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서상균]

23. 문서없는 노예가 되어(12)

아래 위 두 개의 꺼지지도 않는 라디오에선 여전히 세월호와 팽목항과 촛불잔치와 유벙언일가에 대하여 떠들어대다 오늘은 몇 구의 시신을 수습했다며 느린 음악만 틀었고 대통령이 그 시각에 무얼 했는지 밝히라는 성토와 함께 정부와 부실기업의 총체적 부실이 불러온 대형 참사, 사고라기보다는 예정된 인재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총사퇴, 나아가서는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참 죽을 맛이겠네. 중앙은 물론 진도현장의 담당공무원들이. 진도의 비상대책관인 방재안전과장이나 기획감사실장은 중앙손님들 브리핑자료 만드느라 밤샘이 예사겠지.)

무려 11년 전 태풍 매미호가 송도해수욕장을 덮쳐 전국에서 가장 피해가 심한 곳으로 지목되어 모든 매스컴이 하루하루의 피해 집계와 복구사항을 보도하고 국무총리를 비롯한 중앙의 관리와 여러 정당의 대표와 국회의원, 심지어 정권실세라는 대통령의 특별보좌관들에 종교단체대표들까지 거들먹거리며 송도로 나타나 브리핑을 받고 사진을 찍고 가는 바람에 기획감사실장인 자신과 보고자 부구청장은 날마다 집에도 못 들어가고 양말도 제 때 못 갈아 신는 곤욕을 치르지 않았는가 생각하며 어쨌든 사태가 빨리 수습되고 나라가 좀 조용하면 싶었지만 야당 측에선 이 기회에 아예 정권이라도 교체하겠다는 식으로 날로 촛불집회를 부추기고 있었다.

연례행사인 장마가 그친 7월말의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태양이 고추밭을 붉게 태우면서 일주일에 두 번씩 고추를 따면 한 대여섯 근씩 나와 광복절을 지나 일주일, 처서가 되면 김장 무를 심는데 그 때쯤이면 탄저병이 돌아 고추수확이 거의 마무리가 되는데 요행으로 병을 않아도 아침저녁 날씨가 써늘해지면 고추는 거의 익지가 않기 때문이었다. 잘 하면 4,50근은 무난히 딸 고추가 겨우 35근에서 멈추었지만 열찬씨와 슬비, 정석네 김장을 하고도 좀 남을 것 같아 영아씨, 갑린씨 몫까지 합쳐 순란씨에게 열두 근을 보내기로 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면서 버려진 언덕 여기저기서 키 크고 노란 꽃이 여기저기 피었는데 그게 돼지감자 뚱딴지의 꽃이라고 했는데 이름만 보아서는 도무지 고운 구석이라고는 없는 그 꽃이 영판 해바라기처럼 아직도 뜨거운 대낮의 햇살에 녹아내리는 것을 보고 문득 반 고흐의 해바라기가 떠올라 한참이라 바라보는 열찬씨의 시야에 동그랗고 하냥 얼굴에 빛나는 눈동자가 떠올랐다.

(...아아, 순영씨!)

한동안 잊고 살았던 이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긴 적어도 2,3년은 만나지 않고 지낸 것 같았는데 바람만 설렁 불어도 해만 설핏해도 늘 생각이 떠오르는 사람, 달이 지고 눈이 오고 봄이 또 오면 못 견디게 그리운 사람, 아지랑이가 스멀대고 노을이 질 때면 눈앞이 흐릿하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람을 자신도 상대방도 참으로 잘 견뎌 온 것 같았다.

(세상 누구보다도 절실한 사람, 다시 태어나도 가질 수 없을 만큼 머나먼 사람, 그러나 절대로 잊을 수도 없고 지울 수도 없는 사람, 억지로, 억지로 잊을 만하면 또 어느 새 슬며시 다가와 웃는 사람, 그렇게 긴 세월을 보내며 <끈질긴 사랑의 노래>가 된 사람, <비오는 날의 연가>가 된 사람, 그렇게 청춘을 다 소진하고 남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후에 중병에 걸려 죽기 전에 한 번만 보려고 찾아온 사람, 그리고는 열찬씨가 9988 건강하게 살다오라고 빌어주며 떠나가던 날, 진이 다 빠져 휘청거리며 사라지던 뒷모습...)

