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혜의 상담 에세이 (3)외로운 당신을 위한 처방전

이은혜 승인 2020.03.17 17:06 | 최종 수정 2020.03.18 10:30 의견 0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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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상담의 주제는 외로움인가 보다. 너도 나도 외롭다는 내담자들을 만나며 나도 덩달아 감정에 휩싸여 어제는 봄을 핑계로 보고 싶은 지인들에게 실없는 문자를 보냈다. 보고 싶다고, 그러니 이번 주말은 코로나에 떨지 말고 모처럼 만나서 웃고 떠들고 놀아보자고.

문자를 보내놓고도 실은 그러자고 답이 올까 봐 내심 걱정도 했다. 나이 탓인지 다소 성가시기도 하고 만나서 한잔 한들 각자 제 몫의 외로움이 얼마나 덜어질까 싶은 회의감에 소주 한잔 기울이는 것도 자꾸 주저하게 된다. 그래도 오랜 지인들은 말없이 함께 술잔만 기울여도 위로가 되기도 한다. 스치는 눈빛 하나에도 마음을 가늠할 수 있으니 그 편안함이 때때로 그리울 때가 있다.

간혹 외로움에 절은 날이면 오늘은 누구라도 다 좋다고 내뱉곤 한다. 그건 그저 말일 뿐, 내 이야기에 건성으로 답하거나 나에게 마음도 열지 않는 누군가와 마주하는 건 정말이지 싫은 일이다. 그럴 땐 '그래 차라리 외롭고 말지...' 마음을 접어버리고는 제 발로 외로움의 장막 속으로 기어 들어가게 된다. 스스로 세상을 밀쳐내면서 혼자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현대인들의 자화상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나더러 적응력 좋고 사교성 좋은 사람이라는데 실은 나도 깊은 정을 주고받기가 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한 사람과 온전히 가까워진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새록새록 깨닫게 된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관계에 투여되는 정성과 노력을 득과 실로 따지며 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노력은 최소한으로 하고 싶으면서 사랑받고 싶은 욕심은 줄지 않는다. 그러니 제대로 된 셈이 될 리가 없다. 내 욕심을 비우지 않는 한 진정한 소통이란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늘 바닷물을 마신 듯 목마른가 보다.

귀찮고 성가셔서 혹은 두려워서 이유야 어쨌든 사람과의 관계에 소원하다면 혼자인 외로움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처럼 외로움에 지친 사람들은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 아프고 고통스럽다며 호소한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람들과 자신에게만 호의적이지 않은 세상을 외면하면서 심각하게 외로워한다.

자기계발서를 읽고 마음치유를 다룬 책들을 아무리 뒤적여도 대인관계는 여전히 어렵고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이해받을 수 있는지 답을 모르겠다며 절망한다. 쓰레기밖에 안 되는 책들이 수두룩하다는 걸 알면서도 표지만 바뀐 채 끊임없이 쏟아지는 소통 어쩌고 하는 책 제목에 자꾸만 눈길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후회하면서도 아까운 책값을 지불하게 되는 것은 사람 관계만큼 어렵고 버거운 일도 없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 대해 훈수를 두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수많은 기술들은 이미 싫증 날 정도로 들어 왔지만 매뉴얼 창고에 쌓아둘 뿐 진정한 관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출처 : 픽사베이]

나 역시 사람과의 관계를 무엇보다 힘들어한다. 특히 내 진심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상처받고 좌절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기적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만 같을 때, 나만 유독 바보처럼 손해보고 늘 힘들어 하는 것 같을 때 세상은 정말 억울해진다. 그런 피해의식에 젖게 되면 모든 게 허무하고 귀찮아서 삶으로부터 멀찍이 도피하고만 싶다. 오죽하면 내가 만든 밴드의 이름도 신이현의 소설 제목처럼 '숨어있기 좋은 방'이었을까?

