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29>슈마허의 유산(前)

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29>슈마허의 유산(前)

김 해창 승인 2018.05.15 00:00 의견 0

칼 알페로비츠(왼쪽 두 번째) 미국 메릴랜드 정치경제학 교수가 슈마허의 신경제학을 강의하고 있다. 출처 : 유튜브(신경제학슈마허센터)

‘슈마허 톺아보기’도 이제는 마무리를 해야 할 시점에 왔다. 1973년 『작은 것이 아름답다』 출간 이후 슈마허는 유럽 각 도시를 돌며 강연을 많이 했다. 1977년 9월 4일 슈마허는 강연 차 스위스 국내를 기차로 이동중 심장발작으로 숨을 거둔다. 1911년 생으로 향년 67세이다.

슈마허는 특별히 제자그룹을 두지는 않았다. 그러나 슈마허 사후 그의 뜻을 이해하는 지인들이 중심이 돼 슈마허를 기념하거나 그의 업적에 영감을 받아 상호지원을 하는 큰 틀의 ‘슈마허서클’이 만들어졌다.

슈마허서클에는 슈마허가 생전에 회장을 지냈던 영국토양협회와 1966년 슈마허가 직접 창립한 중간기술개발그룹(ITDG)의 후신인 국제 NGO인 프랙티컬 액션(Practical Action)이 있고, 또한 사티쉬 쿠마르가 편집인으로 활동한 『리서전스 매거진(Resurgence Magazine)』이 있다.

또한 슈마허에 감동을 받아 1973년에 만들진 노스 웨일스의 대체기술센터, 슈마허 사후 1980년에 설립된 E.F.슈마허소사이어티의 후신인 뉴잉글랜드 소재의 신경제슈마허센터, 1986년에 설립된 신경제학재단, 1991년 설립된 영국 토트네스의 슈마허칼리지나 출판사 그린북스, 인도 농촌공동체 재활을 위한 국제NGO 지비카트러스트, 브리스톨의 슈마허연구소 등 10개 가까운 기관이 슈마허의 정신과 관계되는 수많은 사업을 추진 중이다.

먼저 영국토양협회부터 한번 살펴보자. 영국 토양협회는 1946년에 설립됐고 회원이 2만7000명이나 된다. 토양협회는 화학농업에 반대하고 지역구매와 영양에 대한 공교육, 유기농인증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1967년부터는 세계 최초로 유기농인증제를 실시해 현재 영국에서 생산되는 유기농의 80%에 인증해준다고 한다. 창립회원들도 의사, 농부, 언론인, 과학자, 엔지니어, 원예사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로 구성됐다.

그것은 이브 벨푸어의 『살아있는 토양(The Living Soil)』의 출판이 계기가 됐다. 그녀는 1943년 영국 수상을 지낸 아서 벨푸어의 질녀이다. 토양협회는 1972년 프랑스 베르사이유에서 유기농운동국제연맹(IFOAM)을 출범시키는 5개 단체 중 하나가 됐다.

토양협회는 유기농업, 유기농 식품과정, 유기농 레스토랑 및 케이터링, 유기어업, 유기섬유 및 가죽, 유기 화장품 등 다양한 분야의 유기능인증 활동을 한다. 2006년에는 글로벌유기섬유기준(GOTS)을 개발했고 전 세계 55개국 3000개 기업에서 이 인증을 사용한다고 한다. 슈마허는 이브 벨푸어의 권유로 토양협회에 가입했고, 1970년에는 회장을 맡기도 했다.

프랙티컬 액션(Practical Action)은 슈마허가 설립한 중간기술개발그룹의 후신이다. 이 단체는 영국에 등록된 개발지원단체로 페루, 볼리비아, 케냐, 수단, 짐바브웨, 방글라데시, 네팔 등 라틴아메리카, 동아프리카, 서아프리카 그리고 서아시아 등 개도국을 직접 지원한다.

이러한 나라에서 프랙티컬 액션은 가난한 공동체에 재생가능에너지, 식량생산, 농업, 관개, 위생, 소기업 개발, 건축 및 주거, 기후변화 적응 및 재해위험 저감에 필요한 적정기술 개발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프랙티컬 액션의 현장 경험에서 얻은 교훈은 상담서비스, 출판, 교육자원, 국제기술공유 등으로 활용된다.

1965년 슈마허에 의해 제창에 따라 1966년 설립된 이래 전신인 중간기술개발그룹(ITDG)은 철저하게 개도국 인민의 요구와 보유기술에 근거한 중간기술을 중시한 방침에 따라 행동해왔다. 지금 프랙티컬 액션은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기구로 성장했으며 전 세계에 7개 지역사무소를 통해 100개의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2005년 7월 중간기술개발그룹은 프랙티컬 액션으로 이름을 바꿔 활동해오다 2008년으로 법적으로 명칭변경 절차를 밟았다.