열일곱 살의 사랑이 예순넷이 되도록 끊어지지 않는 것도 그렇지만 다가오다 멀어지다 늘 맴돌면서도 저도 단 한 순간도 미련의 끝을 놓지 않고 매달린 사람, 50년이 다 되도록 단 한 번도 마주잡은 손이 아니라 아득히 서 바라보는 눈길로 끝없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가슴앓이로 머무는 사람, 평생 갖지도 못 하지만 잊지도 못 하는 사람...

하루 종일 가슴이 먹먹한 열찬씨가 마침내 오후 내내 시 한 수를 써내고 라디오에서 프로야구가 시작되는 6시 반에야 몸을 일으켜 시 한 편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첫사랑11

볕 좋은 가을날에 널 생각한다.

봄은 유년(幼年)처럼 아득하고 여름은 천둥으로 울부짖어 젊음이 갔거니, 어느 듯 풀벌레 서러운 11월의 막바지, 오늘은 어찌 저리 하늘조차 맑은지, 바람조차 상쾌해 실연의 기억마저 단풍처럼 아롱지는지...

...널 첨 만난 건 봄날의 아지랑이와 환상(幻像), 꽃뱀처럼 어지러운 현혹(眩惑)의 환청(幻聽), 목소리도 뒷모습도 다 무지개가 되던, 나 그렇게 눈이 멀어 돌이 될 것 같았던...

그래 또 우리의 젊음은 얼마나 또 잔인했던가, 네 황홀함이 쓰나미처럼 내 가슴을 덮쳐 내 넋도 얼도 산산이 흩어져 잔영(殘影)마저 어느새 신기루가 되던 젊음의 끝자락, 그렇게 스물아홉 날의 장마가 가고 서른아홉 날의 폭염이 가고 내 젊음이 가고 우리의 가슴벌판엔 각각 다른 꽃, 열매가 맺고 아이들이 태어나 할미, 할비가 되고 머리가 하얀 민들레 되고...

열한 개의 태풍이 스치고 비끼고 부대끼며 다 지나간 늦가을, 감자도 수수도 허수아비마저 사라진 언덕에서 널 생각한다. 폐허(廢墟)의 가슴언덕에 오도카니 남은 너를 음미한다. 지난봄, 지난여름, 내 젊음은 황홀(恍惚)했거니. 나는 또다시 봄을 꿈꾸거니

...바람 좋은 오후에 널 생각한다.-

그날따라 롯데는 초장부터 헤매기 시작해 전반에 11:0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투수도 타자도 다 난조, 오늘은 최동원과 마해영이 돌아와도 못 이기겠다고 생각한 열찬씨가 밖으로 나오다 도로 들어가 등산복 잠바를 찾아 입고 나왔다. 발아래서 풀벌레가 울고 먼 곳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연달이 막 지면서 갑자기 사방이 어둑해지더니 차차 앞산의 윤곽이 떠올랐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캔 맥주 하나를 들고 온 열찬씨가 방수탁자에 앉아 멍하니 앞산을 바라보다 푸우, 한숨을 쉬었다. 스코어도 밀렸지만 그날따라 도무지 야구가 집중되지 않던 이유, 바로 순영씨의 얼굴이 떠오른 것이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야. 부족한 것 하나 없는 완벽한 아내 영순씨와 아들딸이 있고 또 쓰라린 상처로 남은 옥자씨까지 있는데 단 한 번도 다가가보지 못한 사람 손 한 번도 맞잡지 못한 순영씨는 왜 이리도 끈질기게 나를 따라오는가, 아니 안개처럼 나를 휘 감고 있는가, 때로 폭풍처럼 날 몰아치고 있는가? 사슬처럼 날 얽매고 있는가, 미늘처럼 날 놓아주지 않는 것일까, 나 또한 그에게 그런 존재일까...)

한참 상념에 빠졌는데 방안의 전화벨이 울려

“여보세요?”

