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을 지배하는 일은 그들과 완전히 다른 서양인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다.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서로 비슷하다면 이런 어려움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이 한국인을 지배하는 건, 서양인이 동양인을 지배하는 것만큼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1909년 10월 30일) (p. 94~95)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해외 식민지들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식민지 국민들이 자기들을 끝없이 싫어하는 상황도 해외 영토를 포기한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p. 97)
위의 글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며칠 뒤,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기사를 먼저 인용한 후, 쓴 저자의 해설 일부이다. 원래 이토 히로부미를 애도하는 취지로 쓴 기사에서, 일본인이 한국인을 지배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을 『이코노미스트』는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는 『이코노미스트』에 실려 있는 조선 관련 기록과 함께 저자의 해설을 실은 책이다. 무엇보다 한국 근대사의 주요 내용을 당대의 잡지 기록에서 찾고자 한 발상이 돋보인다. 저자는 『이코노미스트』가 1843년 창간되어 현재까지 발간을 이어올 정도로, 유서 깊은 잡지임에 착안하여, 19세기 중·후반 근대 격동의 시기, 조선의 모습도 이 잡지에 실려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리고 이 잡지를 구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이코노미스트』의 원본 내용을 접하였고, 『이코노미스트』에 소개된 조선 관련 기사의 내용과 함께 이에 대한 해설을 모아 책으로 담았다.
제1장, 조선의 개항, 제2장, 서구 제국주의, 제3장, 조선의 경제, 제4장, 청나라와 조선, 제5장, 러시아와 조선, 제6장, 한일 합방으로 장을 구분하여, 당시 조선을 압박했던 서구, 청나라, 러시아, 일본 등의 외세가 조선에 미친 영향력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이코노미스트』에서는 1894년, 조선에서 발발한 청일전쟁을 ‘Korean War’라고 하고 일본군의 승리를 예견한 점도 주목한다. “일본인들은 친우들의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일본군을 목격한 사람들은 장비와 조직의 정밀함을 언급하였으며, 함대의 상태도 최상인 점에 주목했다. 이들은 일본군이 전장에서 압도할 것이라고 장담하며, 두 나라가 맞붙는다면 승리는 일본에 돌아갈 거라고 예견했다.”는 기사를 실은 다음 『이코노미스트』는 청일전쟁이 결코 영국에 손해가 아니며,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이익을 주는 전쟁으로 파악하였다. 영국에서 조선에 벌어진 전쟁에 자국의 이익 여부를 판단할 만큼,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시대의 동아시아는 국제 세력의 각축장이 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1899년 11월 18일 『이코노미스트』는 ‘극동지역으로부터의 소문’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러시아는 일본과의 전쟁 발발을 가급적 지연시키려고 한다. 유럽의 무기를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겨줄 철도는 완공까지 3년은 남았고, 완성이 되더라도 제대로 된 수송을 하려면 1년의 기간이 더 필요한 것이다.”는 기사를 인용하면서, 저자는 『이코노미스트』가 두 나라의 전쟁을 예측한 점을 평가하고 있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을 당한 이후의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을사보호조약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역할은 한국 애국자의 분개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그동안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려고 계속 시도했다. 이번이 3번째 시도였다.”고 하여 비교적 담담하게 당시의 상황을 전하고 있음이 보인다. 저자는 1870년대부터 1910년까지 『이코노미스트』에서 한국인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점이나 일본이 명성황후를 살해한 을미사변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코노미스트』의 자료적 한계성도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한국 근대사에 대해서는 많은 개설서들이 나와 있지만, 『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는 서구 언론의 눈에 비친 조선 관련 기사를 뽑아 해설을 가하는, 보다 창의적인 방식으로 근대사의 흐름을 소개한 책인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당대 서구인들의 눈에 비친 조선 관련 사료가 비교적 체계적으로 남아 있는 『이코노미스트』를 바탕으로, 일차 사료의 생동감을 전달했다는 것과 한국 근대사 이해의 폭을 넓힌 것은 이 책이 지닌 중요한 미덕이다.
그러나 저자가 서문에서 “『이코노미스트』의 조선이야기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 국제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많이 나온다. 이것도 조선에 대한 독자적인 기사라기보다는 일본, 중국, 러시아와 관련되어서 나오는 기사이다. 이 당시 국제 사회는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해 관심이 거의 없었다.(p. 21)”고 지적한 것처럼 당시 조선의 외교 관계가 매우 열악했다는 점과 따라서 『이코노미스트』의 사료적 가치 또한 제한되어 있다는 점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구한말 3대 문장가 가운데 한 명인 매천 황현(黃玹)이 1864년(고종 1년)부터 1910년(순종 4년)까지 47년간의 역사를 비판적 지식인의 관점에서 서술한 책, 『매천야록』은 조선 내부의 상황과 열강의 침략 과정이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 책을 『매천야록』의 내용과 비교하며 읽어볼 것을 권한다.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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