프랙티컬 액션의 국제적인 목표는 △에너지 보급-현대 에너지서비스에 대한 지속가능한 보급 △식량과 농업-식량안정 및 빈민구제를 위한 농업 및 자원관리의 지속가능한 시스템 구축 △도시 물과 쓰레기-음용수, 빈민을 위한 위생 및 쓰레기 서비스의 향상 △재해위험감소-한계 그룹 및 지역공체의 재해위험 감소 노력 등이 그것이다.

『리서전스&이콜러지스트(Resurgence & Ecologist)』는 운동, 철학, 예술, 윤리적 삶 등 환경문제 이슈를 다루는 영국의 격월간지이다. 리서전스지는 1966년에 존 팝워스(John Papworth)에 의해 설립돼 영국의 녹색운동을 이끌어왔는데 사티쉬 쿠마르 등이 편집활동에 줄곧 관여해오면서 슈마허의 글을 많이 실었다.

특히 이반 일리치(Ivan Illich), 데오도르 로작(Theodore Roszak),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 웬델 베리(Wendell Berry),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 달라이 라마(Dalai Lama) 등 당대의 지성인의 글을 많이 실었다. 리서전스지는 온라인으로 발간되던 『더 이콜러지스트(The Ecologist)』와 2012년 통합해 『리서전스&이콜러지스트』 지를 발간하고 있다. 재단은 ‘리서전스 트러스트’이다.

실질적인 슈마허서클의 중심은 E.F.슈마허소사이어티의 후신인 신경제학슈마허센터(The Schumacher Center for a New Economics)라 할 수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그레이트 베링턴에 있는 NPO인 슈마허센터가 지향하는 것은 ‘신경제’이다. 이 개념은 지역, 지역통화, 자급자족을 포함해 지역, 국가, 국제적 차원의 이론적 연구와 실질적 적용의 통합을 지향한다.

전신인 E.F.슈마허소사이어티는 슈마허 사후 3년인 1980년 로버트 스완(Robert Swann)과 수잔 위트(Susan Witt)에 의해 설립됐다. 목적은 슈마허의 개인적 도서를 보존하고 지역을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지향하는 경제학을 개발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1981년부터는 슈마허의 뜻을 펴는 연례 강좌를 개최하고 있다.

슈마허도서관은 1990년 대안경제학연구센터로 설립된 뒤 1994년 아내 베레니 슈마허(Vreni Schumacher)가 슈마허의 책을 기증해 약 1만5천권의 장서를 갖게 됐다. 2010년 E.F. 슈마허소사이어티가 신경제학슈마허센터로 이름이 바뀌었다. 신경제학재단과 더불어 신경제학연구소라고 불리는 새로운 조직이 탄생했다. 2013년 신경제학연구소는 신경제네트워크와 통합해 신경제통합이 됐다.

슈마허센터는 미국의 대표적인 지역화폐인 버크세어스(BerkShares) 유통을 지원했다. 버크세어스는 매사추세츠 버크시어(Berkshire)지역의 지역화폐로 2007년에 80만 버크세어가 유통됐다. 뉴욕타임스가 이 프로그램을 대단한 사회경제적 실험이라고 칭했을 정도이다. 또한 1981년부터 92년까지 지역 마이크로크레딧사업도 전개했다. E.F.슈마허소사이어티의 설립자인 로버트 스완은 1980년 서던 벅크시어스에 커뮤니티 랜드 트르스트(Community Land Trust)를 설립하는 데 기술적 조언을 했다.

대체기술센터는 1973년 제라드 모건 그렌빌(Gerard Morgan-Grenville)에 의해 설립된 영국 웨일즈 중부 포이즈에 있는 환경보호활동 관련 종합시설이다. 대학원과정, 단기학습과정, 시민에 대한 정보공해, 계발, 재생가능에너지, 지속가능건축, 유기농법, 환경친화적 생활에 관한 출판 등을 한다.

2007년에 환경과학 대학원과정이 개설됐고, 2008년 건축 전문학위 과정을 개설했고, 2010년 웨일즈 지속가능교육기관(Wales Institute for Sustainable Education;WISE)을 개설했다. 이곳 시설은 수력케이블카, 태양광발전, 수력발전, 풍력발전, 저에너지 하우스, 재생가능에너지, 유기농법, 스트로베일 건축, 채식주의 레스토랑 등이 있다. 2010년 가디언지가 톱10건축 4위로 뽑았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주창한 슈마허의 ‘작은 씨앗’이 지구촌 곳곳에 퍼져 대안의 아름다운 꽃들을 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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