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단상(斷想) ... 갈맷길 1-1에서

길을 걸으며 나를 돌아보고, 다스려보고, 내가 사는 부산을 알고 싶다.
바다에서 산에서 길에서 바람과 햇빛으로 마음을 채우리라.

엄수민 승인 2020.01.05 19:01 | 최종 수정 2020.01.05 19:38 의견 0
도시인의 몸과 마음을 정화해주는 겨울 바다. 임랑해수욕장에 서면 그저 감사함이 가슴 가득 밀려든다.

먼 길 돌아 다시 길을 가야 한다. 지난 60년의 시간을 오롯이 길에 던진다. 살포시 밟고 걷는다. 만족도 불만도 길에 묻는다. 그저 소박한 도전과 소소한 희망으로 내 발길을 채우리라. 길을 걸으며 길 위에서 생각하리라.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내가 좋아하는 어느 노래의 가사에 등장하는 “세상 어딘가 저 길 가장 구석에 / 갈 길을 잃은 나를 찾아야만 해(자우림 김윤아의 ‘길’ 中에서)”처럼 나를 찾고 싶다.

‘따르르르릉~’ 열차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을 따라 기차는 도착한다. 새해 첫날, 일출을 보는 대신, 한 해의 소망을 떠오르는 해를 보면 비는 대신, 길을 걸으며 나의 길을 묻기로 한다. 길을 걸으며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길을 걸으며 나를 다스려보고, 길을 걸으며 나를 알고, 내가 사는 부산을 알고 싶다. 바다에서 산에서 길에서 바람과 햇빛과 말씀과 생각으로 내 마음을 채우리라 믿으며 걸어야겠다. 그래, 동해선 이 기차에 발을 올리면 시작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걷는다. 나에게 먼저 물었다. ‘왜 걷는데?’, ‘어디로 걷는데?’ 오늘은 이렇게 대답하련다. ‘그냥’, ‘걷다 보면 어딘가 머물게 될 거야.’라고.

갈맷길에서 길을 묻다

일광역에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임랑해수욕장 삼거리에 내려 성큼성큼 걷는다. 해변을 향한 골목을 벗어나니 임랑해수욕장, 갈맷길 1코스 시작 안내판이 기다리고 있다, 임랑해수욕장 끝자락이다. 저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을 예상했지만 그저 따사로운 어느 겨울의 하루일 뿐이다.

임랑해수욕장 갈맷길 1코스 안내판. 여기서부터 갈맷길 1코스(1-1구간/ 임랑해수욕장~기장군청, 1-2구간/기장군청~문탠로드)가 시작된다. 사진=엄수민 

길을 걷다보니 조금 전 나눈 얘기들이 머릿속에 맴돈다. 일광역 주변에 올라가는 고층 아파트들을 보면서 “그저 이익을 위해 올라가는 고립된 아파트 둥지들이 아니라 청년들을 위한 삶의 가치가 있는 둥지, 아이 낳아 키울 수 있는 탁아·육아 환경을 갖춘 삶터, 즐거운 생활문화 인프라를 갖춘 부산의 배후 단지로서 기능하면서 청년들을 위한 좀 더 다양한 혜택이 더해지면 우리 부산의 청년들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 가득했던 지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걷는다. 생각에 잠긴다. 인구절벽, 백약이 무효, 온갖 처방에 예산을 쏟아 부어도 ‘우 상승’이 아닌 ‘우 하강’의 곡선만 계속되는 출생률이다. 청년 취업·일자리 부족, 늦은 결혼, 불공정한 출발선, 고령·초고령 도시 부산에서 행복한 청년과 함께 산다는 것은 허황된 꿈일까? 부산의 2020년 새로운 청년 정책들을 보면서 그래도 나아지리라 기대해본다.

때로는 도로를 따라 걷다가 갈맷길 샛길로 빠질 때마다 탁 트인 바다를 만난다. 이것이 부산 갈맷길 만의 매력이요 멋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만나기 힘든 호강이다. 도시에 지친 사람에겐 더욱 그렇다. 회색빛 시멘트로 굳어버린 작은 포구들을 만날 때마다 ‘왜 우리네 포구는 시멘트 박제로 굳어져 버린 걸까? 시름에 젖은 발길 하나 정도는 달래줄 수 있는 정겨운 대포집 같은 곳이 있으면 좋겠는데...’ 따사로운 햇빛에 조는 듯 나그네를 반겨주는 그런 쉼터 말이다. 소박한 안주에 대포 한 잔, 길 위의 소확행이다. 작은 포구들마다 햇빛은 외면하지 않는다. 포구마다 내려앉은 햇빛은 또 바다를 만나 눈부시게 일렁인다. 파도는 때론 발밑까지 밀려온다. 내뱉는 숨조차 파도를 만나 부서진다. 조금씩 느리게 걷다 보면 어느새 오늘의 목표지점인 일광해수욕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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