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서상균]

23. 문서없는 노예가 되어(9)

열찬씨가 황급히 철문을 열어놓고 영순씨의 자동차가 들어올 보일러 집 아래를 멍하니 바라보다

(철마라면 한 2,30분은 걸리겠지.)

비로소 하늘을 바라보는 데 서쪽 하늘에 눈썹 같은 달이 기울고 있었다. 마침 보일러 집 라디오도

그림자 벗을 삼아 가는 길은

서산에 해가 지면 머물지만

마음에 벗을 찾아 가고 있는 나의 길은

꿈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길

방랑자여, 방랑자여 기타를 울려라

방랑자여, 방랑자여 노래를 불러라

오늘은 눈물 어린 혼자의 길이지만

먼 훗날에 우리 다시 만나리라.

박인희의 <방랑자>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처럼 아내가 오는 날 꽤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화해를 하겠다 싶어 2절이 끝나기 전에 영순씨가 도착했으면 하는데 삐익, 저녁 열시 시보가 울리면서

“국민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진도 팽목항에서는 유가족들의 눈물과 탄식 속에 다섯 명의 시신이 수습되었고 세월호의 소유주인 유병언과 일가에 대한 추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고는 바람에 전파가 흔들리는지 쉭, 쉭 소리가 한참이나 나다가 신엄마가 어떻고 김엄마가 어떻고 겨우 들릴 듯 말 듯 하던 소리가 뚝 끊기고 쉐하는 바람소리만 한참이나 들리는데 빵빵 클랙슨소리와 함께 헤드라이트 불빛이 열찬씨의 아래위를 훑더니

“추운데 마러 나와 있는데?”

“무거운 짐 받으려고.”

“오늘은 바쁘게 온다고 큰 짐도 없는데.”

하면서 비닐봉지 두어 개를 건네주고

“당신 플래시 가져오소. 우째 심었는지 봐야겠다.”

하고 어두운 밭둑에 우두커니 섰다가 플래시를 가져오자 이리저리 비추더니

“고생은 했는데 앞으로가 큰일이다. 바람에 비닐이 찢어지거나 들고일어나기도 하겠지만 구멍구멍에 잡초가 나겠네.”

“하는 수 없지. 처음은 풀을 뽑아야겠지만 고추가 자라면서 차자 잡풀을 이기겠지.”

“우리 둘이 다 성질이 급해서 큰일이다. 괜히 없는 걱정을 만들어 놨네.”

하고 방에 들어와

“아이구, 할배냄새!”

하고 앞뒤로 창문을 열고

“아아들 하고 치킨 묵던 거 가져왔는데 당신 소주 한 잔 할랑교?”

하고 책상위에 치킨과 소주잔을 놓고 직접 한잔 부어주며

“당신은 잠이 오덩교? 나는 찝찝하고 잠이 안 와서 혼이 났다.”

“당신이 동네 한가운데서 그런데 이 외진 산중에서 나는 더 했겠지.”

“하긴.”

하면서 가스렌지를 켜고 한참이나 부스럭거리더니

“콩나물국 끓여놓고 미역나물 무쳐놓고 밥도 앉혀놨으니 내일아침에 당신이 전기밥통 스위치를 넣고. 또 갈치를 가져왔는데 당신이 구울 수 없겠제? 내가 구워 놓을 테니까 전자레인지에 한 15초만 데워서 드세요.”

하고 커피를 한잔 끓여 마주 앉는지라

“잘 밤에 커피를 먹어서 잠이 오겠나?”

“내처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면 잠만 잘 온다.”

하면서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닦고 담요를 깔면서

“내 먼저 자요.”

하고 눕는데

“나도 오랜만에 마누라 옆에 누워볼까?”

열찬씨도 불을 끄고 옆에 누워

“여보, 우리 오랜만에 뽀뽀나 한번 할까?”

“오늘은 와 주딩이박치기가 아니고 뽀뽄데?”

“며칠 만에 화해했으니까?”

“마 됐소. 잠이나 자소.”

슬쩍 밀어내는가 싶더니 금방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림=서상균]

딸네 부부가 가게에 나가기 전에 아이를 받아야 된다며 이튿날 새벽에 돌아간 영순씨가 토요일 밤에 돌아와 일요일 아침부터 열찬씨가 세워둔 고춧대에 줄로 고추를 묶는데

“우리 홍여사가 오니 진도가 쑥쑥 나가네. 고추 묶는 것도 나보다 세 배는 빠르고.”

