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21>경제성장이 의미가 있는가?㊦

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21>경제성장이 의미가 있는가?㊦

김 해창 승인 2018.03.20 00:00 의견 0

 

‘가난하지만 행복한’ 은둔의 나라 부탄 왕국. 부탄은 국민총행복(GNH) 지수를 세계에서 최초인 1972년부터 국가정책으로 활용해 왔다. 부탄의 옛 수도 푸나카에 있는 푸나카 종(Punakha Dzong). 부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다. 출처: 도용복 사라토가 회장

이정전은『우리는 행복한가-경제학자 이정전의 행복방정식』(2008)에서 “국민의 행복은 소득 순이 아니다”라고 얘기한다.

반면,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R. Easterlin)이 1974년 전 세계 30개 지역에 걸쳐 소득수준과 행복 사이의 관계에 대한 기존의 조사들을 종합 정리했다. 그 결과 거의 모든 나라 모든 지역에서 소득수준과 개인의 행복감 사이에는 정(正)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행복감도 커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득이 어느 정도 높아진 상태에서는 소득이 높아져도 그에 비례해 행복도가 높아지지 않고 정체를 보였다. 간단히 말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이 정체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경제학 교수인 아브라모비츠(M. Abramovitz)는 이를 ‘이스털린의 역설(Isterlin's Paradox)’이라고 불렀다.

또 이스털린의 연구에서는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간에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비율은 별반 차이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것이 옳다면 한 나라의 높은 경제성장 그리고 이로 인한 물질적 풍요가 그 나라 국민을 전체적으로 더 행복하게 만든다는 보장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리처드 이스털린과 ‘이스털린 역설’을 표현한 그래프. 출처: USC(남캘리포니아대학) & 유튜브.

1970년대부터 1인당 GDP의 상승이 반드시 복지수준의 향상에 공헌하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돼왔다. 여기서 NNW나 ‘녹색GDP’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지표의 개발이 시도됐다. GNP의 환경적 측면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새로운 경제지표로 녹색GDP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NNW는 Net National Welfare의 약자로 국민순복지, 국민복지지표, 후생국민소득으로 번역하는데 후생지표에 가까운 형태로 GNP를 기초로 ①개인소비 ②재정지출 ③공해방지 ④여가 등 4개 항목을 주축으로 추진되고 있다. GNP에서 공해, 방위비, 통근시간 등 복지에 관계되지 않는 항목을 삭감하고 여가, 주부노동을 가산해 화폐가치로 나타내고 있다.

녹색GDP는 경제활동이 천연자원의 소비나 환경파괴를 수반한 경우 그 가치만큼 빼고 산출한 GDP를 말한다. 석유, 석탄, 가스 등 재생불능한 자원을 소비한 경우 그 손실만큼 계산에 집어넣고 그 뒤 삼림·수자원·어자원·신선한 공기 등의 경제적 가치를 분석하여 그 피해액을 녹색GDP의 산출에 반영한다. 이들 지표는 환경 관련 정보의 통계 입수나 정확성 확보에 어려움이 있지만 1인당 GDP의 상승만이 발전의 지표는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시험이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진 지표가 GNH이다. Gross National Happiness의 약자로 ‘국민총행복’으로 번역된다. GNH는 1972년 부탄왕국이 최초로 국가 정책으로 활용해왔다. 국민 1인당 행복을 최대화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행복을 최대화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GNH는 정신면에서의 풍요로움을 ‘값’으로, 혹은 한 나라 국민의 사회문화생활을 국제사회에서 평가 비교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GDP가 특정 국가의 사회 전체의 경제적 생산 및 물질주의적인 측면만의 ‘풍요로움’에만 주목해 그 나라의 국민생활을 수치화, 결국 ‘금액’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GNH는 2년마다 한 번씩의 청취조사를 실시해 인구 67만 명 중 합계 72항목의 지표에 1인당 5시간의 면담을 행해 8000명의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수치화해 연간 변화나 지역 간 특징, 연령층의 차이를 파악한다. GNH는 심리적 행복, 건강, 교육, 문화, 환경, 커뮤니티, 좋은 통치, 생활수준, 자신의 시간 사용 방법이라는 9가지 구성요소가 있다.