이런 심리상담사의 속사정도 모르고 상담실을 찾아와 답을 요구하는 내담자들을 생각하면 양심이 찔리지만 내 처방전은 일단 알고 있던 모든 방식을 버리라는 것이다. 그렇다. 일단은 관계 기술에 대한 모든 모범 답안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답들은 대개 내가 아닌 남의 마음과 심리 분석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경험상 진정한 관계란 이론적인 접근과 지적인 분석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애정을 가졌던 지인에게 실망감이 들 때, ‘저 인간이 왜 저러지? 저건 아니잖아?' 라고 내 잣대를 들이댄들 어떤 해결도 나지 않는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곤 한다. 나 역시 더 이상 노력할 순 없다며 늘 애쓴 건 나 인 듯이 말해왔다.

이렇게 우리는 늘 최선을 다했음에도 왜 세상은 온통 상처받은 자만 있는 것일까? 이해되지 않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해 보겠다는 억지 노력은 내가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거짓 환상만 키울 뿐이다. 그러니 상대를 향하던 시선을 그만 거둬들이고 서운하고 실망한 나에게로 돌아와 온전히 내 마음을 알아주고 집중하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다.

그 사람이 이해되지 않아 너무 답답할 때, 도무지 나와는 달라 절망까지 느껴질 때 나는 그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절망하고 답답해하는 내 마음에 조용히 다가서는 연습을 하곤 한다.

그에게 바라는 내 기대가 무엇이었던가? 어떤 기대가 무너져서 내 마음이 이렇게 깜깜한 지옥일까?

내 속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그가 아니라 내 마음이 문제였음을 밝아오는 새벽빛이 알려준다. 이렇게 나와 마주하고 있는 시간을 가지자면 어느새 호흡이 고요해지고 타인의 마음도 조금씩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가 슬그머니 찾아들게 된다.

그때서야 내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는 그의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편안한가? 내가 정말 우울할 때 받고 싶었던 위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느꼈을 때 그로부터 듣고 싶었던 말은?

내면 깊이에서 내 마음과 그의 마음 이야기를 차분히 듣다보면 마음 한 켠에 미안함이 올라오고 나만 노력했다는 어리석은 억울함도 그만 연기처럼 스르르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사랑할 수 있는 따사로운 마음이 기적처럼 일어나는 놀라운 은총의 순간을 맞게 된다.

나는 무시당할 때 깊은 수치감을 느낀다. 그러니 내 상처의 원인을 잘 자각할수록 타인에게 거부나 무시의 감정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게 된다. 사람은 내가 외로울 때 타인의 외로움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이심전심, 내 마음 짚어 너를 이해하는 나의 방식이다.

소통의 욕구가 진실로 있다면 상처 좀 받으면 어때? 인생은 어차피 상처뿐인 영광임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보자. 사실은 ‘당신과 다투고 싶은 게 아니라 함께 하고 싶고 더 많이 나누고 싶은 거라고’ 그렇게 진솔하게 고백할 수 있다면 관계의 문은 이미 활짝 열려 있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 상구는 오늘도 그만 집에 가라는 말에 '아쉽다. 정말 재밌는데'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갔다.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면서 너무하다, 너무해'라는 상구의 전용 표현처럼 그 멋진 남자는 제 감정을 절대 꾸미지 않고 속이지 않는다.

이은혜
이은혜

우리는 무엇이 두려워 그토록 솔직하지 못한 것일까? 알고 보면 네 마음이 내 마음이므로 결국 우리는 한마음. 내가 정말 좋아서 주는 것은 그도 반드시 좋아하게 되어 있다. 내가 그를 좋아하면 그도 역시 나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다가서기 어렵다면 어쩌면 소통에 대한 내 욕구가 거짓은 아닌지 진심으로 물어볼 일이다. 여전히 내 마음만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것만을 끝까지 관철시키고 싶은 것은 아닌지 내 마음을 좀 더 살필 일이다.

화사한 봄날이다. 여기저기서 꽃망울들이 팡팡 팝콘처럼 터지고 있다. 더 이상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존심 따윈 던져버리고, 결코 길지 않은 이 삶을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보자. 그만 좀 어리석게 굴자. 사랑받고 싶은 내 마음을 예쁜 남자 상구처럼 솔직하게 전하며 재밌는 삶을 살아가면 그뿐이다.

오쇼 라즈니쉬의 일침처럼 열정적이지 않은 삶은 죄이고, 심각한 건 질병일 따름이다.

<<이은심리상담·미술치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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