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서평 - 세계 속의 한국, 한국인
편·저자 : 차윤
서평자 : 현진권(국회도서관장)
열린 국가만이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인저리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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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9 11:46 | 최종 수정 2020.07.19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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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우리 가족, 우리 민족, 우리나라 등 우리의 유익만 구하는 가치관, 생활태도에서 벗어나, 이제는 남의 기분, 남의 편의, 남의 안녕 등 남을 앞세울 때 오히려 우리에게 유익이 돌아오는 오묘한 진리를,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르치고 보여 줘야 한다는 것이다.” (p. 16)
이 책은 저자가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하면서 연재한 글을 모아놓은 에세이집이다. 한국인의 의식과 생활을 국제적인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애정을 갖고 한국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시해 준다.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하나의 주제의식을 갖고 편집된 것이 특징이다.
우리의 심성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는 아마 ‘정’일 것이다. 실제로 한국인은 정이 많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또 이웃에 대한 따뜻한 정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머물렀던 외국인 중에 처음엔 한국을 좋아하지 않았던 외국인도 시간이 지난 뒤 한국을 그리워한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이 ‘정’은 한국인의 고유특성이면서, 국제적 경쟁력이 될 수 있다.
다만 한국인은 ‘정’이 많지만, ‘개인’에 대한 개념이 약하다. 반면 선진국 국민들은 ‘개인’에 대한 개념이 투철하고, 이에 파생해 독립심도 강하다. 개인의 가치를 강조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정’에 대한 개념이 약해진 거다. 그래서 한국인이 보기에 선진국에는 유독 ‘정 떨어지는 사람’이 많다. 문제는 국제사회의 질서와 도덕에선 정보다는 개인의 가치를 더 강조하고 있고, 이 같은 문화가 국제사회를 이끌어가는 규범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은 개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세상의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세상의 변화를 무시하고 닫힌 채로 살거나, 세상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국민의 인식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변화를 무시하고 산다면 낙오되기 쉽다. 이는 곧 그 국가의 퇴보를 의미한다. 때문에 잘 살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게 좋다. 다윈의 진화론이 국제사회의 경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개인의 가치가 중요시되는 국제사회에선 국제규범과 도덕도 개인을 중심으로 구축된다. 다시 말해, 개인이라는 실존에 침해되지 않는 도덕과 관습이 정착돼야 한다. 서구사회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흔한 말은 “Excuse me”, “Thank you”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서로에게 이 두 마디를 주고받는다. 이는 남을 배려하는 ‘정’ 때문에 오가는 말이 아니다. 내 삶이 소중하듯 타인의 삶도 소중함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지는 대화이다.
예컨대 서구사회에선 여닫이문을 열 때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것이 기본 도덕이다. 그리고 뒤에 오는 사람은 꼭 “Thank you”로 화답하며 감사를 표한다. 그러나 개인보다는 ‘정’ 문화를 강조하는 우리는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일이 흔치 않다. 간혹 있다고 해도 뒤에 오는 사람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본인과 인간적인 관계가 없는 불특정 다수에게는 ‘정’이 상대적으로 덜 발현된다. 그러나 개인을 강조하는 사회에선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다수에게도 자신과 같은 개인에게 존중을 표한다.
‘정’의 한국인도 이제 ‘개인’의 가치를 강조하는 도덕과 인식이 뒤따라야 할 시대가 됐다. 이는 글로벌 시대에 한국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우리의 가치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 사회에서 우리가 더 발전하고 더 잘 살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도덕과 규범을 탄력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체험들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또 한국인이 국제화된다면 좀 더 나은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소망이 녹아있다. 한국에 대한 딱딱한 이론 서적들이 많지만, 쉬운 용어로 감성적으로 접근한 이 책은 독자들에게 또 다른 진한 울림이 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글보다는 개인의 체험에서 나온 진솔한 글이 읽는 이의 마음을 더 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개인의 사례를 통해 새로이 볼 수 있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일본을 미워한다. 역사적 아픔 때문이다. 이 책에선 일제시대에 일본인 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은 한국인 제자들이 일본인 교사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본인 교사는 일본 제자들에게서 받아보지 못한 따뜻한 사제지간의 정을 한국인 제자들을 통해 느꼈다. 그러면서 과거 어두운 역사 속에서 일본인 교사로서 어찌할 수 없었던 교육 내용을 반성하는 대목이 나온다. 또 한국 제자들은 비록 일본인이었지만 자신들을 열성으로 가르친 교사에게 감사해 한다. 이 대목은 필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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