“참 재주도 매주다. 고추하나도 내가 묶으면 리본처럼 예쁜데 당신이 묶으면 헝겊쪼가리 떨어진 것 같네.”

“우리 내외는 도저히 말을 못해. 칭찬은 남이 해주는 거지 어데 지 스스로 하는 거가?”

하며 웃다

“저 닭똥거름 좀 보소. 하여간 당신이 세 치 혀로 사람은 잘 꼬시는 모양이야. 저 귀하고 비싼 닭똥을 저렇게나? 아마 구서동 밭에 저렇게 올리면 재료비에 운반비에 돈백만원은 들 낀데.”

“여기사 찻길 좋겠다. 양계장 가깝겠다. 그냥 사람하나만 좋아보여도 인사치레로 거름이 두 차지.”

“나중에 닭 집 차 지나가면 불러서 커피라도 한 잔 대접해야겠다.”

“그라든지.”

하고 모처럼 오순도순 작업을 하는데 빵빵, 클랙슨이 울리며

“할머니! 홍영순할머니!”

세 살짜리 현서가 아장아장 걸어오고

“아버님 저 왔습니다.”

김서방과 슬비와 영서도 손에 무언가를 들고 들어와

“어서 오시게.”

열찬씨내외도 일손을 놓고 나오는데

“할아버지!”

“오냐, 내 새끼!”

어릴 때 유모차를 태우고 걸음마를 가르쳐서 그런지 네 명이 손녀 중 유독 열찬씨를 잘 따르며 볼 때마다 뽀뽀세례를 퍼붓는 현서를 안아들고 탁자에 빙 둘러앉는데

“아버님, 회 좀 사왔는데 새참으로 먹지요.”

하고 늘어놓는데

“할아버지!”

언제 갔는지 저쪽 끝 토마토를 심어놓은 밭모서리에서 한손에 탁상시계를 든 현서가 열찬씨를 불러

“야, 빠르네. 언제 저게 갔노?”

열찬씨가 다가가 한참이나 놀아주고 와서 다시 작업을 시작하는데 11살 영서는 이제 다 컸다고 혼자 방안에서 꼼짝도 않고 친구 민서와 닌텐도를 하는 모양이었다. 서툰 솜씨지만 딸과 사위까지 붙어 한 시쯤 일을 마치고 나와 월내의 감자탕 집에 앉았는데

“영순아, 니는 지금 어데고?”

“와요? 언니.”

“성당 마치고 니하고 같이 너거 밭에 갈라고 했는데.”

미혜씨의 목소리였다.

“고추 묶는다고 일찍 왔는데. 언니 우짜노? 우리 저녁에 만납시다. 형부하고 식사나 하든지.”

“그 관광버스 탔는 모양이다. 오늘도 남의 아지매들 손 잡아준다고 바쁘겠지.”

“그래도 형부는 뒤끝이 깨끗한 사람이라.”

“아이구, 심심해라. 너거 밭에 쑥 뜯어서 쑥털털이 해먹으려 했는데.”

“아, 알았어요. 내 두 시간 뒤에 언니 집에 갈게요.”

점심을 먹고 따로 영서네 식구는 간절곶(串) 구경을 가고 둘이 연산동 아파트로 와서

“당신은 들어가서 야구나 보소. 난 언니하고 바람이나 쏘이다 저녁을 같이 먹든지.”

하고 헤어졌다.

영순씨와도 화해하고 윤여사도 나타나지 않아 가끔 고사리를 뜯으며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

