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비 시신, 임시 안치 없이 두 번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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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10:53 | 최종 수정 2018.07.2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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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다 박사, 공주박물관 무령왕릉 심포지엄서 주장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백제 무령왕비 장례 과정에서 시신을 빈전(殯殿·왕이나 왕비 관을 모시던 전각)에 임시 안치한 뒤 왕릉에 모신 것이 아니라 두 차례 매장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나다 나쓰코(稻田奈津子) 일본 도쿄대 박사는 국립공주박물관이 2021년 개최할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특별전을 앞두고 지난 20일 '무령왕릉 지석의 새로운 해석'을 주제로 연 학술심포지엄에서 학계 통설인 무령왕비 시신 빈전 안치설에 대해 반론을 펼쳤다.
공주 무령왕릉에서는 고분 주인공을 알려주는 무령왕과 왕비 지석이 나왔는데, 중국 지석과 비교하면 간략한 서술이 특징이다. 지석에 따르면 523년 5월 7일 세상을 떠난 무령왕은 525년 8월 12일 안장됐고, 왕비는 526년 12월 사망해 529년 2월 20일 무덤에 묻혔다.
이나다 박사는 무령왕비 시신을 바로 묻지 않고 공산성 서쪽 정지산 유적(사적 제474호)에 있던 빈전에 27개월간 두었다는 견해의 근거로 제시되는 왕비 지석 문구 중 '거상재유지'(居喪在酉地)와 '개장환대묘'(改葬還大墓)를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먼저 학계에서 '거상재유지'는 "서쪽(酉) 방향 토지에 빈전을 만들고 왕비의 관을 안치했다", '개장환대묘'는 "빈전에서 안치를 끝낸 후 정식으로 왕묘로 옮겼다"로 이해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거상'(居喪)은 예기(禮記)나 중국 묘지(墓誌) 용례에서 유족의 상(喪)을 뜻하는 말로 '거상재유지'는 빈전 안치설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밝힌 뒤 '개장'(改葬)이라는 말이 중국 묘지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됐는지 분석했다.
이나다 박사는 "중국 묘지 중에 사저나 빈전에서 관을 이동시키는 것을 '개장'이라고 표현한 사례는 없다"며 "중국 사례를 참고하면 무령왕비는 왕릉 부근에 임시 매장했다가 후일 '개장'으로 합장했을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왕비의 죽음에서 매장까지 기간이 27개월이라는 점은 무령왕도 죽음에서 매장까지 동일한 기간이 소요돼 빈전 안치설의 근거가 될 수 없다"며 "'개장'은 이미 장례를 마치고 임시 매장됐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무령왕비는 땅속에 두 번 매장됐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발표에서 일본에서 출토된 7∼8세기 묘지가 부여 왕흥사지와 익산 미륵사지에서 나온 사리장엄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정지산 유적을 빈전이 아닌 군사시설로 볼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 이병호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장은 토론자로 참가해 "유교 장례가 발달한 조선에서는 국왕이 이동하기 편리한 왕궁에 빈전과 의려(倚廬·상주가 상중에 거처하는 곳)를 뒀는데, 백제는 이러한 시설을 왕궁과 떨어진 공간에 설치했을지 의문이 든다"며 "왕과 왕비 매장 절차 동일성 여부도 고민해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무령왕릉 동경(銅鏡)과 지석으로 살펴본 도교 영향, 6세기 백제 역법(曆法) 고찰, 무령왕과 왕비 지석 글자 판독에 대한 주제 발표도 진행됐다.
정재윤 공주대 교수는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지석은 무덤 주인공과 축조 시기를 알려줘 그 의미와 가치를 더했다"며 "지석을 통해 죽은 이의 취향과 당시 문화를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국립공주박물관 관계자는 "무령왕릉 출토 지석과 진묘수(석수)를 최근 우리 박물관 대표 브랜드로 선정했다"며 "오는 12월에는 진묘수 특집전을 개최할 것"이라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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