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혜의 상담 에세이 (4)편견과 선입견 - 두 마리 개로부터 벗어나는 법

이은혜 승인 2020.03.25 16:07 | 최종 수정 2020.03.25 16:38 의견 0

집안 내력인지 오빠와 나는 고집이 있다. 약간은, 아니 조금 많이 독선적이기도 하고 한번 자기 주장을 내세우면 끝까지 고수하는 편이다. 게다가 때론 잘못된 정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시치미를 뗀 채 서로 우기기도 한다. 한 번은 누가 봐도 틀린 오보를 끝까지 우기는 오빠에게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오라버니 왈, 남자가 한 번 우긴 것을 어떻게 번복하냐는 것이다. 틀린 줄 알지만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며 빙긋이 웃었다.

내게도 그런 면은 유전자로 심어진 것인지 가끔씩 어이없는 고집을 피우곤 한다. 피부가 취약한 나는 몸이 안 좋아지거나 무리가 될 때 습진이나 알러지 등이 생기곤 한다. 지금도 이은문화살롱 주방장 노릇하느라 주부습진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취약한 피부는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 중 납작한 코와 함께 가장 못마땅한 부분이지만 유산이니 어쩔 수 없다.

햇볕 알러지 때문에 고생이 많던 엄마는 늘 피부에 바르는 연고를 상비해 두었다. 여름이면 뜨거운 햇볕에 노출된 자국마다 벌겋게 부푼 살결은 보기에도 힘들어 보였지만 그래도 이 연고를 도포하고 나면 찬찬히 가라앉곤 했다. 그래서인지 세월이 가도 그 연고의 생김새와 이름은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연고의 이름은 '쎄레스톤지', 엄마는 이 연고가 제일 잘 듣는다며 가끔 약국 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우리 집과 마주보고 있던 약국은 길다랗고 하얀 얼굴의 총각 아저씨가 주인이었다. 약사 아저씨는 손님이 없는 날이면 지나가던 나를 불러 새콤하고 노란 비타민을 까서 입 안에 넣어주기도 하고, 그 때 가격으로는 엄청 비싼 초코파이나 과자들을 사주기도 했다. 어린 나를 귀여워 해준다는 걸 눈치챈 꼬마는 아저씨의 귀여움을 더 받기 위해 어리광을 부리곤 했다. 엄마가 적어 준 종이를 들고 혀짧은 소리로 '쎄레스토쥐' 주세요 하면 아저씨는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내 볼을 꼬집곤 했다.

요즘 같으면 아동 성추행이니 뭐 그런 걸로 싸잡힐 수도 있었겠다. 그런 아저씨가 어느 날 엄청 예쁜 언니와 다정하게 속삭이는 모습을 보았을 때 느꼈던 배신감과 질투라니. 여러 날을 약국 문 앞에 숨어서 알콩달콩 이야기를 주고 받거나 사람 없는 틈을 타 손을 더듬는 두 사람을 째려보기도 했지만 어린 나를 두고 두 사람은 결국 결혼을 하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고 그 약국을 찾아가 보니 아저씨의 머리칼은 'salt and pepper'가 되어 있었다. 어린 눈에 그렇게도 예뻤던 아저씨의 그녀도 중년의 주름살을 피해가진 못했는지 폭삭 늙어 있어 깨소금 맛이었고.

이야기가 벗어났지만 어쨌거나 나도 엄마의 감사한 유산 덕분에 피부가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한번은 얼굴에 생긴 건선 때문에 약국을 찾았다. 그리곤 당연히 내 머리 속에 입력된 쎄레스톤지 연고를 주문했다. 전문가와 상의해서 약을 구입해도 좋으련만 약사를 대하면서도 마치 내가 더 잘 안다는 듯 도도한 어투로 말이다. 친절한 약사는 그냥 줘도 되련만 굳이 어디에 바를 거냐고 물었고 나는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얼굴에 바를 거라고 뾰족하게 말했다. 그런데 약사는 그 연고는 얼굴에 바르는 게 아니라며 다른 연고를 건네는게 아닌가?

나는 그만 불쾌해져서 "달라는 대로 주세요. 저는 그 연고를 발라야 낫거든요. 그 연고가 제 건선엔 직빵이예요."라고 거만하게 말했다. 약사는 내 고집이 어이없는지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손님이 왕이니까요. 무좀에 바르는 연고이긴 하지만 얼굴에 바른다고 뭐 안 될 건 없죠." 하고 비아냥 대듯 한 칼을 날렸다. 으윽~예리한 한 칼에 베인 나는 시뻘개진 얼굴로 무좀 약을 들고 황급히 약국을 빠져 나오고 말았다. '안녕히 가시라'는 약사의 목소리는 의기양양했고 나는 무참하게 깨졌다. 참패를 당한 것이다.