주려 죽을 진들 채미(採薇)도 하난 것가

아무리 푸새에 것인들 뉘 땅에 낫다니

제법 지조 있는 선비나 된 듯 성삼문 시조를 읊조리는 평온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하도 바람이 세어 자꾸만 고춧대가 쓰러지고 그물이 펄렁거려 바로 세우느라 심심할 틈이 없었다. 날씨마저 가물어 물조리게로 물을 주기가 버거워 수도호스를 달고 급수를 해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 호박이 거의 다 활착을 하고 먼저 심은 감자도 순이 새파랬다. 그런데 어느 새 고추 골의 비닐구멍마다 소복하게 잡초가 올라오는데 민들레, 고들빼기, 씀바귀, 지칭개, 방가지똥, 솜방망이, 봄맞이꽃, 질경이에 억새와 등골나물, 광대수염에 밭을 일굴 때 미처 덜 파낸 클로버까지 마치 야생화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그 중에서 가장 생육이 왕성한 왕고들빼기는 동전만한 자줏빛 새순이 한 일주일만 자라면 금방 어른 손바닥보다도 넓어지며 한자도 넘는 꽃대를 뽑아 올려 이제 날만 새면 고추 골에 엎드려 잡초를 뽑으니 지나가던 기름집영감이 거 보라면서 늙은 염소처럼 턱을 쳐들며 허허 웃었다.

한번은 일요일 저녁에 영순씨에게 붙들려 부산 집에 가서 마침 토우회와 구팔회란 모임이 이틀이나 이어져 참석을 하고 한 3일 만에 돌아오니 이제 고추가 사람을 해서 방글거리며 웃는 아이처럼 활기가 찬데 땅이 박해서 그런지 어느 포기 할 것 없이 가늘고 노랗게 보이는 것이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본 남의 고추나 바로 옆 보일러집 고추보다 너무나 빈약해 보이는 것이었다. 사춘기의 아이든 밭의 작물이든 거무튀튀하고 퉁퉁무리해야 제격인데 이게 아무래도 뭔가가 부족하다. 수십 년 묵힌 생땅에 거름이나 비료도 제대로 못 주었으니 모종들인들 오죽 배고프랴 싶었다.

한참이나 숙고하던 그가 농업고등학교에 다닐 때 기억을 더듬어 웃거름을 좀 주었으면 싶어 종묘상에서 산 가축 분(糞) 퇴비 20킬로 두 개를 헐고 거기에 복합비료를 반 포대 섞었다. 너무 거름기가 강한 요소만 피하고 직접 뿌리에 닿지 않으면 무난하리라 싶어 좀 약해보이는 고추모와 토마토, 가지, 오이, 호박의 한 5센티쯤 옆을 파고 손으로 한 줌씩 고루고루 주었다. 그리고 빨리 흡수되라고 수도호스로 물도 한 번 고루 뿌리고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눈앞에 잘 익은 고추와 가지, 토마토, 오이와 호박이 뒹구는 풍요로운 황금들판이 펼쳐지며 흐뭇한 미소를 띠면서.

며칠 뒤 일요일 밭을 둘러보던 영순씨가

“여보, 이상한데. 고추 모가 시들시들 한 게 많아.”

해서 살펴보니 아뿔사, 웃거름을 준 고추 모 여럿이 새들새들 시들어가고 있었다.

“날이 가물어 그런가? 심하면 한 포트 더 사다 보식해야겠네.”

말은 그리하면서도 영순씨가 자신의 웃거름 때문에 죽는 줄 알면 또 큰 싸움이 날까봐 조마조마 하다 겨우 보내고 난 뒤 이튿날 고추밭을 둘러보던 열찬씨가 그만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새파란 초록색의 고추대궁이의 뿌리 짬에 갈색의 반점 같은 것이 올라오는 모종들이 모조리 새들새들해지는데 아무리 안 되어도 반 이상은 죽을 것 같았다. 혹시나 싶어 둘러보니 땡초와 가지, 오이 토마토도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감자까지 일부가 죽어가고 있었다.

(아이구, 망했네!)

어디서 어떻게 수습해야 될지 몰라 막걸리를 한 잔 놓고 탁자에 멍하게 앉았는데

“형님, 그 고추 모가 이상하네!”

보일러 김씨가 울타리를 돌아 휘적휘적 걸어오더니

“아이구, 우리 형님 큰일 났네. 웃거름 잘못 줬구나.”

탁자 맞은편에 앉으며 씩 웃더니

“사람 욕심은 다 마찬가지네. 나도 농사 첨 배울 때 한해농사 망쳤는데.”

하고 열찬씨와 함께 고추밭을 한 바퀴 돌며

“형님, 모두 몇 포기 심었소.”

“200포기 좀 넘지.”

“그럼 200포기 다시 사다 심지요.”

