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서평 - 돈의 철학

저자 : 임석민
서평자 : 노정란 명지대학교 미래융합경영학과 교수, 성균관대학교 박사(정보학)
돈에 대한 불편함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인저리타임 승인 2020.08.19 23:08 | 최종 수정 2020.08.19 23:19 의견 0
'돈의 철학' 표지

“우리의 무의식 세계에는 ‘돈은 나쁜 것’이라는 관념이 자리잡아 많은 사람들이 돈을 혐오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런 혐오는 위선일 뿐이다. 돈은 인간의 욕망 추구에 필요한 자원이며 행복의 중요한 촉매제이다. 돈은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강력한 원동력이다. (중략) 돈을 천하게 여기는 유교, 불교,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우리 사회도 돈에 대해 이중감정을 갖고 있다.” (p. 54~55)

돈은 가장 세속적이며, 가장 대중적인 주제이면서 인간관계를 지배하고, 세상을 지배한다. 돈은 교환의 매개수단으로 발명되었는데, 게오르그 짐멜이 ‘수단이 목적으로 상승한 가장 완벽한 예가 돈’이라고 규정한 것이나, 파스칼 브뤼크네르가 ‘돈은 보편적 부패이고 광기이다. 그러나 돈 없이 살기를 바라는 것이 더 큰 광기다.’라고 고민한 것처럼 돈은 인간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실로 막대하다. 인간은 삶과 영혼이 돈에 종속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돈의 감옥에 갇혀 행복과 불행, 희망과 절망, 영광과 치욕을 돈에 맡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돈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문제보다 ‘돈은 어떻게 벌 것인가’ 또는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문제에 보다 더 집중한다. 현대사회에서 돈은 가장 중대하게 다루어지는 주제의 하나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돈에 대해 탐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돈의 문제, 가장 물질적인 요소를 내포하는 돈의 문제와 인간 본연의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철학’을 연결시키는 것 그 자체가 무리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철저히 지배하는 이 ‘돈의 문제’야말로 진지하게 철학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과제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돈’을 발명한 시기를 보면, 이 지구상에서 500만년 이상의 인류의 긴 여정으로 볼 때 최근의 일이다. 그리고 ‘돈’이 그 경제적 의미를 본질적으로 발견하기 시작한 것은 200~300년 전으로 극히 최근의 일인 것이다. 20세기 들어서서 돈의 의미는 더욱 심오하게 변화하여 왔다. 돈의 가장 큰 의미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물질, 서비스는 물론이고 형이상학적 가치까지도 계량화하고 객관화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그 가치의 판단은 인간 스스로 내린 것이지만 대다수 인간이 그 가치 수준 평가에 동의하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돈의 의미는 매우 철학적이다.

돈의 철학을 논하는 저서는 그리 많지 않은 가운데 이 책은 역사, 철학, 종교 등 광범위한 주제 속에서 돈에 얽힌 인간의 다양한 삶을 다룸으로써 지적인 재미와 사유의 공간을 제공한다. 1부에서는 돈의 실제와 본질을 다루기 위해 돈이란 무엇이며, 돈을 어떻게 벌고 쓸 것인지, 천(千)의 얼굴을 가진 돈을 이야기한다. 세상사 모두가 돈으로 얽히고 귀결된다는 불편한 문제를 마르탱 나으리(푸줏간에서 배달을 하던 ‘르 갈뢰’(불어로 더러운 아이란 뜻)란 별명으로 불리던 거지아이가 돈을 모아 고리대금업을 시작하여 돈을 모으게 되자 별명이 성이 되고, 더 부유해지자 ‘마르탱씨’로 불리고, 재력가가 되자 ‘마르탱님’으로, 마침내 그 도시의 제일 부자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마르탱 나으리’라 부르며 칭송해 마지않았다는 스토리)에 관한 짧은 이야기, ‘위대한 개츠비’에서 사랑을 얻기 위해 돈을 모으고 죽음을 불사한 개츠비와 그의 영원한 사랑인 데이지와 얽힌 이야기 등 수많은 이야기로 재미와 감동을 주며 풀어 간다.

2부에서는 인간의 부귀영화와 희노애락, 흥망성쇠가 돈으로 연결되고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돈에 대하여 가난, 검약, 부자, 사치, 부패, 횡재, 도박, 유산, 자선이라는 9개 측면으로 나누어 평면적으로 조감한다. 가난에 대한 갖가지 경구에서부터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재계의 도코 도시오 회장의 검약한 삶 이야기, 사치의 근원에는 실상 인간들이 항상 타인의 눈을 의식하며 남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를 의식하는 ‘남들의 독재’에 사로잡힌 모습이 있다는 이야기 등 이쯤에서 독자들은 30여 년간 세상과 사물에 대한 안목을 끊임없이 넓혀 온 저자로부터 돈에 대한 통찰적 식견을 넘겨받는 지경에 도달하게 된다.

3부에서는 돈과 삶에 대한 저자의 지혜가 실리기 시작한다. ‘인간은 욕망이다’라고 규정한 블레즈 파스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욕망은 인간 내면의 본원이자 동기, 성장과 발전을 촉진한다. 돈이 인간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순간부터 돈의 소유에 대한 욕망은 그칠 수 없이 달리는 수레바퀴이며, 욕망에 대한 개인적 성찰을 통해 조절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 삶의 목표는 행복의 추구이며, 행복이 욕망을 충족하는 것이라면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가? 아닌가? 내 자신으로 향하는 질문은 다시 이어진다.

그간의 많은 다른 저작과 다르게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더 보고 싶었던 것은 ‘모든 가치를 인간 스스로 계량화·객관화한 ‘돈’ 그 자체에 대한 보다 본원적 철학’이었다. 저자의 표현대로 결국 이 책은 여타 인생관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책처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주제로 책을 마감하고 있다. 돈이라는 존재 자체에 좀 더 집중하고 돈이 갖고 있는 본질적 요소에 좀 더 깊이 파고들어가 거기서 필연적으로 던져질 인간의 속성 문제를 추구하는 요소가 가미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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