'쎄레스톤지' 연고를 '카네이션'연고로 착각해서 말한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잘난 척을 계속 했으니... 밖에 나와 설명서를 읽어보니 카네이션은 무좀 치료제였다. 광고 덕분에 세뇌가 된 것인지, 아니면 전생 어디에서 바르던 연고인지 대체 내 기억 속 어디에 박혀 있다 갑자기 튀어나온 것일까? 인지적 접근으로 살펴보자면, 만약 성능이 같은 연고라면 유명 제약회사의 약보다는 마진 좋고 시원찮은 약을 줄거라고 생각한 내 불신과 편견이 사고를 친 것이고, 프로이트 식으로 해석하자면 무의식의 발현이었을 터. 그에 의하면 말실수조차도 그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니 아마도 엄마가 바르던 연고와 어버이날 달아드리는 카네이션이 합쳐져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만든 연상에 가까울 것이다.

어쨌든 그날의 기억이 떠오를 때면 지금도 얼굴이 훅 달아오른다. 내 말과 행동에 대한 자각이라고는 없이 내가 가진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정말 아찔해진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두 마리 개를 평생 데리고 산다고 한다. 입이 야무지고 작은 걸 보니 옹졸할 거야, 미간이 좁을 걸 보니 이해심이 부족하겠지, 옷입은 스타일이 저게 뭐야? 등등... 모자 장사는 모자를 보고 신발 장사는 신발을 보고 사람을 제 기준으로 판단하듯이 제각기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면서도 자기의 관점이 옳다고 주장하는 걸 자주 본다. 이만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우리 오라버니와 나처럼 틀린 줄 알면서도 우기는 맹목적인 고집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목욕탕에서 노는 것이 큰 즐거움인 나에게도 목욕탕이 싫을 때가 있다. 아침을 시작하며 목욕탕 사우나에 들어가면 벌써 죽치고 있는 죽순이 언니들이 계신다. 뜨거운 열기 속에 땀을 빼는 것이 쉽지는 않으니 즐거운 이야기 꽃을 피우는 건 좋다. 그런데 들어오는 사람, 나가는 사람을 이리 저리 살피다가 무슨 꼬투리든 잡고야 만다. 성형이 잘못됐니, 앉았던 자리에 물을 야무지게 뿌리지 않는다느니, 하물며 저 여자한테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둥... 그렇게 말하는 그분에게서도 아침에 드신 청국장 냄새와 장아찌 냄새가 진하게 배여 나건만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고 누구 씹을 사람 없나 오로지 눈만 열심히 돌아간다.

이쯤되면 또 괜찮다. 누구는 그러면 되고, 안 되고 판사가 따로 없다. 아무 생각없이 사람을 말의 매로 죽여 놓는다. 마녀사냥이 따로 없다. 직업상 저 사람의 말에 영향받을 필요가 없다, 없다 생각하면서도 '거기 물 좀 야무지게 뿌리고 나가라'는 말을 들으면 내 몸에서 무슨 냄새라도 나는 것일까? 자격지심이 생기고 하루 종일 신경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럴 땐 나이 들면서 무대포가 되어 가는 게 두렵기만 하다. 고정된 틀과 편견들로 가득 차서 함부로 이리저리 재단하는 걸 연륜이라 고집하게 될까봐 걱정되기도 한다.

우리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등을 볼 수 없듯 죽을 때까지 자신의 꼴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오죽하면 심리학자 칼 융은 인간이란 자신으로부터 도망갈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어이없는 존재라고 했을까? 그러니 타인에게 빨대를 꽂아두는 것이 자신을 외면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가면 자신도 잘 돌아볼 줄 아는 현자가 될 줄 알았는데 나는 더 많이 강팍해지고 옹졸해지는 것 같아 가끔은 아니 자주 우울한 인생이다. 어느 날 별일 아닌 일로 과민해져서 악다구니를 쓰는 내 모습을 보며 언니는 내 동생이 저렇게 팍팍해지는 게 슬프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나는 괜히 민망해져서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냐고 벌컥 화를 내고 말았다.

이은혜
이은혜

내 콤플렉스들이 건드려질 때마다 똥 뀐 놈 성내듯 발끈하는 내 모습을 알아차린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음을 목욕탕 죽순이 언니들에게서 보게 된다. 칼 융을 한 번 더 빌려오자면 그는 '내가 콤플렉스를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콤플렉스가 나를 쥐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무의식에 사로잡혀 산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부분들은 의식의 통제하에 사건을 칠 수 없지만 내가 모르고 있는 나의 부분, 즉 무의식적 동기들이 갈등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의식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고통을 없애버릴 수는 있지만, 고통이 사라짐과 동시에 내 자아도 이슬처럼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내면의 눈을 떠서 퍼즐을 맞추듯 자신의 무의식을 의식과 통합해 나가는 수행이 우리들에게는 꼭 필요하다. 이것을 칼 융은 이러한 과정을 빗대 밖을 내다보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안을 들여다 보는 사람은 눈을 뜬다고 표현했다. 많은 사람들은 대개 타인이 변화되기를 바란다. 나 또한 늘 남 탓을 한다.

이해인의 시처럼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앗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생각하면 두렵기도 하다. 부디 나이듦이 고집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살아가는 동안 편견과 선입견에 더 이상 사로잡히지 않는 지혜가 생기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나처럼 잘난 척하다 코깨지 말고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내맡겨도 좋을 일이다.

<이은심리상담·미술치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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