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The paradise of the rich is made out of the hell of the poor) -빅토르 위고-

“부자 되세요”란 말이 한때는 유행했고, 아직도 덕담으로 심심찮게 쓰인다. 경제 선진국인 대한민국에서 도대체 ‘부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절대 빈곤에서는 진즉에 벗어났고, 국민 대부분은 최저문화생활을 영위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

삶에서 추구할 가치가, 행복의 원천이 ‘소비 능력’밖에 없는가? 물론 자본주의적 가치관에서는 사람을 재산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외부의 평가가 개인의 행·불행과는 별스런 상관이 없다. 나아가 부자가 서민보다 더 행복하다는 아무런 실증적 증거도 없다.

한데 왜 부자 타령일까? 일종의 권력 추구란 느낌이 든다. 행정 권력, 사법 권력, 정치 권력은 대부분에게 진입 장벽으로 애당초 막혀있다. 40대 중년이 공무원 시험을 치거나 로스쿨에 진학하기는 좀 곤란하다. 국회의원은 고사하고 기초단체의원을 꿈꾸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경제 권력에는 이론상 진입 장벽이 없다. 재벌 같은 거부(巨富)는 아닐지라도 식당 하나만 잘 운영해도 부를 축적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어느 정도 부를 가지면 이웃이나 친인척, 친구들에게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바람을 가짐직한 권력이 경제 권력이다. 하여 ‘부자 되세요’란 심층 의미는 이런 저런 아무런 힘도 없으니, 힘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돈을 버세요, 라고 받아들이면, 과잉해석일까?

부의 수준은 서민을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인들에게 이 말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차라리 이 말을 들으면 모욕으로 느낄 것이다. 그런데도 이 말이 유행한다는 건, 우리 사회가 ‘권력 지향 사회’라는 것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나아가 권력 지향 사회라는 건, 서민의 박탈감이 팽배해 있다는 방증도 되지 않을까?

무엇이든 가치를 지니려면, 그 질(質)이 높아야 함은 물론 그 양(量)도 희소해야 한다. 한 사회의 부는 한정되어 있다. 모든 부를 공평히 분배하는 ‘유토피아’가 아닌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부를 획득한 부자는 소수일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서 ‘부자 되세요’가 덕담이 됨은 건강하지 못한 사회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부자 되세요’가 참다운 덕담이 되는 사회가 있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만큼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는 사회다. 우리 사회는 이런 사회와는 거리가 먼 권력 지향 사회이다. 우리나라의 불평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상속과 연줄과 행운의 위력에 비해 개인의 노력과 능력의 힘은 보잘것없이 미약하다.

진보좌파 경제학자들(대표적으로 토마 피케티)도 불평등 그 자체는 두 번째 문제로 친다. 가장 중요한 건, 왜, 어떻게 불평등이 발생했느냐, 이다. 우리나라는 상속의 힘이 압도적이다. 오죽하면 수저계급론(Spoon Class Theory)이 서구에까지 소개되었을까?

행운은 복불복(福不福)이니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와는 상관이 없다. 서민에게 남은 것은 연줄이다. 연줄로 기득권 세력이 부를 과점하는데도, 연줄에 지독히 동정적이다. 이 연줄이 자신의 사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헛된 믿음에 ‘선망적 강자 동일시’를 한다.

이 연줄이 자신을 옭아매는 사슬임에도 구원의 동아줄로 착각한다. 그 결과로 권력이 있어야, 권력과 결탁이 있어야 사람대접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권력 지향 사회가 뿌리내렸다.

개업 상점의 화환에 달린 ‘부자 되세요’란 리본을 볼 때마다, 문득 불교 인사법인 ‘성불하세요’란 말이 떠오른다. 불자라 아니라 이 인사말을 수수한 적은 없지만, 그 의미가 참 좋아 미소를 머금는다.

보리(菩提)는 ‘깨달음’이다. 보리심(菩提心)은 ‘깨달음을 얻겠다는 마음’이다. 깨달음을 얻으면 끝이냐? 아니다. 이 깨달음으로 뭇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없애주어야 한다. 이게 부처다.

따라서 부처가 되라는 말, 곧 성불(成佛)하라는 말은 당신도 깨달음을 얻고(자리·自利), 남도 도와주라(이타·利他)는 뜻을 동시에 나타낸다. 더 바랄 게 없는 훌륭한 인사말인데, 종교성 때문에 써본 적은 없다.

‘부자 되세요’에는 자기 이익(自利)에만 머물고, 남을 도와줌利他)이 빠져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다. 그래서 공동체 정신이 희박한 각자도생의 표어 같아 심회가 씁쓸하다. 더구나 이 따위 말이 덕담이랍시고 우리 사회에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빨간불을 보는 듯해 꺼림칙하다.

왜 이런 호들갑이냐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다. 그러나 객관적 지표로 우리나라는 명실상부하게 선진국이다. 한민족 역사 이래 가장 부유하게 살고 있다. 어느 때보다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좋은 집에서 더 큰 차를 타고 산다. 한데 왜 ‘부자 되세요’ 따위가 먹히더냐 말이다. <계속>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