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54) 먼저 인간이 되어야지, 인간이 되지 못한 자가 학문을 하면 어찌 되겠는가?
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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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2 17:30 | 최종 수정 2021.02.2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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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 - 먼저 인간이 되어야지, 인간이 되지 못한 자가 학문을 하면 어찌 되겠는가?
마음가짐을 깨끗이 하고 나서 비로소 책을 읽고 옛것을 배워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한 가지 착한 일을 보면 그것을 훔쳐 사욕을 채울 것이고
한 가지 착한 말을 들으면 그것을 빌려 자기 약점을 덮을 것이니
이것은 바로 적에게 무기를 빌려 주는 것이며 도둑에게 양식을 주는 것과 같다.
- 心地(심지) : 마음가짐, 마음바탕, 마음씀씀이.
- 乾淨(건정) : 깨끗하게 함, 잡념을 버리고 마음을 무욕(無慾)의 상태로 만듦.
- 方(방) : 비로소, 바야흐로. 시간부사로 쓰인 것이다.
- 竊(절) : 훔치다, 도둑질하다.
- 濟私(제사) : 사욕을 채움. 濟는 일반적으로 ‘건지다(救濟하다)’ 의 뜻으로 쓰이나 여기서는 ‘더하다(이루다)’ 의 뜻으로 해석한다.
- 假(가) : 빌리다. 假는 借(차)와 같음.
- 覆短(복단) : 단점(잘못)을 덮어서 가림. 覆은 ‘뒤집어엎다’ 의 뜻.
- 藉寇兵(자구병) 齎盜糧(재도량) : 적에게 무기를 빌려 주고 도둑에게 양식을 주는 것과 같은 이적행위(利敵行爲)를 말함.
- 藉(자) : 빌리다, 빌려주다. ‘빌려주다’ 의 의미는 ‘도울 助(조)’ 와 같은 뜻이다.
- 寇(구) ; 떼로 몰려 다니며 약탈을 일삼는 무리. 왜구(倭寇)
- 兵(병) : 병기, 무기
- 齎(재) : 주다, 보내다, 가져오다, 가져가다.
- 粮(량) : 식량(食糧). 粮은 糧과 동자.
- 『釋氏要覽(석씨요람)』에 ‘중생의 마음은 대지와 같다. (衆生之心若猶大地)’ 라는 말이 보인다. 즉 마음이 여러 가지 번뇌를 만들어 내는 것이 마치 땅이 수많은 곡식을 길러내는 것에 비유하여 ‘心地’ 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이다.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은 글
이 장을 읽으면 왜 세상에 곡학아세(曲學阿世) 하는 무리들이 끊임없이 생기는지 그 이유를 확연히 알 수 있다. 먼저 인간이 되지 못한 자가 학문을 하면 어찌 되는지 필자는 그 위험성과 해독성을 경고하고 있다.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출전에 대하여
『사기(史記)』 「유림열전(儒林列傳)」에서 유래하는 말이다.
중국 전한(前漢)의 효경제(孝景帝)는 즉위하자마자 천하의 어진 선비들을 구했는데, 제일 먼저 원고생(轅固生)을 불러 박사(博士)의 벼슬을 주었다. 그는 강직한 성품으로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언을 서슴지 않는 인물이었다. 산동 시골 출신에다가 아흔에 가까운 고령의 원고생을 등용하는 것에 대해 젊은 학자들의 중상모략이 있었지만, 효경제는 그를 곁에 두었고 원고생은 소임을 다하고 병으로 사퇴했다.
무제(武帝)가 즉위하여 그를 다시 불렀을 때, 함께 등용된 인물 중에 공손홍(公孫弘)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 역시 원고생을 시골 늙은이로 깔보고 무시했다. 그러나 원고생은 불쾌해하지 않고 공손홍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즘 들어 학문이 정도(正道)를 잃고 속설(俗說)로만 흐르고 있으니 실로 걱정스럽네. 이런 유행이 계속된다면 학문의 전통이 어디 올바르게 후대에 전해지겠는가. 다행히도 자네는 젊을 뿐 아니라 학문을 남달리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고 있네. 그러니 부디 바른 학문을 제대로 열심히 익혀 세상에 널리 전하도록 하게나. 결코 ‘바른 학문을 굽혀 세상 속물들에게 아첨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야.”
務正學以言(무정학이언) 無曲學以阿世(무곡학이아세)
이 말을 들은 공손홍은 자신의 무례함을 부끄러워하며 용서를 구하고 그의 제자가 되었고 훗날 원고생의 뒤를 이어 군주의 신임을 받는 신하가 되었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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