영순씨라

“안자나? 이 늦은 시간에...”

“잠이 안 오네. 당신은 뭐 하는데?”

“뭐, 그냥 밖에서 바람이나 쐬고 있지.”

“그래요? 당신 지금 술 마시지?”

“응. 캔 맥주 하나?”

“당신 지금 엉뚱 생각하고 있지?”

“무슨 생각?”

“첫사랑 그 여자, 순영씨라 카던가?”

“응?”

“내가 잠이 안 오고 가슴이 답답한 거 보니 아마 그럴 것 같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 일찍 자소.”

“아, 알았어.”

(허, 참! 그 사람이...)

여자의 직감이 무섭다더니 그렇게 까지 무서울 줄이야. 결혼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껏 영순씨는 여러 번 열찬씨의 과거와 여자문제에 부딪혔지만 대범하고도 지혜롭게 잘 넘긴 편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손위동서 김해댁과 무슨 이야기 <끝에 전에 면사무소 그 아가씨>이야기가 나왔고 김해댁이 그게 무슨 재미있는 일이나 자랑거리인 것처럼, 어떻게 보면 영순씨를 놀리는 것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이야기 했을 때도

“총각 때 여자 한두 명 만난 거야 어느 남자나 다 있는 일 아닙니까?”

한마디로 잘랐고 영순씨가 어린나이에 비해 예의도 바르고 행동도 차분하고 시어머니 명촌댁과 시백모인 자신에게도 무던히 잘 대한다고 기뻐하는 큰 어머니 상남댁의 칭찬에

“야야, 우리 열찬이는 어릴 때 사주를 보니 마누라가 둘이 있을 팔자에 처복이 많다더니 니도 그렇고 옛날에 면사무소 간호원아가씨도 그렇고 진짜 복이 많구나.”

했을 때도 조용히 웃어넘기고 저녁에 부산으로 돌아와

“도대체 얼마나 소문이 나도록 연애를 했으면 집안사람들이 들으라고 말을 다 하요?”

“...”

“그 여자가 얼마나 잘 났는지 이름이라도 알고 싶지만 당신이 총각 때 저지른 일이라 그냥 넘어가지만 앞으로는 똑 바로 하소.”

“아, 알았어.”

다섯 살이나 어린 아내,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의 아내에게 쩔쩔매자

“그라고 언제든지 그 사람한테 갈려거든 간다하고 가소.”

“무슨 소리. 그 사람은 인자 다시 만날 수도 없는 먼 곳으로 갔다더라.”

“어디에?”

“독일. 파독간호원.”

“...”

그렇게 넘어가고 20년 가까이 별 풍파 없이 잘 살며 슬비가 대학생이 된 뒤 첫 번째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발간되어 출판기념회를 한 이튿날 영신씨가 전화가 와서

“언니야, 아무래도 수상하다. 책 제목이 그게 뭐야?”

“뭐, 총각 때 첫사랑이겠지.”

“첫사랑은 면사무소 간호사라 캤는데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단 말인가?”

“글쎄...”

“우리 형부 인물에 비해 끼가 많네?”

“그래. 그 놈의 세치 혓바닥에 여자들이 다 넘어간 모양이지, 나처럼 말이야.”

하고 넘어가며 저녁에 들어온 열찬씨에게

“당신, 시집에 첫사랑이 간호원아가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서?”

“응. 그렇지 뭐. 같이 문예반 하던 사람.”

“많이 예쁘나?”

“그런 편이지. 인형 같단 소리를 들었지.”

하고는 아차, 괜한 소리를 했다 싶었는데

“책 한 권을 오로지 한 여자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울 판이면 얼마나 좋아했단 말인가?”

“...”

“그래. 지금도 만나거나 연락이 되는가?”

“아니. 군에 가고 헤어졌는데 다시는 소식을 몰라.”

“참 복잡한 사람이야. 나로서는 당신 인물에 그렇게 여자들이 많다는 게 신기할 뿐이야.”

