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와 노동단체를 엄격히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청와대와 민주당의 인식, 태도, 프로파겐다는, "노조를 시민사회-대중과 분리시키고 고립시키는 전략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노조를 고립시켜 무력화하고 사용자 측의 어젠다를 급진화하는 것. 이것이 민주당식 민주주의의 실체다. 지금 쟁점이 되는 것은 탄력시간근로제를 관철하는 것이다.
언제가 페북에 썼듯이, 민주당은 제도적-절차적 민주주의의 실현, 부패척결, 인권, 문화다양성, 한반도 평화정착 등에 있어서 한국 민주주의의 핵심세력이다. 다만, 이들은 계급적 쟁점에 있어서 철저히 '사용자 측 입장'에 서 있다. 더군나 이들은 계급적 쟁점에 있어서 '한국당이라는 엄청난 동맹군'을 확보하고 있다.
무지하고 퇴행적이며, 부패한, 그래서 척결대상으로 전락한 한국당은 사용자 측(지배계급이라고도 한다.)의 이해를 실현시키는 데 있어서도 무용하다. 이들은 불도저식 특혜 옹호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날이면 날마다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우리를 기쁘게 한다. 이런 기득권 수호자들에 대해 대중들은 더는 통치집단으로서의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문화 다양성을 체화하고, 민주주의와 절차를 중시하며, 시민권에 대해 누구보다 밝고, 남북공존-인권-평화를 사랑하며 타인을 배려하는 문화적 감수성을 지닌 집단이, 사용자 측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옹호할 때 그들은 대중의 저항에 직면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그것은 "또 다른 적폐 즉 노조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힘"이 된다. 리처드 호가트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이것이 오늘날 '교양의 효용'이다.
1990년데 초 여피족(young urban professional)들은, 미국 민주당을 지지했다. 70년대 반전운동-인권운동-페미니즘에 참여했던 청년-학생 세대들이 주류로 편입되면서 민주당 내 한 축을 형성했다. 한국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386세대의 주류화라 하겠다. 청와대 비서실장 임종석은 이를 대표한다. 미국의 여피족들은 인종주의를 경멸하고, 여권증진을 옹호하며, 제3세계에 연민을 지닌 이들이다. 이들은 정의의 편에 서는 것이 시대의 에티켓임을 안다.
여피들은 조류즈 상드나 니체, 푸코도 읽고 초현실주의 문학작품 한 편 정도는 깨치고 있는 이들이다. 레이디오 헤드(Radio Head)와 너바나(Nirvana)를 듣고, 아방가르드에 개방적이며, 한 달에 한번 이상은 갤러리를 방문하고 카페에서는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 미국 민주당의 정책은 철저히 이들 "엘리트들이 행복한 민주주의 세상"을 만들었다. 일자리를 잃은 백인 노동자계급과 이주민들을 저임금화 시키면서.
오늘날 트럼프를 지지하는 세력과 버니 샌더스를 지지하는 세력은 양분되었지만 저 엘리트 중심의 '교양 있는 신자유주의자들'에 염증을 느끼는 공통점이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보다 인종주의적이고 천박한 형태로, 버니 샌더스와 민주사회주의자들은 노조할 권리와 시장에 대한 통제를 주장하면서 말이다. 샌더스는 다시 노조할 권리를 강조한다!
그러나 당분간 한국은 '민주화' 세상이다. 한국에서 불고 있는 중간계급-중산층의 인문학 열풍은, 1990년대 초반 여피족들을 생각나게 한다. 인문학 열풍의 주체들은 현재 민주당을 지지하는 시민사회의 핵심 세력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에게 노조는 적폐다. 노조의 고립과 교양 있는 시민들의 민주당 지지, 어쩐지 미국을 많이 닮았다. 역사는 이렇게 반복되는가?
<부경대 경제사회연구소 연구교수·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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