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서평 - 자연에 대한 존중
저자 : 폴 W. 테일러
서평자 : 이재영(공주대학교 환경교육과 교수, 오하이오주립대학교 환경교육 박사)
자연을 존중하는 새로운 인류와 문명을 기다리며
인저리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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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2 22:32 | 최종 수정 2020.07.22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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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명 중심 관점을 받아들일 때, 그리고 우리가 그 관점에서 자연계와 생명을 볼 때, 우리는 각 생명체의 매순간 존재를 예리하고 명확하게 인식한다. 특정 유기체에 주의를 집중하면 우리가 개체로서 그 유기체와 공유하고 있는 어떤 특징이 드러난다.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생명체도 목적론적 삶의 중심이다. 그들의 행동과 내적 과정은 그들의 선의 실현을 중심으로 어떤 경향성을 끊임없이 형성한다.” (p. 163)
사스, 메르스, 조류독감, 에볼라 등을 거치고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이런 인수공통감염병이 연달아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해 한다. 현재까지 관련 분야 연구자들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생태계 파괴,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기후변화, 육식소비 증가에 따른 공장식 축산, 여전히 뿌리 뽑히지 않고 있는 야생동물 밀렵과 밀거래 등 네 가지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런 늪과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폴 테일러가 쓴 이 책은 기존의 개체중심적이고 공리주의적인 환경윤리로부터 ‘생명중심적 환경윤리’를 향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따라서 지금부터 약 35년 전인 1986년에 출간되었지만, 자연을 상품생산의 원료로 혹은 폐기물 처분장으로만 인식하게 만든 산업문명의 끝자락에 서 있는 우리가 지금 꼭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응용윤리의 한 분야로서 환경윤리가 태동한 것은 197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피터 싱어를 비롯하여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동물권이나 동물복지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공감을 얻기 시작했고, 탐 리건처럼 도덕 주체의 범위를 포유류 너머까지 확대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때까지의 환경윤리 논의는 기본적으로 인간중심적 확대주의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참거짓을 판단하는 이성이든 고통을 느끼는 능력(sentience)이던 인간이 갖고 있는 어떤 속성을 공유하는 다른 생물에게만 제한적으로 도덕 주체로서의 지위를 인정하는 방식이었고, 그런 주장에는 항상 누구까지를 그런 주체로 인정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따라다녔다. 환경윤리를 둘러싼 토론이 그렇게 합리적인 경계 설정에 갇혀 있을 때, 폴 테일러는 모든 생명체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고 도덕적 주체로서의 지위를 갖는 데 있어 ‘살아있다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떤 조건도 필요하지 않다’는 과감하고 획기적인 주장을 제기하였다.
테일러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아마 그가 규범적이고 선언적인 주장을 열거하는 데 멈추지 않고 복잡한 현실 문제 상황에 적용할 실천 원칙을 제시하려고 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는 모든 생물에게 도덕 주체로서의 지위를 부여할 경우, 복잡한 이해 상충 혹은 도덕적 딜레마 상황이 발생한다는 점을 인식하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하였다. 1) 자기방어의 원칙, 2) 균형의 원칙, 3) 최소 잘못의 원칙, 4) 분배적 정의의 원칙, 5) 보상적 정의의 원칙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인정하고 있듯이 현실 세계의 환경윤리 문제는 이런 원칙을 꼼꼼하고 체계적으로 적용하면 모두 해결될 만큼 간단하지는 않다. 그래서 ‘생명에의 경외’를 강조한 슈바이처처럼, 그리고 법전에 의존하는 미숙하고 경직된 판사들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원칙이나 기준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것보다 시민들에게 ‘자연을 존중하는 태도’를 깊이 내면화하도록 환경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더 나을 지도 모른다.
오늘의 상식이 내일의 몰상식이 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약 30년 전만 해도 버스나 비행기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1995년 9월 1일 대중교통에서 흡연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한 「국민건강증진법」이 제정되면서 불법행위가 되었고, 이제는 불법인 것은 물론이고 그 사람의 인성 자체를 의심하게 하는 몰상식한 행위가 되었다. 지금도 고급 횟집에 가면 살아있는 채로 상 위에 올라온 물고기와 눈을 마주칠 때가 있고, 투명한 뚜껑너머 해물탕 냄비 안에서 꿈틀거리며 익어가는 낙지의 모습을 보며 몸서리를 치는 아이를 만날 때가 있다.
2019년 1월 스위스는 「동물보호법」을 개정하여 게, 새우, 바닷가재 등 갑각류를 끓는 물에 산 채로 넣어서 요리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일련의 과학실험과 연구 결과는 이들이 고통을 느끼고 일관되게 회피 행동을 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불가피하지 않은 고통을 가하는 것은 더 이상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음을 법적으로 명시한 셈이다. 과학연구가 법을 바꾸고, 법이 새로운 실천윤리적 기준을 제시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스위스의 「동물보호법」처럼 우리나라에서 법으로 이런 행위를 금지한다면 시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안데스 산맥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파차마마(Pachamama)라고 불리는 어머니 신을 믿으며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중시한다고 한다. 볼리비아는 2011년 「어머니지구법」으로 제정하면서 유전적으로 조작당하지 않을 권리를 포함하여 ‘자연의 권리’를 보장하는 11개의 항목을 규정하였다. 제주 사람들이 한라산에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는 이유는 제주도를 만든 설문대할망의 가슴에 못을 박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얘기가 그저 미신처럼 들리는가?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에게 22세기가 있을지를 걱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도 자연존중에 기반한 새로운 생태문명으로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회자되는 4차 산업혁명도 자연과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인류의 종말을 더욱 앞당기는 방아쇠에 불과할 것이다.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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