하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중학교 총동창회에서 순영씨를 만나고 오던 열찬씨가 87번 버스에서 슬비를 만나 아파트단지를 걸어오며

“이게 무슨 인연인지 몰라도 오늘 시집에 나오는 첫사랑 여자를 만났다.”

“예에?”

“하나도 안변하고 여전히 아름답더군. 부잣집에 시집을 가서 귀부인소리를 들으며 음전하게 사는 것도 참 다행이고.”

“...”

“단지 첫사랑이라도 상대가 불행하게 된 것 보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순간

“아빠!”

걸음을 멈추고 똑 바로 쳐다보던 슬비가

“그 분이랑 얼마나 깊이 사귀었는데?”

“사귀었다? 그런 게 아니라 농고생인 내가 줄곧 연애편지만 하고 여상 다니는 상대는 끝내 묵묵부답 짝사랑으로 언양바닥에 소문만 나고 헤어졌는데 내가 군에 가기 전에 제 발로 찾아와서 한번 만났지. 그런데 그 이튿날의 약속장소에 그 사람이 나오지 않아 그대로 입대했는데 휴가 중에 찾아도 연결이 되지 않고 제대하니까 시집갔다고 하더라.”

“그런 사람이 왜 아빠 앞에 나타났는데? 첫사랑은 첫사랑일 뿐이어야지. 서로 가정이 있지 않아?”

“그렇지.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애틋한 마음만 통할 뿐이지 사실은 손목도 한번 잡아보지 않았어.”

“그럼 그렇게 다시 잊어가야지.”

“그래. 니 생각에는 그렇겠지. 그런데 니도 사람을 사귀게 되고 아이를 키우면서 중년이 된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

“그건 그렇고 엄마한테는 말 안 할 거야?”

“글쎄. 현실적으로 다시 무얼 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흘러간 첫사랑인데 그럴 필요까지.”

하고 말았는데 다음 일요일 아이 둘이 다 나가고 없는 빈집에서

“당신 나 좀 봅시다.”

하고 정색을 하더니

“그래, 그 사람하고 사이에 아이는 없소?”

“그, 그 사람이라니?”

“내가 모를 줄 알고 진짜 첫사랑.”

“아, 슬비가 말했구나.”

“당신은 창피하지도 않소? 그걸 딸한테 자랑이라고 까발리게?”

“다 지나간 일인데 뭐.”

“다시 만났다는 게 문제지. 그렇게 죽고 못 살 사람을 만났으니 무슨 일이 없겠노? 그래 아이는 없소?”

“무슨 소리. 손 한번 못 잡아보고 짝사랑만 하다 말았다.”

“당장이라도 그 여자한테 갈라면 가소.”

“이 사람아,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노?”

“무슨 소리? 그럼 당신은 내가 사람 축에나 드는 줄 아요? 면사무소 아가씨는 철없던 시절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그렇게 죽고 못 살면서 나랑 결혼해 아이 낳고 살았으니 당신의 마음은 그 여자에게 다 가고 나는 당신 껍데기 하고 살았단 말이요?”

“아이다. 용호, 주원이, 원길이. 내 친구들한테 다 물어보소. 우리가 실제로 만난 일이 있는가?”

“몰라. 인제 당신 보기도 싫어.”

하고 한 동안 말도 건네지 않고 얼굴도 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아침저녁 끼니를 챙기고 와이셔츠를 빨고 바지를 다려 출근을 시키고 동장 사모님으로서 회의나 행사가 있으면 빠짐없이 참석을 하던 영순씨가 한 보름이 지나가

“당신, 진짜 당신 말한 기 다제?”

“응, 그렇다니까. 용호, 주원이, 원길이한테 물어보라니까?”

“앞으로도 계속 만날 기가?”

“우짜다가 행사 때 만나면 몰라도 일부러 만나지는 않을 작정이야.”

“왜?”

“사실 그라고 나서 두 번 더 만났는데 첫날은 서로 지내온 이야기도 하고 가족에 대해서도 묻고 했는데 두 번째부터는 딱히 할 말도 없고 그냥 밍밍하고 어색했어.”