“왜? 요런 모는 괜찮은데.”

“오십 보 백 보지요. 그것도 내일이나 모래 뿌리짬에 노랗게 거름기 올라오면 끝입니다.”

“그런가?”

“완전히 다시 뽑고 새로 심는 게 옳지요.”

“종묘상에 고추 모는 있을려나?”

“아침에 올라올 때 보니 있는 것 같던데요.”

“그럼 부탁 좀 할까?”

비씨카드를 꺼내주며

“내일 올라올 때 좀 사다주소. 내 감자탕에 소주 살 게.”

해서 이튿날 고추 200포기를 비롯한 전 종목을 다시 사다 심었다. 다음 주 영순씨가 올라와서 보면 또 싸움이 날 것 같아 주말에 비가 안 오면 무슨 핑계를 대든 자신이 부산으로 나가 영순씨가 못 오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고추모를 뽑아낸 반대 쪽 거름기가 작은 쪽에다 심는데

“아이구, 이 반풍수야!”

영순씨와 함께 또 한 명의 기피인물 기름집영감이 등 뒤에 서서

“농사는 뭐 아무나 짓는 건 줄 알고.”

혀를 끌끌 차는 것이 걱정보다는 너무나 통쾌한 표정만 같아 그냥 묵묵히 일만 하는데.

“이치도 모르는 농군이 욕심은 많아서. 오리 골짝 농사꾼망신은 독으로 시키네.”

안 그래도 화가 난 열찬씨가 허리를 펴며 바라보며

“그만 가던 길이나 가시지요.”

“...”

“보자보자 하니 좀 심하시네.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것도 아니고.”

하는데 키 작은 영감이 황급히 열찬씨를 향해 입에 손가락으로 가위를 그려 보이며

“형님, 가십시다.”

해도 열찬씨의 표정에서 뭘 느낀 노인이 얼굴이 벌개지며 다가오는데

“형님 갑시다.”

“안 가!”

주춤주춤 다가오는 일촉즉발이 순간에

“아이구, 오리마을 유지영감님들이...”

여자 목소리하나가 끼어들었다. 또 하나의 기피인물 윤여사가 나타난 것이었다.

(허 참, 일이 꼬일려니 별별 사람이 다 나타나 동네망신을 당할 판이네.)

열찬씨가 혀를 차는데

“영감님들 잘 만났습니다. 안 그래도 도로개설문제 때문에 만나려 했는데.”

“뭐라고?”

“도! 로! 개! 설!”

윤여사가 귀에 바짝 대고 소리치자

“난 몰라! 돈 들어가는 건 질색이야!”

기름집노인이 맞받아치고 키 작은 영감이 중간에 들어 무어라고 셋이 주고받더니 윤여사의 자동차를 타고 부웅 떠나버렸다. 사실 눈앞에 멀쩡하게 길이 있어 자동차가 다니지만 일대가 그린벨트지역이라 도로를 내거나 집을 짓는 모든 개발행위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윤여사를 비롯한 지주들이 겉으로는 원래 전원주택을 짓고 텃밭을 가꾸는 꿈이 있었다고 했지만 대부분 언젠가 그린벨트가 해제되고 아파트든 골프장이든 무언가 들어서면 목돈을 벌려고 땅을 산 사람들이었다. 당장은 허가를 받아 제대로 집을 지을 수도 없는데 가장 중요한 원인이 바로 눈에 보이는 현황도로는 있어도 건축허가의 선결요건이 되는 법정도로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도로가 나기를 원하기는 피자일반이지만 자기시간을 쪼개어 돈 들여가며 군청이나 시청을 출입하며 도로개설을 추진할 사람이 없었는데 윤여사가 땅을 사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겉으로는 달음산조망이 좋아서 땅을 산다고 했지만 자신이 부동산중개사무소에서 일을 본적이 있을 뿐 아니라 남편이 세무공무원출신인데다 지금의 군수가 자신의 후배로서 사석에선 ‘누님, 누님’ 부르는데다 자신의 아버지가 일광면장을 지낸 후광이 있는 만큼 그까짓 건 식은 죽 먹기며 그렇게 도로만 개설되면 자기의 매실 밭 1,200평이 한 서너 배 뛰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었다. 단번에 군청의 지인을 찾아가 이미 개설된 8미터 도로에서 원룸을 지나 왼편의 고물상, 오른쪽의 플라스틱파쇄장과 좌우의 밭과 개간이 안 된 야산과 구릉지대의 모든 지주의 명단과 연락처를 빼고 회의를 소집했지만 그냥 땅만 사둔 지주들은 일을 추진하는 비용은 분담하되 시간이 없어 윤여사에게 일임한다고 하니 갑자기 호랑이에 날개를 단 형상이 되었다.

