이나 다른 종교에서 찾아질 수 없다는 신념이었다. 인간의 활동과 자의식 속에서만 보편타당한 도덕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주지주의(主知主義)이다.

인류 역사 전체로 보면, 소크라테스와 비슷한 시기 기원전 551년에 공자는 노나라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이 만나거나 서신왕래를 했을 턱이 없다. 그러나 앎에 대한 생각과 지행합일과 신에 대한 태도는 같은 주장을 한다. 다음 글에서 살펴본다. <계속>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