“와? 당신 좋아하는 손더듬이 버릇을 당장 내놓지.”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 문예반 다니던 소년소녀의 순수한 첫사랑. 왜,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난 그런 건 모르겠고 내가 용호씨나 주원씨에게 물어봐도 당신은 괜찮겠나?”

“괜찮아. 내가 그 사람 좋아하긴 해도 죄가 될 만한 일은 없어.”

“알았어.”

비로소 긴 한숨을 내 쉰 영순씨가

“술을 좀 마셔서 그렇지 당신이 훌륭한 아빠나 가장이 되려고 노력한 것을 나 잘 알아. 남편으로나 사위로서도 평균점은 되고 그 사고무친의 공무원세계에서 그만한 출세를 한 것도 고맙고.”

“...”

“전에 어떤 암자에 유명한 스님이 있어 순기언니 점 보는데 따라갔는데 스님이 순기언니 점은 대충 보고 따라간 나에게 나이 40만 넘으면 아주 귀하게 될 상이라고, 남편도 자식도 다 훌륭하고 특히 노년이 아주 길고 아무 부족함이 없이 편안하게 산다고 복채도 안 주는 나를 보고 감탄을 하더구먼.”

“나는 인자 큰 발전도 없이 그냥 평범한 공무원으로 끝나겠지. 시인으로서도 크게 히트할 명작을 쓰기도 어려울 거고 단지 우리 정석이가 얼마나 큰 인물이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사실 혹시 우리 가정이 깨질까 봐 많이 떨었어. 사실 아무 것도 없이 시작한 우리가 이만하게 살기까지 당신이나 내가 얼마나 고생했어. 거기다 착하고 영리한 아이들 까지 태어나고. 난 당신을 지키고 가정을 지킬 거야.”

“그래야지.”

하고 전보다 더 극진히 남편을 챙기더니 하루는

“당신, 그 여자 이름이 순영이지?”

“그걸 우째 아는데?”

“그럼 맞다는 말이네.”

“우째 아는데? 혹시 용호나 다른 친구한테 전화 해 봤나?”

“미쳤나? 내가 그런 쪽팔리는 전화를 하게.”

하고 빙긋 웃더니

“당신이 가끔 잠꼬대를 하는 걸 들었어. 개꿈을 꾸는구나 싶었는데 이제 그 정체를 알았어.”

“여자들의 직감은 참 무서운 거로구나. 도무지 속일 수가 없겠네. 그럼 내가 그 사람 한번 만나게 해줄까?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든지?”

“싫어. 내가 왜 만나? 그렇지만 이것 하나는 약속해 줘.”

“무얼?”

“중학교 동창회 안 나가는 걸로.”

“아, 알았어.”

그리고 정말 중학교 동창회는 다시 안 나갔지만 그 후로도 영순씨가 많이 아팠을 때와 열찬씨의 정년퇴직 후를 포함해 서너 번 더 만났으니 마흔다섯에 다시 만나서 예순넷이 된 지금까지 대여섯 번 그러니까 3년에 한번, 7,8년에 한 번씩으로 대충 4년에 한번 꼴로 만난 셈이었다.

어느 설날엔가 언양에 가서 돌아오기 전 잠깐 동부리의 조용호네 모친에게 세배를 하러간 적이 있었는데 이미 용호씨의 아내와도 친한 사이가 된 영순씨가 둘이 뭐하고 속닥거리더니 열찬씨와 용호씨를 빈방으로 불러

“우리도 청문회 한번 합시다. 용호씨는 우리 열찬씨가 그 순영씨란 첫사랑하고 얼마나, 어디까지 사랑했는지 지켜보았지요?”

영순씨가 정색을 하고 묻고 용호씨의 부인이 재미있는 표정으로 올려다보는데 한참이나 이리저리 세 사람의 얼굴을 살피던 용호씨가

“기, 기억이 안 납니다!”

하고 푸훗 웃음을 터뜨리자

“야, 이건 완전히 장세동이 작전이네.”

“우리 신랑이 친구하나는 잘 두었네.”

하자

“주원이, 원길이도 같은 대답일 걸요. 요새 장세동이 답변이 대세가 아닌가요?”

하고 모든 상황이 종결된 것이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