그러나 적은 가까운데 있었다. 이미 농막을 짓고 경작을 하는 기름집과 땅딸보영감의 두 노인과 배밭조사장, 케이티박사장과 젊지만 까칠한 블루베리집, 심지어 자신의 땅을 사서 온갖 짐승을 키우는 보일러 김씨와 닭모이 짬밥냄새가 난다고 만날 때 마다 면박을 주어 평소에 윤여사 앞에 슬슬 기던 양계장주인마저도 이런저런 핑계로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눈치만 슬슬 보았다. 윤여사가 이런저런 연구 끝에 그럼 몽리세대모두가 모여 큰길에서부터 도로개설 현황도로를 쭈욱 돌며 현황도 파악하고 길도 정비하자며 연락을 하고 가칭 <5리일대 도로개설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기금을 조금 조성하자며 자칭하여 임시총무를 맡았다. 언젠가는 돈이 되겠지 하고 부동산투기를 위하여 땅을 산 부자들이 골프를 치러갔으면 갔지 그런 모임에 나올 사람들이 아니라 윤여사에게 다들 회비를 내고 점심대접을 하는 바람에 윤여사가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용기백배한 윤여사가 꾀를 내어 이번에는 기장읍의 고급횟집인 선장횟집에서 자연산 회와 복국을 대접한다며 뻔질나게 전화질을 해 마음씨 좋은 배밭집 조사장과 케이티 박사장, 코가 꿰인 양계장 주인, 소음과 비산먼지로 늘 민원제기의 위협을 받는 고물상주인, 파쇄장주인이 참석하고 느지막이 기름집의 키 큰 노인과 땅딸보노인도 참석해 자신을 포함 8명이 참석해 이미 받아 놓은 회비도 있고 해서 자연산회를 넉넉히 시키고 본격적으로 추진위원장과 총무를 선출하는데 모두다 사양을 하는 바람에 졸지에 윤여사가 총무를 겸임한 추진위원장이 되고 말았다. 이제 회의가 거의 끝나고 회비를 걷을 참인데 다들 자연산이라 혀가 슬슬 녹는다고들 하는데 아까부터 회 맛이 이상하다고 무슨 냄새가 난다고 티끌을 찾던 기름집영감이

“아니, 주인장! 나 좀 봅시다!”

하고 주인을 불러 회 맛이 왜 이러냐고 이게 자연산이 맞느냐고 따지고 50대의 선장은 제가 잠을 설치며 새벽에 나가 직접 잡아온 것이라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양식이나 중국산을 슬쩍 넣지 않았다고 누가 증명하느냐고 삿대질을 해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땅딸보영감이 말려 데리고 나갔다. 결국 참석자 중에서 유일하게 회비를 내지 않은 사람이 기름집영감님이었는데 나중에 만난 윤여사가 아무리 회비납부를 졸라도 들은 척을 않았다. 마침내 윤여사가 저 고약한 영감이 자연산회는 먹고 싶고 돈은 아까워 초장에는 실컷 먹고 회비 낼 때 쯤 회 맛이 이상하다고 시비를 걸었다는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도로개설 추진위원회가 어떻게 돌아가든, 윤여사와 기름집영감이 갈등을 하든 말든 그 골치 아픈 사람들이 동시에 사라진 것만 해도 열찬씨는 속이 후련했다. 휴대폰의 일기예보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열찬씨가 금요일오후에 내일부터 한 사흘 비가 온다며 집으로 들어가고 다음 주말엔 산우회의 부부동반 등산 겸 회식이 있다고 영순씨까지 동반해 참석해서 영순씨가 모르는 사이에 새로 심은 고추와 가지와 토마토들이 모두 활착을 하는 바람에 비로소 열찬씨가 숨을 돌렸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