GDP에서 계측되지 않는 항목의 대표적인 사례로 심리적 행복을 들 수 있다. 이 경우 플러스, 마이너스의 감정(플러스의 감정이 관용, 만족, 자애, 마이너스 감정이 분노, 불만, 질투)을 마음에 품고 있는 빈도를 지역별로 듣고, 국민의 감정을 나타내는 지도를 만든다. 어떤 지역의 어떤 입장에 있는 사람이 분노하고 있는가, 자애에 충만해 있는가를 한눈에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GNH는 뛰어난 마케팅 수법이라는 지적도 있다. 아주 보잘 것 없는 GDP의 수치를 GNH로 감추고, 부탄을 이상향으로 믿는 세계의 부유층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적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한편 반(反)성장론 가운데 성장불가론 외에 성장불능론도 있다. 성장불능론이란 경제성장의 좋고 나쁨을 떠나 도대체 이 유한한 지구에서 끊임없는 경제성장이란 그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고전파 경제학을 확립한 리카도의 장기정체이론, 맬서스의 인구론, 1972년 로마클럽보고서인 『성장의 한계』등이 이런 주장을 내용을 담고 있다.

200년 전 경제학이란 학문의 이론적 기초를 닦은 리카도와 맬서스는 영국의 비평가 토마스 칼라일이 경제학에 ‘음울한 과학(dismal science)’이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로 경제성장의 지속성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결론을 도출했다. 맬서스는『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면 대다수의 인구는 기본생계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리카도의 경제성장이론이나 맬서스의 인구론의 공통점은 경제성장의 결정적인 걸림돌이 경제 외부에 있다는 것이다. 리카도이론의 경우 경제성장의 한계는 궁극적으로 비옥한 토지 부족이라는 자연적 제약이며, 맬서스의 경우도 식량생산의 자연적 한계가 경제성장의 궁극적 제약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리카도나 맬서스의 비관론은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물질적 풍요에 의해 퇴색되어 버렸고, 기술진보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했다는 비판 앞에 무릎을 꿇게 됐다. 리카도의 뒤를 이은 고전경제학의 거두 밀(J.S.Mill)은 기술진보와 국제무역이 장기정체의 돌파구가 되어 지속적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한다는 낙관론을 폈고, 그의 이러한 경제성장 낙관론이 현대 경제학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1972년 로마클럽 보고서인『성장의 한계』는 지금 당장 인구증가와 산업생산 증가를 멈추기 위한 어떤 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21세기 초에 파멸을 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인구, 산업생산, 환경오염, 자연자원 이용, 식량생산의 다섯 가지 변수를 중심으로 방대한 범지구모형을 구축하고 전 세계적인 자료들을 입력해 컴퓨터로 인류의 미래를 점쳐 본 결과라고 한다.

이처럼 자연자원 고갈의 문제를 보는 성장옹호론자들과 성장불능론자들의 견해는 전제가 다르다. 성장옹호론자들은 자연자원과 자본 및 노동 사이의 대체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자연자원이 부족해질 때는 이를 자본이나 노동으로 대체함으로써 부족분을 메워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기술진보, 특히 자연자원을 절약하는 기술진보가 끊임없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성장불능론자들은 성장옹호론자들의 주장은 자연자원 특히 에너지자원이 풍부해서 그 가격이 매우 쌀 때나 가능한 전제들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엔트로피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거의 모든 행동은 이 지구의 엔트로피를 불가역적으로 높이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인류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경제성장을 최소한도로 줄임으로써 되도록 지구의 엔트로피를 천천히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반(反)성장론자들의 공통점은 생태계의 파괴를 최소화하고, 자연자원의 보전을 극대화하며 인구증가를 적극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소위 정상상태(steady-state)의 경제가 바로 반성장론자들이 지향하는 대표적인 모습이다. 슈마허의 ‘영속성’의 경제와 상통한다.

정상상태란 인구증가가 정지되고 기계, 기구 등 자본재의 총량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태로, 사망자의 수와 출생자의 수가 같아지고 자본재는 자연적 소모분이나 생산과정에서 소모되는 부분만 보충한다. 그렇다고 정상상태는 정체된 경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양적 팽창은 없지만 질적 향상을 추구하는 사회, 물질적으로는 더 풍부하지는 못해도 모든 사람들이 시간을 풍부하게 즐기는 사회라는 것이다.

과연 앞으로 우리사회가 비교적 안정된 ‘정상상태’를 받아들이고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성장과 반성장에 대한 이해와 함께 수용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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